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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산사에 있는 유물들 (5) 마곡사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사찰순례(91)
마곡사 괘불 <꽃을 든 석가모니불> 1687년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에 소재한 마곡사는 계룡산의 신원사, 동학사, 갑사, 논산의 개태사, 관촉사, 청양의 장곡사 등 80여 곳의 사찰과 암자를 말사로 거느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이다. 절이 자리한 곳은 조선시대 이중환이 쓴 지리서 『택리지』에 소개한 난리를 피할 수 있는 열 곳의 명당 중 한 곳이다. 나지막한 산들이 절을 둘러싸고 마곡천이 휘감아 돌아나가니 풍수를 모르는 사람도 절에 들면 아늑하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절에 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신라시대인 643년(신라 선덕여왕 9년)에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율사가 세운 절 중 하나라고 하지만 당시 신라와 백제의 정치 상황을 고려하면 신뢰하기 어렵고, 그것을 증명할만한 유물도 전하지 않는다.  전하는 기록과 남아 있는 유물이 합치되는 내용을 찾아보면 고려시대에 보조국사(1158~1210)가 마곡사를 중창했다는 것은 분명하므로 학자들은 마곡사를 고려시대에 창건된 절로 보기도 한다. 
 일반사람들에게 마곡사는 백범 김구선생이 일본 군인을 죽인 죄로 투옥된 감옥에서 탈옥한 후 머물었던 곳이어서 유명하지만, 예전부터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는 말이 전해졌을 만큼 마곡사는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한 절이었다. 단풍이 울긋불긋한 산사는 어느 곳이나 아름답다. 깊은 산 속에 있는 갑사의 단풍이야 당연히 아름답지만 그렇다고 마곡사의 단풍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 짙은 녹음으로 바뀌기 전 연한 초록색 이파리에 싸인 나무와 울긋불긋한 꽃, 그리고 파란 하늘을 사진처럼 찍어낸 마곡천의 물빛이 가을 단풍 못지않게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리 얘기되었을 것이다. 
 이런 자연 풍광과 더불어 마곡사에는 여러 점의 보물이 전한다. 건축물로는 대웅보전(보물 801호), 대광보전(보물 802호), 영산전(보물 800호), 5층 석탑(보물 799호)이 있고, 불화와 서적류로 괘불(보물 1206호)과 감지금니묘법연화경 제6권(보물 270호),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1권(보물 269호)이 있다. 보물은 아니지만 당대 유명한 서예가들이 쓴 여러 전각의 현판들도 볼 만하다. 
 이번에 소개할 보물은 마곡사 괘불(보물 제1206호)이다. 알다시피 괘불은 야외에서 큰 법회나 행사를 할 때 사찰 마당에 걸었던 대형 불화이다. 마곡사 괘불은 높이 11.7m, 너비 7.5m이며, 무게는 174㎏에 이르는 크기로, 지금으로부터 330여 년 전인 1687년 마곡사의 승려와 신도 120여 명의 간절한 마음과 노력이 모이고, 능학을 비롯한 여섯 명의 화승이 자신들의 모든 기량을 발휘하여 만든 불화이다.    

<마곡사 괘불 세부> 꽃봉오리 옆 인물이 마하가섭이고 그 옆은 범천, 아래는 관세음보살이다.


 화면 한가운데 보관을 쓰고 큰 꽃을 들고 있는 석가모니불을, 그 주위의 작은 공간에는 설법을 듣기 위해 모인 여러 청중들을 묘사하였다. 일곱 분의 부처님이 묘사된 화려한 보관을 쓰고 목걸이, 팔찌 등 영락으로 장식한 모습은 영락없는 보살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분은 보살이 아니라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바로 선종에서 ‘염화시중의 미소’로 잘 알려진 이야기에 등장하는 부처님을 그린 것이다. 즉 어느 날 범왕이 영산에 와서 석가모니에게 바라화를 바치고 중생들을 위한 설법을 청하자 석가모니 부처님이 단상에 올라 꽃을 들어 보였는데, 모두 무슨 일인지 몰라 궁금해 하는데 제자 중 한 명이 미소를 지었고, 부처님께서는 “이 법은 말이나 문자로 전해질 수 없는 미묘한 것인데 오직 가섭만이 알았으니 그에게 종지를 전한다”고 말씀했다는 이야기다. 이 염화미소는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종지를 드러내는 이야기로 널리 인용되었다. 마곡사 괘불에 그려진 보관을 쓰고 꽃을 들고 있는 부처님은 바로 그 염화미소의 순간에 등장하는 그 분이다. 마침 꽃봉오리 옆에 표현된 인물이 십대제자 중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한 이후 교단을 이끈 최고 연장자이자, 염화미소의 주인공 마하 가섭이어서 우연의 일치라기보다는 의도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석가모니불 주변에는 아래로부터 사천왕 및 여섯 분의 보살인 미륵, 제화갈라, 문수, 보현, 관음, 대세지보살과 범천, 제석천 및 가섭, 아난 등 십대 제자, 용왕, 천자와 팔부중 중 일부, 명월천자와 보향존자 그리고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 벽지불이 표현되었다. 이들은 당시 설법회에 참여한 수많은 청중들을 대표하는 이라 할 수 있다. 이 불화가 더 의미 있는 것은 이들 인물들의 명호를 그림 옆에 표기하였다는 점이다. 중앙의 부처님 옆에도 ‘천백억화신석가모니불’(千百億化身釋迦牟尼佛)이라는 명호가 적혀있다. 이처럼 명호가 적혔고 그 명호가 제대로 읽히는 오래된 불화가 적은 상황에서 이 괘불이 지닌 사료적인 가치도 크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은 어깨가 빈약하고 양발도 지나치게 옆으로 벌어져 다소 부자연스럽게 보이며, 우녀의 일치지만 군의의 색이 요즘 잠옷처럼 표현되어 조금 어색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따스한 빨간색과 부드러운 녹색을 주로 사용한 채색이 뛰어나 화려하면서도 원만한 분위기를 잘 표현하였다. 불화 상단에는 붉은 원 13개를 그리고 안에 범자를 적어 넣었다. 
 초파일이나 큰 법회에만 볼 수 있는 이 불화가 2019년 모처럼 서울로 나들이 왔다. 지난 4월 25일부터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2층 불교전시실에서 전시하고 있는데 올 10월 20일까지 전시한다고 한다. 초파일이나 법회에는 자신이 다니는 절에 가야 하는 분들은 서울에 가게 된다면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11미터가 넘는 대형 괘불도 보고,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여러 불상, 불화 보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언제 시간이 되고 마음이 내킬 때 충청도 공주에 있는 마곡사에 들러 넓은 마당에 그 괘불이 어떻게 걸렸을지 상상해 보면 뿌듯할 것이다. 게다가 요즘처럼 일본 정부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곡사 백범당 난간에 걸터앉아 오로지 광복과 완전한 독립만을 원하셨던 김구선생이 남긴 말들을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나에게 한 발의 총알이 남아 있다면, 왜놈보다 나라와 민주주의를 배신한 매국노 변절자를 백 번 천 번 먼저 처단할 것이다. 왜? 왜놈보다 더 무서운 적이니까.”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富)력이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强)력이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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