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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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생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8.2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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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진의 ‘길 위에서’ (27)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

지난 주 목요일 저녁에 스페인 밀레니엄 합창단 공연이 있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쪽머리를 한 스페인 합창단이 우리말로 부르는 가곡과 가요, 민요들을 듣고 있자니 여름 더위에 지쳐가던 마음에 소나기가 쏟아져 내리는 듯 했다.
스페인 밀레니엄 합창단은 임재식이라는 한국 음악가가 20년 전에 창단했다고 한다. 그는 정작 한국 사람들에게서 외면 받는 우리 가곡을 외국인 성악가들에게 부르게 했다. 발상의 전환이었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우리의 가곡과 민요, 옛 노래가 점점이 사라져갈 무렵 스페인 밀레니엄 합창단이 내한 공연을 시작했고 반응은 뜨거웠다. 파란 눈의 스페인 합창단을 통해서 다시 듣는 우리 노래는 감동 그 자체였다. 그만큼 울림이 컸다. 임재식 지휘자는 스페인의 성악가들에게 단어의 의미를 섬세하게 전달하고, 가르치고 연습을 시켰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발음은 물론이고 감정 전달까지 완벽했다.
<섬 집 아기> <엄마야 누나야> <내 맘의 강물> <내 영혼 바람이 되어> <홀로 아리랑 > <밀양 아리랑> <오돌또기> <비 내리는 고모령> 등 그들이 불러주는 노래에 푹 빠져 힐링이라는 걸 하고 있을 때 문득 가슴을 뻥 뚫고 지나가는 노래가 있었으니 글머리에 적어본 <하숙생>이다. 
우리는 사바세계에 공부하러 온 하숙생이다. 아마 불자라면 다 동의하실 것이다. 그것도 엄청난 하숙비를 내고 공부를 한다. 목숨 값을 다 쓰고도 낙제를 해서 윤회계를 졸업하지 못하면 다시 등록을 해야 하는 걸로 안다. 
하숙집 아줌마 밥이 아무리 맛나고, 하숙집 동기생들과의 정분이 두텁고 진해도 하숙생활을 계속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처음 하숙생활을 시작할 때는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어서 빨리 하숙생 생활을 청산하고 보다 높은 단계로 가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만 하숙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공부는 점점 게을러지고, 맛있는 하숙집 아줌마 밥맛을 즐기고, 지지고 볶고 사는 가운데서도 찾아오는 소소한 일상의 재미에 나도 모르게 집착도 하면서…….
세월이 이렇게 흘러간다.
어느덧 2019년도 후반에 들어섰다. 나를 비롯한 하숙생 여러분, 공부는 잘 하고 계신지? 이번 생에 졸업은 가능하신지? 모두 정신 차리고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떠나온 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영혼의 고향으로 언제면 돌아갈 수 있을까?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 안에서 <하숙생>을 불러본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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