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비었다고 생각할 때에 하나가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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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비었다고 생각할 때에 하나가 되겠지요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8.2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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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 스님

참선에 대해서는 선오호수先悟後修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먼저 막힘없이 마음을 열어 놓고 나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이른바 중국에서 들어온 조사선의 도리입니다. 나는 나고 너는 너고 부처님은 저기 있고 나는 여기 있고, 이런 식으로 공부하는 것은 참다운 조사선이 못 됩니다. 천지 우주를 오직 하나의 생명으로 합해 버려야 비로소 참선 공부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물론 천지 우주는 오직 하나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인슈타인도 이미 과학적으로 이론을 제시한 바가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말을 빌리자면 우주는 하나의 통일장統一場이라고 합니다. 수행자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을 모으고 참선에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으로 아는 헤아림은 딱 끊어져야 합니다. 
『반야심경』이나 『금강경』의 도리는 모두가 다 비었다는, 즉 공共도리 아닙니까? 꿈속에서 볼 때는 삼천대천세계가 명명백백하게 있지만 깨어나서 보면 모두가 텅텅 비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물질이라는 것은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러기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모두가 다 마음으로 짓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두가 다 마음으로 되어 있다는 확신이 선 상태에서 공부를 해야 참선 공부가 됩니다. 
보통 불자님들은 알기 어려운 그런 문제보다 우선 복 받은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지요. 그러나 모두가 하나의 진리라는 부처님의 실상을 제대로 모르면서 하는 복 받는 공부는 제한된 복밖에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공부는 불교의 근본 목적인 성불成佛로 인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는 우리 몸뚱이를 포함하여 이른바 물질이라는 것은 지수화풍 사대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불경에서는 또한 지불가득地不可得이라 하여 땅 기운도 결국은 얻을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수불가득水不可得이라 하여 물 기운도 얻을 수가 없다 하고, 불기운이나 바람 기운도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우리 몸뚱이나 일체의 모든 것을 구성하는 땅 기운, 물 기운, 불 기운, 바람 기운 이런 요소들도 부처님의 말씀에 따른다면 ‘불가득’ 즉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은 바로 모든 것이 비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현대물리학은 이런 사실들을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물질이든 여러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가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각 원소는 전자, 양성자, 중성자가 어떤 형태로 모여 있는가, 이러한 소립자들의 결합 형태에 따라서 산소가 되고 수소가 됩니다. 이 사실도 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면 전자나 양성자나 중성자는 무엇인가? 미세한 차원에 이르면 모두가 다 장場 에너지라는 것입니다. 이 공간 속이나 성충권, 삼천대천세계 어디에나 충만해 있는 장에너지입니다. 
그러면 장 에너지는 무엇인가? 우주에 충만해 있는 장 에너지는 전자기장電磁氣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전기나 자기는 무엇인가? 전기나 자기, 이것은 본래 물질이 아닌 에너지의 파동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물질을 분석해 들어가면 결국에는 모두가 텅텅 비어 버립니다. 
다이아몬드든 금이든,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든 싫어하는 것이든 비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분석해 들어가면 비어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내 몸뚱이는 이대로 소중히 있지 않은가?”,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로 빛나고 있지 않은가?”, “분석해 가면 공空이라 하더라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부처님 말씀은 분석해서 공인 것이 아니라, 물질 그대로 공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외우신  『반야심경』에 있는 것처럼 색즉공色卽空입니다. 여기서 색이라는 것은 일체 물질을 다 지칭입니다. 따라서 내 몸 이대로 공입니다. 
왜 그런가? 부처님 법문은 철두철미하게 과학적이고 철학적입니다. 불교는 가장 수승한 종교입니다. 과거의 미개한 시대에는 이런 어려운 말을 하면 아무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을 대체적인 물리학 지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왜 물질 그대로 공인가? 이것은 가장 미세한 물질인 전자나 양자 같은 미립자들은 사실 공간성을 지니지 않으며, 에너지의 파동에 불과합니다. 우주의 정기인 힘만 진동하고 파동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동하면 전자가 되고 저렇게 진동하면 양자가 되는 것일 뿐입니다. 그것을 물질이라고 할 수가 없다는 것이 현대물리학의 결론입니다. 
따라서 물질의 가장 미세한 곳으로 가면 결국은 텅텅 비어 버립니다. 시간성과 공간성이 없으니 응당 비어 버리겠지요. 시간성과 공간성이 없는 것이 이렇게 활동하고 저렇게 진동하고 결합되어서 산소가 되고 수소가 된다 하더라도 빈 건 빈 것입니다. 산소와 수소도 결국은 빈 것이 모여서 된 것이기 때문에 결국 공은 공입니다. 
우리의 무명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모두가 다 비었다고 생각할 때에 모두가 다 하나가 되겠지요. 어떤 물질이 있고 무엇이 있다고 생각할 때는 하나가 되려야 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유마거사를 비롯해 모두가 다 이 하나의 도리, 즉 입불이법문入不二法門을 말씀했습니다. 
그 하나가 물질이 아니라면, 그러면 무엇인가? 그것은 공간성도 없고 시간성도 없는 진여불성입니다. 자취가 없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문자와 말을 떠나 버린 신비부사의神秘不思義한 그 자리가 바로 불성입니다. 진실로 있는 것은 진여불성뿐입니다. 다른 것은 눈곱만큼도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비었으니 서로 다른 것이 어디가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다 진여불성뿐이다, 이렇게 알고 공부하는 것이 조사선祖師禪 도리입니다. 
『보조국사어록』을 보신 분들은 상기해 보십시오. 자성청정自性淸淨 자성해탈自性解脫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일체 존재의 근본성품이 자성입니다. 일체 존재의 근본 성품은 원래 청정한데, 어떤 물질이 있다거나 오염이 있다거나 또는 번뇌가 있다고 생각할 때는 자성청정이 못 됩니다. 자성청정하기 때문에 본래 해탈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참선을 하려고 애씁니다. 인류문화사를 통하여 가장 고도한 문화형태가 참선입니다. 사실은 참선을 모르면 진리를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유교나 기독교, 도교나 이슬람교를 다 긍정합니다. 왜 긍정하는가? 모두가 다 부처님 가운데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보면 이슬람이나 기독교도 모두가 다 바로 부처님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자성청정 자성해탈’인 것입니다. 본래 내 몸뚱이는 비어 있습니다. 물질이라는 것은 우리 중생의 차원에서 보이는 것이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이라는 말과 같이, 마음이요 부처요 중생이요 하는 모두가 다 차별 없이 불성佛性뿐입니다. 이렇게 알고 믿는 것이 참다운 대승적인 신앙입니다. 대승적인 신앙을 가져야 참다운 참선을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근본 실상, 우리 생명의 근본실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불성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불성을 체험한 것은 아닙니다. 체험하지 않은 지식은 다 간혜지乾慧地입니다. 바싹 마른 지혜입니다. 간혜미능乾慧未能이라 하였습니다. 즉 바싹 마른 이론적인 개념만으로는 우리가 참다운 감로 맛을 못 본다는 뜻입니다. 참다운 혜탈의 맛을 못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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