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에세이 - 화가 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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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세이 - 화가 나면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9.0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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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현

세상사 살다보면 때로는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원하는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방해받기도 한다. 이렇게 생겨난 불만의 더께가 쌓이면 어느 순간 분노가 폭발한다.  
  화를 참지 못해 전쟁도 살인도 불사하는 것이 사람이다. 아주 소심한 사람들도 화가 나면 정신을 잃고 싸운다. 분노의 표현도 다양하다. 어릴수록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공격행동을 취하지만 어른이 되면 비웃고 비난하고 음모적이며 에둘러 말한다. 
  방향에 따라서는 두 가지. 자기 자신에게 향하게 되면 침울하고 무기력한 느낌이 일어나고, 남에게 향하게 되면 울화가 치밀어 오르고 거의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주고 폭력을 행사한다. 우울과 폭력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더 화가 쌓이게 되면 나에게 향한 화는 자살로, 남에게 향한 화는 범죄가 되어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무너뜨리고 만다.
  부처님께서 가야산의 정상에서 산 아래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시고서 가섭 삼형제를 포함한 1000명의 비구 승가들에게 일체(12처)가 탐욕, 성냄, 어리석음에 의해 불타오르고 있다고 비유 설법을 하셨다. 
  2600여 년이 지난 지금·여기에도 불타오르고 있다. 마그마가 상승하여 분화구를 통해 지표면으로 흘러나오듯 분노의 화마가 독사의 맹독보다 더 무섭게 온 누리를 삼키고 있다. 
  자기 스스로 ‘화를 내겠다.’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쉽게 화를 낸다. 이미 마음속에 지어 놓은 불만이 원인과 조건이 되어 화내지 않으려고 생각해도 쉽게 일어나고 또 시간이 좀 지나면 사라진다. 이게 분노의 성품이다. 분노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욕구충족을 위한 목표달성이 좌절되었을 때 흔히 느껴지는 자연스런 감정이다.  
  화가 치밀어 올라오면 우선 상대방을 탓하고 큰 소리로 비난을 퍼붓는 데에 의식이 집중되어 있기에 우리는 자신의 몸과 마음 현상을 관찰하지 못한다. 어리석기 때문에 그렇다. 
화가 나면 몸의 떨림, 긴장과 안면의 화끈거림, 거친 호흡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좀 더 주의를 기울이면, 머리가 아파오고 가슴이 답답할 뿐만 아니라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몸의 이런 느낌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생각할수록 더욱 더 화가 나서 두 번째 독화살雙毒箭에 또 다시 꿰찔린 것과 같이 2차 고통을 겪게 된다.
  수행자는 호흡에 집중하면서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이런 불쾌한 느낌을 온전하게 그대로 느끼며 그 열기와 떨림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본다. 나아가 “이 화는 어떤 조건이나 원인에서 일어났는가?”라고 질문하면서 연기를 통찰하기도 한다. 이 두 가지 방편은 화가 난 상황을 잠시 벗어나는 ‘타임아웃’으로 두 번째 독화살을 피하게끔 인도한다. 
  누구든지 미움과 증오의 독기를 품으면 마음의 평화를 경험하기 힘들고 잠은 오지 않고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세존께서 자애명상을 권하셨다. 
  ‘마치 어머니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외아들을 보호하듯이 모든 살아있는 존재에 대해서 끊임없는 자애심을 닦아야 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깊이 새기며 매일 이른 아침에 「자애경」을 독송한다.  
  아직도 나의 정신적 경향에는 성냄의 잠재적 기질이 남아 있어서 알아차림(sati)을 놓치면 뜬금없이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 오로지 자애만이 성냄과 적대심을 녹일 수 있기에 성냄의 공성空性을 통찰하면서 인욕바라밀 수행의 토대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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