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고 멈추어라. 망상을 쉬고 망상을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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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고 멈추어라. 망상을 쉬고 망상을 쉬어라”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9.0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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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

대혜 스님이 원오 스님에게 물었다. 
“제가 잠이 들기 전에는 부처님이 칭찬한 것은 의지해서 실행하고, 부처님이 꾸짖는 것은 감히 위반하여 범하지 않아서 이전의 스님에게 배운 것과 스스로 공부하여 조금이나마 얻은 것을 깨어 있을 때는 모두 다 수용할 수 있으나, 선상禪牀에 앉아 반쯤 깨어 있고 반쯤 졸 때는 스스로 주재主宰할 수 없습니다. 꿈에 금은보화를 보면 꿈속에서 기쁨이 한이 없고, 꿈에 여러 나쁜 경계를 보면 꿈속에서 겁이 나고 벌벌 떱니다. 스스로 생각해 보건대 이 몸이 늘 있어도 꿈속에서는 주재를 하지 못하니, 하물며 지·수·화·풍이 나누어 흩어지며 모든 괴로움이 불꽃같이 일어나면 어떻게 따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이르러서는 비로소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원오 스님이 손으로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멈추고 멈추어라. 망상을 쉬고 망상을 쉬어라.”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말하는 허다한 망상이 다 끊어질 때에 스스로 오매가 항상 일여한 곳에 저절로 이를 것이다.”
처음에 들었을 때에는 믿지 않고 매일 스스로 생각하였다. 
“자고 깨는 것이 분명히 두 쪽인데, 어떻게 큰소리치며 선禪을 떠벌리겠는가. 부처님이 말씀한 오매항일寤寐恒一이 거짓말이라면 내가 이 병을 고칠 필요가 없겠지만 부처님 말씀이 과연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면 내가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다.”
뒤에 ‘따스한 봄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온다〔熏風自南來〕’는 법문을 듣고서 홀연히 마음속에 막혀 있던 물건을 제거하고서는, 비로소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이 참 말씀이며, 실다운 말씀이며, 여여한 말씀이며, 거짓말이 아니며, 허망한 말이 아니며,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며, 참으로 대자대비하니, 몸을 가루 내어 목숨을 바쳐도 부처님 은혜를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속에 막힌 물건을 없애고서야 꿈꿀 때가 깨어 있을 때이고, 깨어 있을 때가 꿈꿀 때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으니, 부처님이 말씀하신 오매항일을 비로소 스스로 알았다. 이런 도리는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못하며, 말해주지 못하니, 마치 꿈속의 경계를 갖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는 것과 같다.  
 『대혜광록』

다음은 대혜 스님과 원오 스님의 문답입니다. 당시 사정이 어떻게 된 것인가를 좀 설명하겠습니다. 대혜 스님이 생각할 때 천하 선지식이 모두 소용없는 물건들이고, 오직 담당 스님 한 분만이 참으로 눈 밝은 스님이었습니다. 다른 스님들은 잠이 들면 공부가 안 되는 병통을 지적하지 못했는데, 담당 스님 한 분만이 정확히 짚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생 시봉하며 여기서 공부를 성취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담당 스님이 55살에 입적하였습니다. 참다운 선지식을 만났는데 그만 일찍 입적했으니, 대혜 스님으로서는 큰일 아닙니까. 그래서 담당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스님이 입적하시면 제가 누구를 의지해야 일대사一大事를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서울에 근파자勤巴子라는 원오극근 선사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아직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그는 참으로 본분종사本分宗師, 명안종사明眼宗師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원오 스님을 찾아가면 네가 반드시 대사를 성취할 것이다.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그래서 대혜 스님은 담당 스님이 입적하고 난 뒤에 모든 후사를 처리하고 원오 스님을 찾아갔습니다. 찾아가면서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습니다. 
“만일 내가 원오 스님을 찾아가서 원오 스님도 다른 선지식과 마찬가지로 내 병을 지적해 내지 못하고 선뜻 인정해 주는 척하면, 선이라는 건 말짱 거짓말이니 ‘선은 없다’라는 논을 짓고 『화엄경』이나 한 질 사서 평생 읽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원오 스님을 찾아갔는데 바로 찾아가질 못하고 10년이나 세월이 걸려서 찾아갔습니다. 찾아가 보니, 담당 스님과는 또 다른 큰 스님이었습니다. 거기서는 도저히 말도 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금도 항의하지 않고 무조건 원오 스님의 지시를 받아 공부를 했습니다. 그때 서로 주고받은 문답이 지금 내용입니다. 
대혜 스님은 원오 스님에게 “제가 잠들기 전에는 부처님이 칭찬한 것은 부처님이 지시한 대로 행하고 또 부처님이 금하고 꾸짖은 것은 감히 범하지 않습니다. 이전에 의지했던 스님으로부터 얻은 것이니 스스로 공부를 해서 얻은 것 등을 성성히 사량할 때에는 다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좌상에 앉아서 반쯤 잠이 들고 반쯤 깨어 있는 때, 즉 잠이 깊이 든 건 고사하고 조금 졸리기만 해도 그만 캄캄해 공부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대혜 스님이 공부해 얻은 것들이 다 달아나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꿈에 금은보화를 보면 꿈속에서 한량없이 기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깨어 있을 때 금은보화를 보면 부처님 가르침대로 탐심을 조장하는 것이라 여겨 독사처럼 보는데 꿈속에서 금은보화를 보면 환희한 생각이 납니다. 또       ‘꿈속에서 여러 나쁜 경계를 보면 겁이 나서 벌벌 떠니, 스스로 생각해 보건대, 이 몸이 늘 있어도 꿈속에서는 주재를 하지 못하니, 지수화풍이 다 나누어 흩어지며 온갖 고통이 불꽃같이 함께 몰려오면 어떻게 따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끄달릴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즉 공부가 제대로 안 되어 죽음에 이르면 모든 고통과 번뇌가 한꺼번에 몰려와서 한 군데로 돌아갑니다. 그때 가서 한꺼번에 공부하려고 발버둥치며 업보를 면하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러한데 아무리 바쁘게 설쳐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한탄입니다. 목마른 뒤에 샘을 파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결국 대혜 스님이 공부한다고 돌아다니면서 노력한 것이 조금 있는데 꿈속에서는 유지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꿈속에도 안 되는 것을 어떻게 공부라 할 수 있겠으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이 물음에 대해서 원오 스님이 손으로 대혜 스님을 가리키며 ‘멈추고 멈추어라. 망상을 쉬고 망상을 쉬어라’라고 했습니다. 말 그만해라,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뜻입니다. 또 대혜 스님이 지금 말하고 있는, 불법이니 선이니 교니 세간법이니 출세간법이니 하는 그것 전체가 망상이라고 했습니다. 그 망상이 모두 없어질 때 ‘오매항일’ 즉 스스로 자나 깨나 한결같은 그런 경지에 이를 때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망상을 쉬고 망상을 쉬어라’고 한 것은 숙면이든 몽중이든 이것은 전부 제6식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제6식이 기멸하면 절대로 오매일여가 되지 않습니다. 몽중일여가 안 된다는 말입니다. 몽중일여가 되려면 반드시 제6식의 분별망상을 다 쉬어야 합니다. 내가 앉아 봐서입니다. 좌선한다고 앉아 있지만 몽중일여는 그만두고, 객진번뇌가 들끓는 것이 좌선하기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대혜 스님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매일 스스로를 돌아보니 잠들었을 때와 깨어있을 때가 분명히 양단인데, 그 몽중경계와 일상경계가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입니다. 잠이 깊이 들면 캄캄하고 잠이 깨면 또렷또렷하고, 그렇게 깨어 있을 때와 잠들었을 때가 분명히 달랐습니다. 
꿈속에서도 옳게 안 되는데 어찌 입을 크게 벌려 선을 설하겠느냐고 했습니다. 뭘 알았다고 조사가 어떻고 부처가 어떻다는 말을 함부로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병 고치기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자꾸 범하니, 어찌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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