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에세이 - 느낌 알아차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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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세이 - 느낌 알아차리기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09.2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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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현

서너 시간 책을 보거나 글을 쓰다 보면 눈이 시리고 침침하고, 허리가 뻐근한 느낌이 일어난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창 너머 맑은 하늘을 보면 상쾌한 느낌이 뒤따른다. 삶이란 이와 같이 내내 느끼고 표현하는 일이다.
  우리는 눈·귀·코·혀·몸의 다섯 감각의 문과 마음이라는 문을 통해 매순간 우주 삼라만상과 마주한다. 코의 감관이 냄새라는 대상을 바람에 따라 맡고 이것이 똥냄새인지, 향긋한 냄새인지 아는 마음이 일어난다. 그 마음이 대상을 알고 나서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거나 괴로워한다거나 하는 것은 마음의 역할이 아니다. 
  마음은 아무런 조건 없이 만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대상을 아는 것으로 그치고 그 후에 어떻게 반응하거나 무엇을 꾸미지 않는다. 마음이 대상을 알고 나서 괴로워하거나 즐거워하는 것은 수受라는 느낌이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안다는 것은 모두 느낌과 함께 한다. 몸이 아파서 괴로워하는 것은 육체적인 느낌이고 이것이 증폭되어 마음까지 아픈 것은 정신적인 느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감각적 쾌락을 충족시키려고 더 좋은 느낌을 추구하기 때문에 항상 느낌의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 탐착[貪]은 즐거운 느낌에서 비롯되며, 회피나 성냄[嗔]은 불쾌한 느낌에 연결되고, 어리석음[痴]은 즐겁지도 않고 불쾌하지도 않는 느낌에서 생긴다. 
  마음에는 이런 세 가지 느낌의 바람이 일어난다. 느낌은 항상 ‘지금·여기’에 자리하고 있다. 즉 내 몸과 마음에 있고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욕五慾의 즐김은 인간의 본성이라서 그 자신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하여 집착하고 반응함으로써 그러한 욕망을 밖으로 드러낸다. 
  마음이 밖으로 나가면 좋거나 싫거나 반응을 하게 되어 번뇌를 일으켜 매순간 형상·소리·냄새·맛·촉감 등에 끌려가 느낌의 노예로 살게 된다. 강물 위의 조각배처럼 즐거운 느낌에 벌써 끌려가고 불쾌한 느낌에 이미 짜증을 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알짝지근한 취기에 내 몸을 맡기고 우울과 불안의 느낌을 회피할 때도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부귀영화가 모두 느낌이다. 느낌이 갈애를 낳기 때문에 느낌을 얻기 위해 업을 짓는다. 흡연과 알코올 중독, 도박, 사랑, 돈, 명예, 권력 등등은 모두 느낌을 조건으로 한 갈애에서 생긴 집착 때문이다. 
  느낌이 일어날 때 그 순간을 포착하여 느낌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연기가 회전하여 갈애를 일으키고 집착을 하여 불선의 업을 짓게 된다는 게 부처님의 교설이다. 
  느낌은 찾아온 손님이다. 그것들은 인연법에 의해 나타날 만해서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찾아온 손님을 내치거나 방치해서는 안 된다. 찾아온 손님을 ‘그냥 찾아왔네!’라고 알아차리는 ‘느낌 명상’을 해야만 번뇌를 소멸시킬 수 있다. 
  느낌은 조건발생적인 것으로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내 느낌이 아니라는 앎과 봄을 통해 지혜바라밀이 완성된다. 느낌의 세 가지 성품에 대해 지혜롭지 않게 마음에 잡도리하면 수많은 고통을 낳게 한다. 느낌에 끌려가면 세간의 삶을 사는 것이고, 끌려가지 않으면 출세간의 삶을 사는 것이다. 
  세존께서 느낌에서 ‘무상·고·무아’의 법을 보시고 108번뇌를 멸진시켜 열반을 성취하셨다. 부처님의 무상정등각은 보리수나무 아래가 아니라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지 않는 자리이다. 그런 까닭에 여기를 ‘황금의자’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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