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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네정정진의 ‘길 위에서’ (29)

태풍 타파가 비를 엄청나게 뿌리고 지나갔다. 텃밭에 심어놓은 우리 집 일 년 양식, 검정콩이 그만 쓰러져 누웠고, 가을꽃으로 심어놓은 코스모스도 상처투성이 잡초로 변했다. 이만 하기를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는데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1층 천정에 손바닥만큼 물기가 맺혀있는 걸 발견했다.
 어젯밤 광풍에 폭우까지, 게다가 40년이 넘은 집이 아닌가! 틀림없이 오래된 건물 틈 어디로 빗물이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것이 지붕을 타고 천정을 적셨을 것이다. 누구라도 이런 추측이 가능했다. 우리 부부도 역시 그랬다.
 비가 새는 것도 아니고 촉촉이 젖어있는 정도인 것을 다행이라고 위로를 삼았다. 천정은 곧 마를 것이고 날이 좋으면 살펴서 방수를 단단히 하면 되는 일이다. 게다가 우리는 태풍 다음 날 아침 1박 2일로 서울 가는 (일정 변경이 불가한) 초특가 비행기 표를 예약해 놓았다. 그 말은 굳이 다급한 일이 아니면 그 비행기를 타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만하길 다행라고 생각하며 서울 가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물론 천정에 스며있던 물기 같은 것은 까맣게 잊고 볼 일을 잘 보고 이틀 만에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이틀 동안 말라있어야 할 천정은 물에 통통 물어 터질 듯이 배가 불러있었고, 여기저기 바닥으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범인은 2층 싱크대 밑 수도관이 느슨해지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것이 공교롭게도 태풍 타파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딱 그 시간에 맞추어 이렇게 어마어마한 연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똑! 똑! 물이 떨어지고 있다. 
누구라도 이 현상을 발견하면 태풍이 몰고 온 폭우 때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너무나 완벽하게 보여주는 현상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었던 또 다른 진실 사이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원인은 싱크대 연결 호스만 교체하면 되는 간단한 일로 끝이 났지만  오해와 이해 사이에도 어마어마한 공간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우리가 정말 제대로 바라보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있다고 누가 확신하겠는가? 하필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지기도 하니까.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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