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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세이 - 생각 바라보기
유 현

사람은 한시도 생각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일부러 일으키지 않아도  생각은 쉼 없이 일어난다. 오감이 바깥 경계(대상)에 부딪치면 생각만이 아니라 느낌이 쌍둥이처럼 함께 생긴다. 
느낌과 생각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느낌이 생각을 강화시키기도 하고, 반대로 생각이 느낌을 발생시키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운전 중 앞 차가 끼어들기 하거나 상대가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면 성냄이 일어나고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얼굴이 화끈거린다. 
불교 심리학에서는 마음識은 단지 대상을 알뿐이고, 마치 왕이 그 수행원들과 함께 오듯 아는 마음이 일어날 때 괴로워하거나 즐거워하는 것은 수受라는 느낌이 하는 것이고, 생각하는 것은 상想이라고 하는 지각이 하는 것이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행行이라는 의도가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보거나 듣는 대상을 접한 첫 1∼3초 동안을 되새겨 보자. 마치 초당 스물두 장의 사진이 모여서 연속적으로 보이는 영화를 만들 듯, 느끼고 인식한 작은 조각들이 연속되고 통합된 것처럼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과정에서 ‘나’에 대한 인식은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는 보통 의식에는 주체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데, 의식은 주체 없이도 가능하다는 것이 현대 뇌 과학자들의 통설이다. 
 다양한 인생사가 ‘경험자기’와 연결될 때 내가 느끼고 생각한다는 관념이 생길 수 있다. 자아 개념은 ‘개개 인간의 DNA와 경험과 학습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과학적 논증이 지난 세기 말 티베트의 선지식들과 미국의 뇌 과학자들의 실험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속담이 그러하듯, 우리는 각자 자신의 학습, 경험, 기억 등의 과보심에 따라 형성된 자아의식에 상응하는 수준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읽고 생각한다. 이 말은 자기의 고정관념 또는 선입견에 가려 대상의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자아는 없고 행위만 있다.’고 가르친다. 미국의 유명한 건축가 벅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는 “나는 동사로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가족의 일, 직장의 일, 일가 친족이나 지인들의 경조사, 늙음과 건강, 뉴스를 통해 접하는 세상사 등등. 사람마다 모두 다 같을 수는 없으나 세속적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매혹적인 것들을 찾아 요리저리 생각을 굴린다. 생각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즐겁고 달콤한 곳에 내려앉는다. 
무엇인가를 좋아한다는 생각은 그것을 원한다는 뜻이며, 무엇인가를 싫어한다는 생각은 그것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생각은 강한 욕망 주변에서 체계화된다. 부정적이고 해로운 생각을 긍정적이고 유익한 생각으로, 비합리적인 생각을 합리적인 생각으로, 현실적이지 못한 생각을 현실적인 생각으로 조정하고 관리하겠다는 것조차도 탐심貪心의 움틈일 뿐이다.
생각이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고 내버려두지 않을 때 생각의 노예가 된다. 호흡을 닻으로 여겨 호흡에 집중하면 욕조의 마개를 뽑아내듯 이완 반응이 나타난다. “생각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 유산일 뿐이다.”라는 눈 밝은 이들의 말씀이 오롯이 다가온다. 
생각은 자신이 처한 사회적 관계에도 크게 의존한다. 개개인의 생각이 무리를 형성하여 집단의사로 표출될 때 진영 논리를 형성하여 크고 작은 갈등을 넘어 공동체의 균열과 붕괴로 이어짐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실감할 수 있다.     
현존하는 제주사회의 갈등인 ‘성산 제2공항 건설’이나 ‘조국 장관 임명을 둘러싼 따름順·거스름逆의 힘겨루기가 깊어질수록 필연적으로 인간 및 사회관계의 안전성을 위협하는 독毒으로 작용한다. 
이 상대적인 프레임의 엉킴과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혜안은 있는 것일까? 결자해지의 격언이 사무쳐 온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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