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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불교유적-서천암에서 선승 혜일이 머물며 아름다운 시 남겨도인 종해가 고려말 창건해 돌미륵만 유물로 전해와

고려중기에 창건된 서천암은 동국여지승람에 도근천 상류에 있었다고 적혀있다. 지금의 붉은밭 북쪽이고 무수천 1경인 보광천(葆光川) 바로 앞인 2279번지 일대다. 서천암이 이름 높은 것은 것은 탐라 3기(三奇)라 칭송받았던 혜일 스님 때문이다. 혜일은 학승으로 중국유학을 다녀왔으며, 그의 시가 매우 뛰어나 불교 배척을 일삼던 유학자들도 애송하였다고 한다. 
혜일이 서천암에서 지었다는 시에는 서천암을 창건한 사람을‘도인(道人) 종해(宗海)’라고 지칭하고 있다. 서천암에서 발굴되었다는 미륵입상은 지금‘돌나무식당에 보관되어 있는데, 그 조성양식이 고려초기의 민중적인 미륵부처의 형태를 갖고 있다.   
그리고 혜일이 제주에 머문 시기는 고려 충렬왕 무렵인 1275년에서 1308년 사이다. 그가 이때 도인 종해가 서천암을 창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최소한 1200년대 초반부터 이 사찰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혜일은 법화사, 묘련사, 보문사, 서천암 등에 시문을 남기고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따르면,“고려의 정언(正言) 이영(李潁)이 완도에 유배되자, 그의 숙부인 중 혜일이 따라와서 찾아보고 곧 섬(제주)으로 들어가 절을 짓고 살았다”고 하였다. 이를 근거로 유추해보면 중 혜일이 제주도에 들어와 여러 절들을 돌며 시를 남긴 것은 이영의 완도 유배시기인 고종 36년(1250) 전후로 보이므로, 제주도 내의 절들은 최소한 고종(1214~1259)시대 전반기에는 이미 존재했을 것이다. 혜일은 이영의 숙부이며, 속성은 이씨이다. 제주 전역을 두루 다니며 수행을 하였고, 산방산 산방굴사를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서천암은 고려시대 고승인 혜일 스님이 수도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하여 <탐라지(耽羅志)>, <남사록(南槎錄)> 등에 서천암의 존재와 더불어 혜일 스님의 시가 기록되어 있다.


이원진의 <탐라지(耽羅誌)>에는 ‘재조공천상(在朝貢川上)’  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김상헌의 <남사록>에도 ‘도근천상금폐(都近川上今廢)’   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공천(朝貢川)이나 도근천(都近川) 등의 하천 이름은 지금의 외도천을 말한다. 
서천암은 12세기 경에 창건되었으며,

고려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서천암 터와 이곳에서 발견되는 각종 와편들. 서천암은 창건주와 창립시기등의 역사적 근거가 뚜렷이 남아 있는 유적이지만, 지금은 우물터만 희미하게 남아 있다.

김상헌이 <남사록>을 기록할 당시인 1601년(선조 34) 경에 폐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천암 절터는 두 하천이 만나고 동·서·남쪽으로 높이 10m 정도의 구릉이 어우러진 곳에 위치하고 있던 곳으로 해안동 2279번지로 추정된다. 유물로는 12세기에서 17세기까지의 유물인 청자국화문흑백상감 편, 분청사지백상감편 등의 도자기 편과 도질토기 편, 그리고 당초문암기와 편 등이 발굴되었다. 수십 년 전에 하천 변에 있던 석불(石佛)은 지금은 돌나무 식당에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현재 서천암지에는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많은 수량의 기와, 도자기 등이 산포되어 있다.

조공천(朝貢川) 위 서천암(逝川庵)  시 : 혜일

漢拏高幾仞(한라고기인: 한라의 높이는 몇 길이던가)
絶頂瀦神淵(절정저신연: 정상의 웅덩이는 신비로운 못)
波出北流去(파출북유거: 물결이 넘쳐 북으로 흘러가니)
下爲朝貢川(하위조공천: 저 아래 조공천을 이루었네)
懸瀑亂噴沫(현폭란분말: 내걸린 폭포에선 어지러이 물방울 튀며)
走若珠璣圓(주약주기원: 둥근 구슬처럼 달아나는데)
驚湍激群石(경단격군석: 놀란 급류는 여기저기 바위에 부딪히다)
間作甕盎穿(간작옹앙천: 간혹 동이처럼 파이기도 한다)
安流得數里(안류득수리: 잔잔히 흘러 몇 리에 이르니)
澄淨涵靑天(징정함청천: 맑고 깨끗함은 푸른 하늘을 적시는데)
道人有宗海(도인유종해: 종해라는 도인이 있어)
卓庵向川邊(탁암향천변: 냇가를 향해 우뚝 암자를 세웠다)
旣從山水樂(기종산수락: 이미 山水의 즐거움을 따랐고)
且寄香火緣(차기향화연: 또한 香火의 인연에 기대었는데)
涼秋佳月夕(양추가월석: 서늘한 가을, 달 고운 저녁이 와)
掃石開客筵(소석개객연: 바위 쓸어 손님 맞을 자리 마련하도다)
嘗新剝棗栗(상신박조율: 새로움을 맛보려 대추와 밤을 따고)
談古窮幽玄(담고궁유현: 옛 이야기 하다 그윽함이 다하니)
因思仲尼語(인사중니어: 공자의 말을 떠올리고)
頗憶小聖禪(파억소성선: 자못 소성의 선도 생각한다)
由斯無生理(유사무생리: 이런 까닭에 삶의 이치가 공한 것을)
名以期遐傳(명이기하전: 절이름 삼아 오래 전해지기 기대하나니)
如能高著眼(여능고저안: 만약 그 뜻에 높이 착안한다면)
波波皆不遷(파파개불천: 물결이 모두 떠나가는 일은 없으리라)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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