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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숨만 쉬자김대규 화백의 나의 수행록①
김대규 화백은 1987년 광주 남도예술회관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후로 미국과 중국, 인도, 네팔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걸쳐 총 20회의 개인전을 가진 중견화가이다. 이뿐만 아니라 국가지정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고법 이수자로 지난 2010년에는 제주아트센터에서 3시간에 이르는 수궁가를 완창했다. 저서로는 시화첩“지금도 부르고 싶은 사랑가”, 판소리수궁가 사설집 등이 있다. 현재 사단법인 로천 예악진흥협회 이사장으로 있으면 우리 예술의 깊이 있는 매력을 전하는데 힘쓰고 있다. 평생 불교신행과 다양한 수행을 해 오던중 한국불교수행법으로는 큰 성취를 이루기 어렵다는 자각에 따라 지난 2014년부터 미얀마 쉐우민명상센터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하였고, 이듬해부터 파욱명상센터에서 수행을 해오고 있다. 앞으로 총 6회에 걸쳐 수행의 체험적 이야기를 소개하여 불교수행에 대한 도움을 주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제1장 앉아서 숨만 쉬자
② 제2장 어려울 수 있다
③ 제3장 거룩한 고요
④ 제4장 교학의 오해
⑤ 제5장 명상수행의 이유
⑥ 제6장 수행자여!

 

 앉아서 숨만 쉬란다. 잘 먹여주고 ‘꾸띠’라는 독립가옥을 주어 혼자 살면서 앉아서 숨만 쉬란다. 그것이 전부다. 그래서 난 앉아만 있었다. 숨만 쉬고 있었다. 얼마나 쉬운 일인가? 아무 짓도 말고 어떤 생각도 말고 그냥 앉아서 숨만 쉬란다. 천하에 쉬운 일 아닌가? 그러나 막상 해보니 나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궁금했으나 내 발등의 불이 중요한 것이란 진리를 그때야 스스로 알아차리게 되었다. 어찌되었든 앉아서 숨만 쉬는 것이 가능해 질 때까지 그냥 앉아 있는 것이 거룩한 수행이란 것이란다. 
앉아보면 알겠지만 앉는 순간부터 생각과 잡념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 생각과 잡념에서 나를 끌어내야 한다. 그렇게 끌어내어 놓는 순간 생각과 잡념에서 벗어낫다는 생각부터, 생각과 잡념에 다시 빠지지 않겠다는 생각에 또한 빠지고 만다. 
무상무념이란 것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인지 또한 의심에서 헤매고 만다. 망연자실할 수밖에... 실의에 빠져 있을 무렵, 다행스럽게도 나도 모르게 숨만 쉬라고 했으니 숨 쉬는 것에만 신경을 쓰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 이것이로구나. 숨 쉬는 것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보니 다른 생각이나 잡념이 조금은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생각이나 잡념은 호흡을 제치고 나를 점령했다. 질 수 없다는 의지로 잡념과 망상을 떨쳐 버리고 호흡에 집중하기를 수십 수천 번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양곤의 쉐우민 센터 지도자 떼자니아 사야도께서 인터뷰때 지도해주신 말씀을 떠올리며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 말씀은 바로 “알아차림”이란 것이었다. 
내 호흡을 알아차리는데 길고 깊게 들이쉼과, 얇고 가벼운 내쉼이나 바쁜 들이쉼과 천천히 내뿜는 내쉼, 한두 번에도 금방 망상이 들어와 있고 어느새 잡념에 젖어 있는 나를 보고 은근히 화가 나고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호흡에 몰입하기 위한 잔꾀를 냈는데 들숨날숨에 각각 숫자를 매겨보았다. 예를 들면 들이 마시면서 하나, 둘, 셋 동안 들이마시고, 하나, 둘 동안 내쉬고, 하나, 둘, 셋, 넷 동안 멈추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듯 했으나 숨이 가쁘거나 힘이 들어 금방 피곤해지기 일쑤여서 결국은 정해진 숫자를 그때그때 몸 상태에 따라 줄이거나 늘이거나 할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라도 망상이나 잡념 없는 호흡몰입이 약간은 이루어진 듯했다. 그렇게 알아차리는 호흡을 계속하던 중 떼자니아 쉐우민 사야도의  가르침에 따라 호흡만을 알아차리는 것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갖가지 대상들을 알아차리는 것을 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콧구멍이 갑자기 간지럽다든지, 다리가 저리다든지, 허리가 아프다든지, 배가 고프다든지, 편두통이 온다든지, 귓구멍이 가렵다든지,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든지 등등의 갖가지 증상들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다른 때 같으면 손으로 긁거나 몸을 움직거리거나 했겠지만 닥쳐온 그 대상에 집중하거나 그 증상에 한 발 멀리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서 그 증상에 대해 알아차림을 하게 되었는 데, 그 알아차림 자체가 내가 아니고, 내 마음이란 놈이 한다는 것을 은연중 자각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러한 알아차림은 끝도 없고 쉼도 없이 마냥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잠에서 깨어서부터 잠들 때까지 내 의식이 있는 한 계속 할 수 있는 것이어서 내 생활에 새로운 꺼리가 생긴 것이었다. 
그런데 눈을 감고 앉아서 알아차림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눈을 뜰 때까지 줄곧 감은 눈으로 보이는 불빛이 있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그 불빛들은 최초에는 흰색이나 청색의 불꽃들이었는데 그 광채가 점차 밝아지고, 그 크기 또한 커지거나 혹은 작은 여러 개의 불꽃으로 폭발하거나 빠른 속도로 움직이거나 꺼졌다 생겼다하며 흔히 보는 밤하늘의 불꽃놀이와 너무나 흡사한 것이었다. 실은 이러한 불꽃이 보이는 것은 20대부터 눈만 감으면 의례히 보이는 것들이어서 모든 사람들이 꿈을 꾸듯이 그러한 광채를 보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러한 광채들이 알아차림 명상이 잘 되어갈수록 더욱 요란하고 화려하게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어떤 때는 그 광채가 크게 폭발하거나 내 앞에 쏟아져서 깜짝깜짝 놀라 몸을 피하거나 움츠리는 경우도 많았다. 
어느 날, 사야도 인터뷰에서 내가 보는 불꽃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그것에 신경 쓰지 말고 무시하라. 알아차림에 전념하라”는 해답을 주셨다. 그 말씀에 따르고자 무척이나 노력을 기울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그렁저렁 시간을 보내며 그저 “알아차림”에 집중하고 있었다. 사야도와의 인터뷰 내용이 여기저기 알려지고 소문이 소문을 내어지고 어지 어찌 하던 중 나는 수행처를 옮기게 되어 만달레이 북쪽에 있는 삐누린파욱센터에 입성하게 되었다. 

파욱명상센터의 꾸띠


파욱 사야도와 첫 인터뷰에서 나의 호흡명상과 알아차림 공부의 실태를 말씀드렸더니 “인중에 집중한 호흡”만 하라는 단순한 지침을 주셨다. 인중에 집중하여 들숨날숨을 철저히 검문하는 일만 하란다. 그렇게 하니 나의 수행방법이 훨씬 쉬워졌다. 그렇게 수행을 하고 다음 인터뷰에서 다시 질문했다. “눈만 감으면 스스로 시작되는 광채들의 불꽃놀이를 어찌합니까?”
그러자 사야도께서 호통을 치듯이 단호한 답을 주셨다. “신경 끄고 인중호흡만!!” 큰 잘못이나 한 것처럼 호된 지침을 받고 돌아왔다. 그 지침대로 수행을 하던 3~4일후, 그 요란하고 화려했던 광채며 불꽃놀이가 먼지하나 없이 사라졌다. 사라진 그 빈곳에는 어둡지도 않고 밝지도 않고 아무런 색도 없고 소음도 없는 그저 허공 자체가 있을 뿐이었다. 그 허공은 자체가 신비롭고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내 평생 이렇게 멋진 허공을 상상이나 해 봤던가. 그저 행복하고 감사하고 거룩한 고요 그 자체였다. 
그러나 망상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수시로 때때로 가끔 어쩌다 자주 찾아오거나 이미 나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예전처럼 화가 나거나 짜증나거나 조급해 하지 않고 선뜻 거기서 벗어나와 나의 호흡에 집중하기를 아주 자연스럽게 반복했다. 그 반복이 나에게는 진짜 수행이었다. 
처음에는 1분도 안되던 것이 2분이 되는데 보름이 걸렸다. 10분도 안되던 것이 한 시간이 되기까지 한 달이 걸렸는데 그것이 기적이란다. 그런 후 90분까지 되는 데는 2년이 걸렸다. 
졸림이 완전하게 해소되고, 청명한 상태로 흐르는 시간을 분 단위로 알아차리게 되었으며, 니밋따(nimitta, 표상)를 내 의지대로 운용할 수 있게 된 것은, 내 수행 과정의 한 지점을 향해 가고 있을 뿐이었다.
현대인들은 서구화 된 물질문명으로 알게 모르게 받게 되는 온갖 스트레스와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명상을 선택하고 있다. 그리고  올바른 삶을 위한 명상법이 동서양 할 것 없이 전 세계에 성행하고 있다. 인간으로 태어나 이런 공부를 만난 것은 큰 복이다. 이렇게 큰 감복을 받은 수행의 행복을 누구나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누렸으면 좋겠다. 
나는 수행자의 길에 들어서서 언제부턴가 숨만 쉬고 앉아서 거룩한 고요를 지니며 나를 만난다. 사두! 사두! 사두!            <계속>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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