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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 자리이타 정신으로 국민훈장동백장 수훈한 양방규 회장제주불교가 만나 본 사람들(5) 제23교구본사 관음사 양방규 신도회장

삶은 언제나 만남의 연속이다. 그 만남이 사람과의 만남이든 자연과의 만남이든 늘 함께 하고 있다. 사람들마다 행복의 기준은 다르다.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갈 때 행복의 문은 열리게 될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정신으로 살아가며 자리이타의 정신으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 본사 관음사 양방규 신도회장을 만났다.

▲이달에 개인이 받을 수 있는 가장 명예롭고 큰 훈장을 수훈 받으신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해주십시오.
△남들도 많이 하는 일인데, 뜻하게 않게 큰 상을 받게 되어, 기쁨에 앞서 어깨가 더욱 무겁습니다. 조용히 하는 일인데, 훈장까지 받아서 부끄러울 뿐입니다.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게 된 것은 큰 봉사활동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평가를 받았다고 봅니다. 먼저 취재한 공적을 살펴보겠습니다. 회장님은 먼저 안전문화정착을 위한 범국민 의식개혁운동을 전개해 국민이 행복한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2009년부터 앞장서 왔고, 2017년에는 바르게 살기운동 전국 여성지도자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습니다. 또한 2019년 바르게 살기운동 전국 시도 임원 워크숍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데 힘써왔으며, 법질서 확립 및 기초운동지키기 운동과 가정사랑실천 사랑나눔으로 실천참여 문화를 선도하셨습니다. 또한 국제행사 성공개최를 위해 제주홍보 및 친절캠페인을 전개, 효자효부시상식 및 가정사랑실천 캠페인을 전개해 왔으며, 특히 북한이탈주민과 바르게살기 임원들이 결연을 맺고 제주 전통문화체험 한마당 개최, 지역사회에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사회봉사에 대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하게 됐다고 봅니다.
△제가 한 일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자세히 분석하셨군요. 부끄럽습니다.
▲어렸을 때 기억으로 돌아가 보렵니다. 아름다운 추억이 있을 덴데요?
△제주시 삼양이 본 고향입니다. 특별한 추억은 없지만, 어머니 따라서 사찰에 나가서 사찰문화를 조금씩 접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 그러시면 그 때부터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어린시절에 다녔던 사찰은 지금의 사찰과 다르겠습니다만, 결혼해서도 아내와 함께 절에 나가면서 불심을 돈독 하게 해 오는데 마음을 기울려 왔습니다. 지금의 관음사는 제가 우연한 기회에 산사를 찾아갔을 때 불교문화대학 제8기 모집 현수막을 보고 제대로 불교에 입문하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 후 8기생들이 중심이 되어 ‘한곳 봉사단’ 을 조직해서 태고원 등 사회복지시설에서 족욕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시면 불심의 원동력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되시는지요?
△남을 돕는 게 바로 자신의 행복이라고 늘 생각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회장님은 사회체육에도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활동을 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말씀을 주셨으면 합니다.
△제주도가 체조부문에 있어서는 불모지였지요. 그래서 체조협회에서 활동할 때 고교생을 선발해서 국가대표로 선발되기도 했고, 국제대학 체조팀과 삼다수 실업팀을 창단하는데 힘을 조금 보탰습니다. 체조협회의를 그만 두고 나와서는 농아인 연맹에서도 4년간 봉사활동을 펴 왔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현재 경영을 하고 있는 분야는 전력 회사인데요? 언제부터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요?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된 것은 전문대학의 전기과를 졸업했기 때문입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주간을 다니다가 야간으로 변경하고, 휴학도 하며, 직장을 다니면서 주경야독해서 4년 만에 졸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졸업을 하고 나서 첫 직장은 지금은 없습니다만, 동방건설 전기부에 처음 입사해서 15년 동안 회사생활을 해오다가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1995년에 한라전력회사를 창사하고 지금까지 이끌어 오고 있습니다.
▲전력하면 먼저 위험스럽기도 하고 두려운 느낌으로 다가옵니다만, 기억에 남는 일이라도 ?
△큰 충격이 눈 앞에서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공사를 하다가 전주에서 떨어지거나 감전돼서 죽을 고비를 넘기는 일들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회사를 경영해오시면서 어려움이나 힘들었을 때도 있었겠죠?
△물론입니다. 97년 전까지는 회사가 경영성과가 좋아서 직원이 30명을 넘어섰는데, 가장 어렵고 힘든 상황은 1997년 IMF 때였습니다. 그 당시는 저희 회사만이 아니었죠. 국가가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회사로서는 더욱 경영을 잘 펴나가기 위해 집과 상가를 팔아서 회사를 살렸던 일이 생애의 최고 힘든 과정으로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현 사회를 보면서 느끼시는 점이 있다면 ?
△사회가 복잡하고 어려워질수록 부님의 가르침인 ‘지리이타(自利利他)’를 더욱 가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봅니다. 
▲평생 마음에 간직하고 자신을 믿어온 좌우명이 있다면 ?
△한미다로 ‘우공이산’이란 고사성어(故事成語)를  가슴 깊이 간직하면서 실천해왔다고 봅니다.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판 것이 성과를 가져온 것으로 이것이 지금의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도내에는 사찰들이 많습니다만, 사찰의 숫자대로 불심이 제각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종파를 넘고, 편 가르기식으로 불심이 흩어져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신도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의 불성이 되었으면 하고 기원해봅니다. 성불하시옵소서.

김익수 대기자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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