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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한들의 위대한 도시 Bagan이정하(여행작가)

불교혁신 이끈 아라한 싱의 불교성지 바간
힌두와 대승으로부터 상좌 불교 지킨 위대한 왕 아노라타
아라한과果 득도 수행전통 가득한 불교도시문명 꽃피워 

 

전설에 의하면 기원전 9세기에 석가모니 붓다의 종족인 아비라자가 카필라바스투에서 미얀마로 건너와 미얀마 최초의 국가인 타가웅을 건설했다고 한다. 그 후 고타마 싯다르타가 득도하여 석가모니 붓다가 된 후 미얀마의 레가인, 슈세트, 프롬 등의 지역을 돌며 설법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석가모니 붓다가 재세시에 인도 이외의 나라를 방문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 이런 전설은 미얀마인들에게도 석가모니 붓다의 후예라는 자긍심을 심어 줘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불교가 전승되어 올 수 있는 것은 물론, 인도에서 굽타 왕조 이후 힌두교의 부흥으로 인하여 불교와 사원이 곤란을 겪고 있을 때 아주 긴 기간 동안 미얀마의 왕실이 인도에 있는 사원과 승단을 위하여 각종 물질적인 것들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 되었다.

바간은 미얀마의 옛 수도였고, 지금은 불교순례의 중심지다. 한때 바간은 아시아 지역의 구법승들이 꼭 찾아가야 하는 아라한 수행자들의 성지였으며, 불교학문의 융성한 근거지였다. 상좌부불교를 꽃피운 이 오래된 도시의 유적들은 미얀마인들이 생각하는 불교의 전설과 붓다의 가르침이 가득한 곳이다.


미얀마의 상좌부 불교는 버마족의 영웅 아노라타 왕(1044∼1077)이 미얀마 최초의 통일 왕조를 세우면서 시작됐다. 그 이전의 미얀마는 대승 불교는 물론 밀교까지 들어와 퍼져 있었다. 하지만 아노라타 왕은 통일을 이룬 후 불교 혁신 운동을 펼쳤다. 1057년 아노라타 왕은 몬의 수도 타톤을 공격하는 데 타톤을 공격한 이유 중 하나는 바른 승단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타톤을 정복하여 몬의 왕이었던 마누하까지 포로로 삼았던 아노라타 왕은 몬의 고승이자 아라한과를 증득했던 ‘싱’의 협력을 받아 빨리어 삼장은 물론 주석서들을 바간으로 옮겼다. 이 과정에서 ‘아라한 싱’을 따르던 500여 스님들도 바간으로 받아들여 빨리어 삼장을 중심으로 불교를 연구하도록 하였다. 이것이 미얀마 상좌부 불교의 시작이다.
바간 왕조 시대에 뿌리를 내린 미얀마 상좌부 불교는 스리랑카의 상좌부 불교와 빈번한 교류를 하기 시작했다. 특히 힌두교 세력을 내몰고 불교를 부흥시켜 상좌부 불교를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위자야바후 1세(1059∼1113)때는 스리랑카와의 교류가 가장 활발하였다. 이때 미얀마에서는 빨리 삼장과 흰 코끼리 1마리를 기증하였으며 이에 대한 보답으로 스리랑카로부터 붓다의 전골사리(全骨舍利)를 받았다. 1180년 웃다라지와 스님은 직접 스리랑카로 가서 정통 상좌부를 수학하고 미얀마로 돌아왔으며 그는 바간 북부 냐옹유에 스리랑카 양식의 사원을 건립하고 새로운 승단을 설립하였다.

미얀마 유적 관리국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바간 지역에는 524개의 파고다, 911개의 사원, 416개의 수도원, 892곳의 벽돌 무더기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볼 때 바간 왕조 시절에는 적어도 4,446개 이상의 사원과 탑이 있었다고 추정되며, 현재 바간 지역에 산재해 있는 작은 탑과 사원을 모두 합하면 총 3,122개의 유적이 남아 있다.


1287년 몽고군의 침입으로 바간 왕조가 멸망한 후 약 2세기 가량 군웅할거 시대가 지속되었다. 이 군웅할거의 시대는 산 족이 중심이 되어 페구와 아바를 각기 수도로 하는 두 개의 나라로 통합되었다. 이때 페구를 수도로 하였던 라만야데사의 담마체띠 왕(1472∼1492)은 출가 경력을 지닌 왕으로 ‘붓다라자(Buddharaja, 불교왕)’라 불리웠다. 1475년 담마체띠 왕은 차트라두타와 라마두타 2인의 정부 각료와 목갈라하나, 마하시발리 등 22명의 장로로 구성된 대규모의 사절단을 스리랑카로 파견했다. 당시 파견단은 불치(佛齒)에 공양할 선물과 미얀마 왕이 선물을 가지고 갔다. 이들은 스리랑카의 켈레니야 강의 선상에서 스리랑카의 망갈라 장로를 전계사로 하여 구족계를 받았으며, 스리랑카에서 제공하는 불치의 모조품, 보리수 나무의 가지·잎·종자, 스리랑카 불교 정화의 역사를 기록한 서적, 스리랑카 장로들의 편지, 게송 등 많은 선물을 가지고 귀국하였다. 특히 쁘락크라마바후 1세에 의해 대사파 중심으로 정리된 스리랑카 승단의 율법을 가져왔다.
이들이 귀국하자 담마체띠 왕은 도성의 근교에 여법한 도량을 갖추고 미얀마 내의 많은 젊은이들을 득도시켰다. 이 도량의 이름을 ‘켈레니야 도량’이라 하였고, 그 수계작법을 라마냐데사 수계작법이라 하였는데 그 수계작법을 이용하였던 파를 ‘라마냐파’라 하였다. 라마냐파는 남방 상좌부 불교의 주요 종파로서 지금까지 그 전통을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의 스리랑카에도 라마냐파가 존속하고 있다.


오늘날 미얀마는 인구의 약 90%가 상좌부 불교도이며, 9개의 공인된 종파가 있다. 사미승려를 포함한 전체 비구승려는 총 40만명에 이른다. 교학에 있어서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빨리 국가 시험과 사설 시험의 두 가지가 있다. 미얀마의 승려 교육 기관은 사설 교육 기관인 전문 강원과 국립 불교대학으로 대표된다. 사설 전문 강원이 전국의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설치되어 있고, 국립 불교대학은 양곤과 만달레이의 두 도시만 설치되어 있다.
미얀마에서는 ‘불사리탑’ 숭배가 널리 펴져 있다. 가정에서 생기는 모든 일들은 부처님을 대신하는 불사리탑 앞에 가서 고한다. 이 사리탑과 사찰의 관리는 재가 신자들이 맡고 있다. 현재 상좌부 불교국에서 승려는 물론 일반 재가자에게까지 수행의 전통이 가장 널리 보급된 나라는 미얀마이다. 전국 각지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수많은 명상 수행 센터가 있고, 이곳에서 다양한 수행법이 행해지고 있다. 이것은 다른 상좌부 불교국보다 두드러진 현상이며, 미얀마 불교의 특징이기도 하다. 따라서 미얀마는 ‘수행중심주의 불교’라 할 수 있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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