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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옛 가르침을 볼 줄 알아라박하은 (재가불자)

대법안선사(大法眼禪師)는 ‘인승간경송 (因僧看經頌)’, 즉 “마음이 어지러우면 경을 읽어라”고 하셨다. 대법안 선사가 어떤 스님이 경을 읽는 것을 보고 다음과 같이 게송하셨다.
 
금인간고교(今人看古敎) 
불면심중료(不免心中鬧)
욕면심중료(欲免心中鬧)
단지간고교(但知看古敎)

요즘 사람이 옛날의 가르침을 봄에 
마음에 시끄러움을 면하지 못하네. 
마음에 시끄러움을 면하고자 한다면 
다만 옛날의 가르침을 볼 줄 알아라.

나는 대법안선사를 떠올리면서 경전 읽기의 좋은 점을 생각한다. 곰곰 생각하면서 경전을 읽다보면 그것이 생각의 희열과 변화를 일으키고 논리적 사고의 체계를 갖추게 되면서 확신과 수행의 지침으로 나아갈 힘을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처님의 구구절절한 자비심과 지혜가 곳곳에서 나를 각성시킨다.     
대법안선사는 법안종(法眼宗)의 창시자이다. 법안종은 선종오가의 한 종파인데, 선종인데도 교외별전에 반대하고 교선일치를 주장했다. 스님은 885년 중국 절강성 여항현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전위(全偉) 선사에게 출가하였고, 희각(希覺) 율사의 문하에서 율을 익힌 후에 남복주(南福州)의 장경혜릉(長慶慧稜)선사에게서도 수학하였다. 그러던 중 소주(紹州) · 법진(法進) 두 스님과 함께 행각에 나섰다가 눈이 내려 발이 묶이게 되자 복건성의 석산 지장원(地藏院)에서 쉬어간 일이 있었다. 이때 지장원의 주지인 나한계침선사가 문익에게 물었다. “어디로 갑니까?” 문익이 행각하고 있다고 하자 나한은 다시 “행각하는 게 어떠합니까?”고 물었다. 문익이 “아직 모르겠다”고 답하자 나한이 “모르는 것도 불법에서는 친절한 것이다”고 답했다. 
또 행각에 나선 세 사람이 조론(肇論)에 대해 의논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 조론 중 ‘천지와 나는 같은 뿌리(同根)’이라는 대목에 가서 나한이 문익에게 “산하대지와 상좌와는 같은 것이요, 다른 것이요?”하고 물었다. 문익이 “다른 것입니다.”하고 답하자 나한은 양손가락을 세웠다. 문익이 이번엔 ‘같은 것’이라고 답하자 나한은 재차 두 손가락을 세웠다. 
눈이 그쳐 세 사람은 나한선사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떠나기로 했다. 나한이 일주문까지 전송하기 위해 나왔다. 헤어짐에 있어 나한선사가 마당에 있는 돌멩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돌은 마음 안에 있는가, 마음 밖에 있는가?” 이에 문익이 “마음 안에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나한은 “우리 출가수행자는 사방을 돌아다니므로 항상 가벼운 차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스님은 어찌하여 마음속에다가 돌덩이를 담고 다니는 것입니까?”고 되물었다. 문익은 무엇인가 답하고자 했으나 딱히 답할 수 없었다. 문익은 행각을 접고 지장원에 머물며 이 문제를 풀기로 했다. 날마다 그의 견해를 나한선사에게 올렸으나 한 달이 넘도록 어떠한 답도 들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나한이 낙담해 있는 문익을 불러 말했다. 
“불법이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자 문익은 “저는 말에 궁하고 이론이 다했습니다.”, “ 만약 불법을 논하고자 한다면 일체견저(一切見底)입니다.” 이 한마디 말을 듣고 문익은 대오각성했다. 이후 나한계침을 모시고 수행하기를 몇 해, 이윽고 그 오당(奧堂)에 들어가서 의법(衣法)을 잇게 되었고, 법안종의 창시자가 되었다. 
이렇게 선의 경지에 오른 대법안 선사께서 제자들에게 왜 경전공부를 그리 강조했을까? 경전을 보는 속에서도 번뇌 속에 있는 한 스님을 보고 게송을 지은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전공부가 가장 번뇌를 없애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불교에 들어와 공부하는 목적은 마음의 번뇌를 없애기 위해서다. 세상에는 탐진치 삼독만이 아니라 팔만 사천 가지 번뇌가 가득하다. 그것을 없애는 것이 불교수행이라고 한다. 번뇌를 제거하는 방법으로서 무엇이 마땅할까? 염불, 참선, 간경, 주력, 기도, 절 등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법안 선사는 경전읽기를 권하셨다. 나는 경전을 읽어도 생각과 마음은 늘 딴 곳에 가있다. 세상일은 그리 쉽게 지울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달리 묘수가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번뇌 속에 살더라도 오직 읽고 또 읽어보는 것이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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