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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세이 - 흙처럼 살리라
유 현

아파트를 떠나 흙과 더불어 살아온 지 16년이 흘렀다. 아내와 함께 거주하는 전원주택은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시골 같은 풍광을 가진 아란마을 감귤과수원 내 전망 좋은 곳에 터를 잡고 있다.
도심의 아파트는 공동 주거 공간으로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상징이나, 요즘엔 층간소음이나 주차 공간 문제로 입주자들 사이에 갈등이 첨예하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새들의 지저귐에 귀 기울이면 편안함이 느껴진다. 이런 자연의 소리에는 고유한 리듬인 ‘1/f파’가 있어 뇌의 알파(δ)파 활성화를 촉진시켜 마음을 쾌적하게 만들며 불안한 심리를 안정시키는 이완효과가 있다고 신경정신과학자들은 말한다.   
뜰 안에 새가 깃들여 있지 않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그건 이미 살아 있는 뜰일 수 없을 것이다. 오월에 부화한 새끼 꿩들이 까투리를 뒤따라 종종걸음으로 뜰 안으로 산보한다. 
집 주위엔 동박새와 직박구리의 쉼터인 회화나무, 대추나무, 비자나무, 감나무, 동백나무, 무화과나무가 있다. 여름철 잘 익은 무화과는 이 놈들의 맛있는 먹잇감이다. 늦가을에는 잘 익은 감귤과 노란 감, 추운 겨울에는 페리칸사스의 빨간 열매가 있어서 새들은 이 뜰과 숲과 과원을 떠나지 않는다.  
철따라 익는 과일이 튼실하고 맛있음은 흙의 토양이 건강하다는 징후이다. 지난 16년 동안 흙 살리기 한다고 단 한 번도 맹독성 농약과 살충제를 뿌리지 않아 흙속의 유익한 미생물들이 활성화되고 지렁이들의 개체가 증가되면서 온갖 무명초까지 번식하게끔 생태 환경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주말 농부인 나에게 제일 힘든 일은 풀베기이다. 봄, 여름, 가을 세 번 예초기로 풀을 벤다. 잡초는 과수가 차지할 땅과 공간을 점령하고 자양분과 수분을 빼앗기 때문이다. 잡초 키워서 장마 전과 장마 후에 때 맞춰 베어 주면 유기물로 환원되어 지력地力이 좋아진다. 
늦은 봄 풀베기를 하다보면 매년 무성한 풀숲에서 알을 품은 까투리를 만나기도 한다. 또 그 주변에 맴돌고 있는 뱀들을 보면서 자연의 먹이사슬이 이런 것인가 하고 그저 숙연해진다.
먹다 남은 음식물은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EM 효소를 섞어 발효시킨 뒤 퇴비로 쓰고 있다. 아뿔싸! 음식물 통 안에 꿈틀거리는 수 백 마리 번데기를 보는 순간 벌레들의 종족 보존 본능에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 땅에 공존하는 그 어느 생명체라도 결코 하찮은 것은 없을 것이다. 미물이든 식물이든, 생김새가 어떠하든, 색깔이 곱든 곱지 아니하든, 작든 크든, 단지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다 존재 가치가 있다.
흙은 물과 더불어 자연의 뿌리이다. 일체 중생은 흙에서 태어나 흙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옛 성현들은 말했다. 이를 환토관還土觀이라 한다.
늘그막의 내 삶에도 땅과 흙은 고향 동네와 같다. 가끔 지네와 진드기에 물려 몸에 통증을 느낄 때도 있지만, 흙은 정신적으로 나의 안식처이자 지혜의 샘물과 같다고 느껴진다.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유일한 아들에게 이렇게 교계하셨다. “라훌라야, 땅을 닮는 수행을 닦아라. 땅을 닮은 수행을 닦으면 마음에 드는 감각접촉[觸]과 마음에 들지 않는 감각접촉이 일어나더라도 그런 것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할 것이다.” 「라훌라를 교계한 경」(M62)의 주석서에는 라훌라에게 공평함tādi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라고 구결을 달고 있다. 
사람들이 땅에 똥을 누기도 하고 오줌을 누기도 하고 침을 뱉기도 하고 고름을 짜서 버리기도 하고 피를 흘리기도 하지만, 땅은 그 때문에 놀라지도 않고 모욕을 당하지도 않고 넌더리치지도 않는 성품을 지녔다. 
살다보니, 때로는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했고 또 때로는 원하는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방해받거나 남에게 채이거나 얻어맞는 것도 했다. 
흙의 덕성을 반조하며 내 삶을 묵상케 하는 시간을 갖는다. ‘흙에 의지하여 인욕하리라.’고.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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