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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 고쇼지興聖寺 소장 사명대사 유묵遺墨 특별전을 관람하고...한재순(문화관광해설사)

나라를 위한 대승적 구도자의 길
일본에 한국불교 위상 높이고
숭유억불 조선에서 법맥 잇게 한
묵향의 간절함을 가슴에 담다

 

사명대사 존영 (동국대 소장) 1604년 일본의 도쿠가와 바쿠후는 조선에 국교 재개를 요청했다. 조정은 일단 사절단을 보내기로 했다. 사명대사는 전쟁 책임자를 조선에 보내고, 전쟁 피해를 보상하며, 전쟁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고 일본에 요구했다. 도쿠가와는 자신은 전쟁을 반대한 인물이라며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사명대사가 전쟁 중에 잡혀간 3000여 명의 조선 백성을 이끌고 귀국해 협상 내용을 보고하자 조정에서는 일본과 국교를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10월 15일부터 11월 17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본 교토 고쇼지[興聖寺] 소장 사명대사 유묵遺墨>을 특별히 공개하는 전시회를 관람했다.  
사명대사(1544-1610)는 조선 중기 불교계를 대표하는 선승(禪僧)이며 임진왜란 때 의승군(義僧軍)을 이끈 승병장이다. 

사명대사가 승려 엔니에게 준 글과 시


이번에 전시된 사명대사 유묵은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후 강화와 포로 송환 협상을 위해 일본에 갔을 때 교토에 머물며 고쇼지의 승려 엔니 료젠(円耳了然·1559~1619)에게 남긴 것이다. 엔니는 금강산에서 도를 닦은 큰 승려가 왔다는 말에 선종의 가르침에 대한 10개 질문과 답변을 정리한 ‘자순불법록(諮詢佛法錄)’을 교토 혼포지에 머물고 있던 사명대사에게 보여주고 자신이 잘 해석하고 있는지 의견을 물었다고 한다. 이후 서로 친해지자 엔니는 사명대사에게 ‘도호(道號)를 써달라’고 했고, 이에 사명대사는 ‘허응(虛應)’과 ‘무염(無染)’이라는 자와 호를 지어주었다, 사명대사는 엔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허응과 무염으로 지어 관세음보살이 두루 중생의 소리를 듣고 살핀다는 뜻을 담았으니 잘 새겨서 마음에 간직하라”고 당부했다. 엔니는 사명대사와 인연으로 일본불교계에서 명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한다.

[좌] 최치원의 싯구 畵角聲中朝暮浪(나팔 소리 들리고 아침저녁으로 물결 일렁이는데) 靑山影裏古今人(청산의 그림자 속을 지나간 이 예나 지금 몇이나 될까). 속세를 떠난듯한 초연함을 노래한 것으로 고쇼지가 운주 자화사처럼 탈속적이라는 뜻을 담아 싯구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 [우] 중국 선승 대혜종고의 글씨를 본 소감을 적은 글 유묵 중에는 대혜선사(1089~1163)의 전서(篆書) 글씨를 보고 감상을 적은 글이다. 즉 중생을 구하라는 스승 서산대사(1520~1604)가 남긴 뜻에 따라 일본에 왔다’는 것을 강조하며 사행(使行) 목적이 포로송환에 있음을 밝히고 있는 부분이다. 특별히 이 유묵의 중요성은 중국불교 6조 혜능의 법통이‘임제종’을 창종한 임제 의현-대혜종고를 거쳐 조선불교의 사명대사로 이어지며, 자신이 대혜 종고선사의 37대 직계 후손으로 임제선의 법통을 이었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는 점이다.


이번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것은 <승려 엔니에게 지어 준 도호>와 <자순불법록> 등 7건 7점이다. 특히 이 유품들이 주는 의미는 조선과 일본의 평화를 이끌어 백성을 구하고자 한 마음과 구도자로서 승려의 본분을 잊지 않으려 한 숭고한 뜻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좌] 일본 엔니로젠(円耳了然) 스님에게 준 글과 도호 사명대사는 엔니로젠에게 허응이라는 도호를 지어주고 두 글자를 크게 썼다. 엔니를 사명대사에게 소개한 난젠지(南禪寺)장로 센소겐소(1537-1611)는 조선과 일본의 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대마도의 외교승이었다. 엔니와 겐소는 같은 임제종 승려였기 때문에 엔니는 겐소의 소개로 자연스럽게 사명대사와 교류할 수 있었다. [우] 고려말 문신 유숙의 시 <벽란도>의 운율을 채운한 싯귀 고려말 문신 유숙(柳淑,1324-1368)의 시 <벽란도>의 운율(詩韻)을 빌어 임진왜란부터 강화회담 참가까지 10여년 간의 감회를 적은 것으로 소임을 미치면 미련없이 산중선방의 수행자 신분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뚜렷하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 1000여명을 이끌고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후 사명대사는 스승인 서산대사의 부장이 되어 군량과 제반 병기를 마련, 손질하고 왜적을 무찔렀다. 마침내 선조는 “승장 유정에게 당상관의 상급을 내리라”는 특명을 내렸다. 이때 실록을 쓴 사관은 “전란을 당해 날래고 건장한 장수들조차 두려움에 떨었는데 엄청난 전공이 도리어 죽을 날이 머지않은 늙은 승려에게서 나왔다”며 “이것이 어찌 무사들만의 수치이겠는가”라고 감탄했다.

엔니가 부처의 가르침에 대해 사명대사의 의견을 묻는 글 <자순불법록(諮詢佛法錄)>은 고쇼지를 창건한 엔니가 선종의 기본 개념과 임제종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를 10개의 질문과 답변으로 정리한 글이다. 엔니는 자신이 이해한 내용이 맞는지 사명대사에게 이 글을 보이고 가르침을 받고자 했다. 그는 다행히 만리길을 가지 않고 이곳에 앉아서 자신이 속한 임제종의 법맥을 이은 사명대사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며 기쁨과 존경의 마음을 표현했다.


대사는 그후 4차에 걸쳐 적진에 뛰어들어 적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회담을 펼쳤으며,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도 선조의 특명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인들은 사명대사를 보자 “저 스님이 설보(說寶)화상”이라고 환영하며 존경했다.
‘설보화상’이란 지난날 사명대사가 가토 기요마사 진영에서 가토를 보고 “네 머리가 보배다”라 한 것에서 나온 말이다. 사명대사는 협상끝에 일본에 잡혀 갔던 3천여 명의 조선인을 데리고 돌아온다. 

사명대사의 유묵


나라를 위하고, 끌려간 조선인들의 애민적 행보에 사명대사가 남긴 임진란 때의 업적을 되새기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한국불교가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불교의 위상을 드높여 법맥을 잇게 한 것에서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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