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에세이 - 흐르는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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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세이 - 흐르는 물처럼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11.2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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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려고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산행에 나섰다. 칠십 노구의 체력에 맞춰 어리목 어승생악 오름 코스를 택했다. 완만하고 잘 다듬어진 등산로 길을 40분 남짓 걸어서 정상에 서니 제주시내가 한 눈에 보이고 수평선 위로 추자도, 보길도, 청산도, 여서도가 펼쳐진다.
내친걸음에 물빛까지 감상하려고 어승생 서북쪽 자락 해발 680미터에 위치한 어승생 저수지로 향했다. 구구곡과 Y계곡의 물을 낮은 데로 흐르도록 인공 도수로 7.6㎞를 만들어 10만 톤의 물을 저장한 곳이다. ‘넓고 크다’는 뜻의 ‘한밝 저수지’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휘호가 새겨진 표석 앞에 섰다. 
물이 귀했던 제주 섬에서 어승생 수원지 개발은 1970년대 제주관광개발의 불쏘시개와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풍의 아름다움은 자연이 준 선물이지만 위정자의 선견지명은 백성의 고달픔을 치유한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은 노자의 도덕경에 적힌 언구이다. “지극한 선善은 물과 같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이 말은 물의 세 가지 덕성을 본받아 나라를 다스리는 도道로 삼으라는 가르침이다.
  세 가지 덕성이라 함은 만물을 길러줌이 그 하나이고, 자연에 순응하여 다툼 없음이 그 둘이요,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천한 곳으로 흐름이 그 셋이다.
물은 흐르다 막히면 돌아가고 갇히면 채워주고 넘어간다. 빠름을 뽐내지 않고 느림을 안타까워하지 않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 함께 흘러 바다에 이른다. 결코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 없다. 
물은 능히 배가 다니게 하나 때로는 너울 성 파도를 일으켜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민심을 잃으면 역성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격언이다. 
이것이 물의 성품이다. 제 멋대로가 아닌 일정한 법칙에 의해 만들어진 길을 따라 유유히 흐르려는 본성을 지녔다. 
풍수에서는 물을 돈으로 본다. 치수治水를 잘못하면 친한 물[親水]을 싫은 물[嫌水]로 바꿔버릴 수도 있다. 물을 잘못 다스리면 민심도 잃고 돈도 잃는다. MB정부의 4대강 사업이 여기에 딱 맞는 것 같다.
부처님은 생사가 거듭되는 중생들의 세상을 윤회의 바다에 비유해서 설법하셨다. 지구촌 60억 명 사람들의 신身·구口·의意 세 가지 업이 흘러가 모인 곳이 윤회의 큰 바다라는 뜻일 게다.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길이 있고 우리 모두가 함께 추구해야할 길이 있다. 그걸 우린 도道라고 한다. 수행자에겐 부처의 길이다. 
내가 가야할 길은 물처럼 흐르는 일이다. 윤회의 거센 흐름을 거슬러 올라 파도와 소용돌이가 미치지 않는 언덕까지. 마치 연어 떼가 여울을 거슬러 올라 고향으로 돌아가듯. 
나이 일흔을 넘고 나서 물처럼 살았는지 성찰해보니 불火처럼 타오르기만 했을 성싶다. 번뇌와 갈애에 묶여 머무르고 가라앉고, 의도적 형성과 사견의 족쇄를 끊지 못해 애쓰고 휩쓸리며 윤회의 바다에 빠져 있다.
돌이켜보면, 된여울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큰 위험에 처한 적도 있다. 여울에 시달려온 바위처럼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지만, 10년 이상 호흡관법을 수행한 덕분으로 그 여운이 잦아들면서 잔자누룩한 고요 속에 잠기였다. 
동자가 소를 타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불며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정경을 그리고 있는 ‘심우도’의 ‘기우귀가騎牛歸家’의 심정이 이 마음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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