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전도몽상(顚倒夢相)에 빠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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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전도몽상(顚倒夢相)에 빠지지 말자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11.2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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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호_인문학당 후마니타스빌리지 감사

“수행승들이여, 무상에 대하여 항상하다고 여기는 지각의 전도, 마음의 전도, 견해의 전도가 있다. 수행승들이여, 괴로움에 대하여 즐겁다고 여기는 전도가 있다. 수행승들이여, 실체 없음에 대하여 실체가 있다고 여기는 전도가 있다. 수행승들이여, 더러운 것에 대하여 청정하다고 여기는 전도가 있다.”
부처님이 말하는 네 가지 전도는 상(常)락(樂)아(我)정(淨)이다. 무상, 고, 무아, 부정에 대하여 거꾸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거꾸로 생각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지금 이 현상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상에 대하여 항상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전도이다. 지금 견고하게 보이는 것들은 언젠가는 붕괴한다. 지금 이순간에도 시시각각 붕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변화를 감지하지 못할 뿐이다. 거꾸로 보는 것을 바로 잡아 보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다. 
괴로움에 대하여 즐겁다고 여기는 전도가 있다. 부처님은 “즐거운 느낌은 괴롭다고 보아야 하며, 괴로운 느낌은 화살이라고 보아야 하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은 무상하다고 보아야 한다.”라고 말씀한다. 즉 일체개고(一切皆苦)다. 경에서는 “괴로움을 보는 자는 괴로움의 소멸을 보는 자”라고 하고, “괴로움을 보는 자는 괴로움의 발생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도 본다.”고 설한다. 
사람들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간다. 눈으로 귀로 끊임없이 즐길꺼리를 찾는다. 그러나 이같은 행위는 윤회의 원인이 된다. 윤회를 벗어나려면 버려야 한다. 세상에 대한 애착이 남아 있으면 결코 이 세상을 버릴 수 없다. 
다음으로, 무아에 대하여 실체가 있다는 전도가 있다. 범부는 다섯 가지 취착하는 무더기들을 ‘이것은 나의 것’이라 여긴다. 이것은 갈애에 구속된 사고다. 범부는 다섯 가지 취착하는 무더기들을 ‘이것이 나’라고 여긴다. 또 ‘이것은 나의 자아’라고 여긴다.  그리하여 오온에 대하여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는 견고한 추상적 자아가 형성되는 유신견이 고착화된다. 한번 유신견이 생겨나면 벗어나기 힘들다. 오온에 대하여 나의 것이라는 갈애와 오온에 대하여 내 것이라는 자만, 그리고 오온에 대하여 나의 자아라고 여기는 전도된 유신견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더러운 것을 청정하다고 보는 전도가 있다. 부처님은 우리 몸에 대하여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열 가지 부정관과 서른 두 가지 신체의 기관을 명상하라고 했다. 
사람들은 몸에 대하여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는 것이다. 그래서 몸매나 얼굴에 매료 되어서 아름답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한꺼풀만 들어가 보면 육신이란 그저 고기덩어리일 뿐이다. 경전에서 기녀였던 암바빨리는 자신의 아름다운 몸매를 덧없다고 말했다. 
암바빨리는 코에 대해서 “부드러운 산봉우리처럼, 젊음이 한창일 때에 나의 코는 아름다웠으나, 늙어서 말라비틀어진 식물줄기와 같다”고 했다. 또 유방에 대해서는 “위로 둥글게 부풀러 올라 봉긋하여 예전에 나의 두 유방은 아름다웠지만, 물 없는 물주머니처럼 늘어졌으니, 진리를 말하는 부처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라고도 했다. 
우리 몸은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늙어지면 추한 모습이 된다. 그럼에도 겉모습에 대하여 아름답게 보면서 전도된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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