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열린마당 오피니언
남섬부주(南贍浮洲) - 예수님의 기도, 부처님의 기도 정창선(객원기자)
이도현 _ 재가불자

기도(祈禱)의 사전적인 뜻은 마음이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길 神佛(신불)에게 비는 행위이다. 지금 절이나 교회, 성당에서 행해지고 있는 기도처럼 내 문제를 부처님이나 예수님에게 맡기고 해결해 달라고 의뢰하는 것으로, 예수님이나 부처님을 내 소원이나 들어주는 존재로 우상화 하는 것을 기도로 여기고 있다.
기도란 단어를 풀어보면, 기(祈) 자는 보일 시(示)에 밝게 살필 근(斤)으로 되어있고, 도(禱)를 해체하면 보일 시(示)변에 목숨 수(壽)로 되어었다.
즉, 기도는 목숨을 다하면서 다가가는 것이며 자신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자신을 밝게 하는 것이지, 어떤 존재에게 자신이 바라는 것을 비는 행위는 아니다. 기도의 참 뜻은 안되는 것을 요행을 기대하면서 이루어지도록 비는 행위가 아니라 좋은 씨앗을 뿌려 좋은 열매가 맺도록 하는 것이며, 선(善)을 심어 선을 거두는 것이라 하겠다. 
예수님은 황야에서 40일간의 금식기도를 통하여 성령(聖靈)의 체험, 즉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다.  이 기간 중에 예수님은 끊임없이 사탄으로부터 재물 명예 권력으로 유혹받으며 금식기도를 그만둘 것을 시험하였으나 이를 물리침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 세상 사람들이 행복의 조건으로 여기는 재물과 명예, 권력에 대한 욕망을 벗어나 초월함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의 곁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는 뜻이기도 한다. 이처럼 기독교에서의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이며, 끊임없이 하나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고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몸을 숨기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일로 여긴다. 기독교인들에게 기도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의 시간이며 기도를 통해 예수님과의 관계를 맺는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영성생활을 위한 구체적인 가르침도 바로 기도와 단식, 자선 이 세 가지였다.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들의 모든 행위를 가져오게 하는 내면적인 힘을 뜻하며,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의 가르침 속에서 관계를 맺고 생활하며 살아가는 것을 영성생활이라 한다. 
다음은 성경에 있는 대표적인 기도문으로, 소위 말하는 청원기도라는 것이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것은 얻고,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는 열릴 것이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재물과 명예와 권력을 얻고자 하나님에게 기도하면 들어주시는 근거로 삼는 구절이고, 많은 목사들도 이를 선교의 수단으로 삼아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예수님 공생애의 처음부터 끝은 정의 자유 평등 사랑으로 지배되는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을 이 땅에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었지 재물과 명예와 권력이 넘치는 세상을 건설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재물과 명예, 권력을 구하는 사탄의 세상이 아니라 정의 자유 평등 사랑이라는 통치원리가 살아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청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하나님 나라의 문을 두드려라 하는 것이 청원기도의 참뜻이며 예수님의 근본적인 가르침이었다.
예수님의 한결같은 기도문이 바로 “당신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옵시며,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임을 안다면 우리 불자들도 예수님을 보는 눈을 달리 해야 할 것이다.
반면에 부처님은 기도에 대해 언급하면서 “저 연못에 커다란 돌덩이를 던지고 여러 사람이 돌덩이야 떠올라라 하고 기도한다고 해서 저 돌덩이가 떠오르겠느냐? 많은 악행을 저지른 이가 죽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부디  하늘나라에 가게 하여 주십사 기도한다고 저 사람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겠느냐? ” 라고 하신 것을 보면 부처님은 기도에 대해 탐탁치 않게 여기신 듯하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으로 보여 진다. 부처님이 보시기에 기도는 진리에 이르는 길도 아니고 열반을 향해 가는 방편도 아니고 더구나 부처님의 가르침인 연기법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도가 삿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다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아니란 뜻이다. 기도에 대한 부처님의 뜻은 “기도하는 자, 기도를 성취시켜주는 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가르침은 너희들의 기도를  성취시켜주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바라는 것을 기도하여 이루어지게 될 때, 그것에 집착하여 얽매이게 되고 기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에 대한 부처님의 염려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부처님 문중에 이제 막 들어와 수행의 첫 걸음마 단계에 있는 초심자에게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하는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도의 긍정적 역할을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우선 기도에 앞서 불교에서 기도를 성취시키는 힘은 바로 복력(福力)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어 복 짓는 일이 기도의 첫걸음임을 알게 해 주어야 한다. 
“복 없음을 두려워 해야 하나니 그것은 무량한 근심과 고통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말씀이며, 불자의 기도는 복 짓는 일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저작권자 © 제주불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주불교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