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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명상을 통해 진리를 찾아 나서다庚子年연중기획 명상과 치유①

참선과 명상수행 전통이 빈약한 제주불교계
부처님 가르침을 스스로 체험하고 깨달아야

 

명상은 불교의 핵심수행법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수행공동체이다. 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가? 존재의 진리를 깨닫기 위함이다. 존재의 진리란 무엇인가? 생멸과 삶의 원리, 그리고 생명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다. 사성제와 팔정도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카르마의 족쇄를 끊고 대자유의 해탈을 사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가르침을 믿고 따르기만 한다면 반쪽짜리 불자이다. 우리는 더 나아가 부처님이 일러주신 진리를 체득하기 위한 실천적 수행으로 생멸의 고통을 넘어 궁극의 자유를 성취하는 길로 나가야 할 것이다. 
출가 수행자는 일심전념하여 평생 부처님의 가르침을 참구할 수 있겠지만, 일반인들은 승가의 계율과 수행의 구족이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믿고 신앙하는 종교적 신행문화보다는 불교는 깨달음의 공부와 실천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타력에 간구하고 은총을 입는 통로가 불교에는 없다. 부처님은 스승으로서 우리에게 길을 알려주신 분이지, 부처님의 가피라는 것도 스스로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깨우침에 근거한 자력적 감응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즉 불자라면 모름지기 부지런히 공부하고 수행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해탈열반의 길에 이르르는 명상수행의 길에 지난 2천 5백년동안 온갖 잡목이 우거지면서 그 길의 흔적이 희미해졌다. 수많은 희유와 논설들이 주의를 분산시키고, 기복이 간절했던 민중들의 염원에 타협한 미신적 신앙과 습합되어 귀신종교로 전변되기도 했다.    
부처님은 명상을 통해 진리를 깨달았다. 그리고 해탈의 경지를 밝히면서 그 길로 인도하는 수많은 설법을 시기와 조건, 대상의 형편에 따라 다양하게 펼쳤다. 가르침은 대기설법에 따라 다양했지만 제자들에 대한 가르침과 승가에서의 수행법은 명상에 의한 방법이 중심이었다. 명상은 불교의 핵심적 수행법이다. 
명상의 여러 모습
그러나 모든 명상법이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로 이끌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힌두교의 명상은 신과의 합일을 목적으로 삼는다. 인류역사상 거의 최초로 등장하는 명상에 대한 기록은 힌두교의 리그베다(기원전 1000년경)에 등장한다. 여기에는 가장 유명한 베다 진언인 “우리의 경건한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신성한 사비 트리의 그 바람직한 빛에 대해 명상합니다.”라는 ‘가야트리 만트라’는 힌두교도들이 가장 존숭하는 진언이다. 가야트리는 불변의 궁극적 실재이며 전지전능한 신을 말한다. 또 세상의 모든 현상의 배후에 있는 불변의 궁극적 실재인 파라브라만(Para-brahman) 또는 브라만(Brahman)이 의인화 · 인격화된 여신이라고 여겨진다. 힌두교의 명상은 바로 궁극의 실재인 신에게로 향하는 것이다. 
불교와 가장 유사한 자이나교는 명상이 완전한 존재를 위한 길로 이끈다고 한다. 자이나교에서 완전한 존재는 신으로 추앙받는다. 
고대 이란의 성자인 자라투스트라(기원전 660년경)가 명상을 통해 깨달은 것은 유일신을 통한 선과 악의 대립, 그리고 궁극에 이르면 선이 승리하고 천상의 나라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수피즘은 명상을 통해 정신적인 깨달음을 얻는데, 지성보다는 실질적 체험에 의해 신과의 합일을 통한 진정한 자아발견이 목적이다. 수피들은 이를 위해 세마((sema)의식을 통해 황홀경에 들기도 한다. 세마의식은 유네스코무형문화재로 등재되었다.
도교는 수행법으로 양생법이 발달했는데, 도를 체득해 불로장생하고 신선에 오르는 것이 목적이다. 민간신앙으로서 영향력이 막강해 중국의 대승불교는 염라대왕같은 도교의 신들을 대거 받아들였다. 
서양에서는 명상기법에 대한 최초의 기록으로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론(기원전30~서기45)이 ‘관심(prosoche)’과 집중‘(concentration)’을 포함하는 동양의 명상과 유사한 ‘영적 훈련’ 기법을 썼다고 한다. 필론은 명상법을 통해 그리스 철학과 유대신앙을 결합하는 시도를 통해 신에 의해 창조된 혼의 타죄(墮罪)와 정화(淨化)의 과정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로 인해 기독교 신의 초월성을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근거해 이론적으로 뒷받침되고 체계화했고, 기독교 교부(敎父)철학과 근세 스피노자 사상 등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고대 그리스 후기 철학자인 플로티노스(205년-270년)도 인도의 영향을 받아 명상적인 기술을 개발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인 그는, “영원한 것이 그대로 완전한 채로 머물러 있지 않고, 이 세상의 불완전한 다양한 것들로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라는 난해한 물음을 체득하기 위해 깊은 명상에 빠졌다고 한다. ‘궁극적인 선이자 존재’에 관하여 저술한 그의 저서 <엔네아데스>는 제자 포르피리오스의 적극적인 전파로 오늘날까지 54편의 저술이 6집으로 정리되어 전해진다. 

근본불교의 명상
부처님이 창시했다고 전해지는 불교의 명상은 신이나 유신견(有身見)을 철저히 부정하고, 무아(無我)의 진리를 체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불교명상의 어원은 빨리어로 자나(jhána), 산스크리트어로 ‘디아나(Dhyana)’이며 정신을 청정하게 해나가는 여덟 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설명된다. 중국에서 이를 음사하여 ‘선나(禪那)’라고 하다가, 줄여서 ‘선(禪)’으로 단어가 정착되었다. 
흔히 4향4과(四向四果, 사문4과(沙門四果) 또는 성문4과(聲聞四果)라고 불리는 부처님의 명상법은 이를 전통적으로 계승했다는 원시불교와 부파불교의 수행에 따른 단계적 수위이다. 
부처님의 제자들은 그의 가르침을 듣고 수행함으로써 아라한이라는 이상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하는데는 4향4과라고 불리는 8종의 위계가 있다고 정리했다. 즉 낮은 단계에서부터 말하면 예류(豫流) . 일래(一來) . 불환(不還) . 아라한(阿羅漢)의 4위가 있어서, 아래와 같이 과(果)를 향해 수행해 가는 단계(向)와 그에 의해 도달한 경지(果)로 나누어서 설명한 것이 4향4과이다. 수행의 여덟 단계는 다음과 같다.
① 예류향(豫流向): 예류과를 향해 수행해 가는 단계 ② 예류과(豫流果): 예류에 도달한 상태 ③ 일래향(一來向): 일래과를 향해 수행해 가는 단계 ④ 일래과(一來果): 일래에 도달한 상태 ⑤ 불환향(不還向): 불환과를 향해 수행해 가는 단계 ⑥ 불환과(不還果): 불환에 도달한 상태 ⑦ 아라한향(阿羅漢向): 아라한과를 향해 수행해 가는 단계 ⑧ 아라한과(阿羅漢果): 아라한에 도달한 상태 등이다.
예류는 수다원(須陀洹)이라고 음역되는데 깨달음의 길을 하천의 흐름에 비유하여 그 흐름에 참여한 것, 즉 불도 수행에 대한 확신이 생긴 상태를 말한다. 일래는 사다함(斯陀含)으로 음역하는데 수행의 도상에 있어서 한 번 더 욕계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불환은 아나함(阿那含)이라고 음역하는데 더 이상 욕계에 태어나지 않아도 되는 상태다. 그래서 욕계로 윤회하여 더 배워야 할 필요가 없어 불환이라고 한다. 아라한과에 이르면 무학위(無學位)로서 더이상 배울 것이 없고, 번뇌는 다했으며, 해야 할 바를 다하였고, 윤회를 벗어나 열반에 들어간 상태다. 무학위는 무학(無學)이라고도 한다. 

명상의 세속적 이익
오늘날 서양인들은 불교명상에 대하여 열광하고 있다. 그들은 그러나 난해한 경전들과 만트라로 가득한 예배의식의 ‘종교’로서의 불교는 부담스러워 한다. 그래서 그들은 주로 ‘자기 내면을 향한 여행’으로 명상을 활용한다. 그들은 불교 명상을 하면서도 불자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명상을 통해 자신의 삶과 연결해 아주 일상적이고 실용적으로 명상기법을 활용하는 측면이 강하다. 
<승려와 철학가>로 유명해진 마티유 리카르는 <이타심> (Plaidoyer pour L’altruisme)이라는 저서에서 ‘인지과학적 관점에서 본 명상수련’에 대하여 명상의 장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지난 2000년부터 오랫동안 학자들과 함께 티베트 승려와 명상수행자들의 과학적인 실험에 동참하여 왔는데, 그 결과 명상은 뇌에 중요한 기능적 변화를 준다고 한다. 특히 뉴런 양과 뉴런을 연결하는 회로수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즉 신경망 구조에 영향을 주어 학습과 감정통제에 관여하는 왼쪽 해마와 여러 뇌 영역에 밀도와 회백질 두께가 증가한다고 밝혔다. 
특히 자비명상을 하는 실험자들은 대뇌감마파 진동의 동기화가 현저하게 증가하여 공감과 긍정적 감정, 모성애, 소속감, 유익성과 건전성에 관여하는 전운동피질이 활성화되어 이타적 사랑과 자비심이 증폭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다. 그리고 명상은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 우울증과 수면장애에도 임상실험결과 40%의 감소 효과가 있고, DNA 염색체 끝에 붙어있는 텔로머라아제라는 노화와 건강, 수명을 관장하는 세포의 활성화를 통해 노화속도를 30%정도 늦추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정신건강 증진과 이타적 사랑의 확산은 사회적 관계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해 갈등과 분노를 줄이게 되어 이기적인 욕망의 물질주의를 극복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명상은 그런 명상과는 다르다. 우리에게는 더 원대한 목표가 있다. 이제부터 그 길로 떠나보기로 하자. 제주불교는 위대한 수행자와 명상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궁극의 깨달음 저편으로의 긴 항해를 안내하고자 한다. (계속)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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