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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세이 - 바람처럼 머물지 않고
유 현

내 곁엔 늘 바람이 불고 있다. 해발 250미터의 등성이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출리산방은 나의 수행 토굴이다. 저녁부터 이른 아침에 걸쳐 산바람, 낮에는 해풍이 투명망토를 걸치고 살며시 다가온다. 살랑거리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좌선하기 좋다.
때로는 바람이 거의 없는 아침뜸, 저녁뜸도 있다. 철 따라 봄엔 샛바람, 여름에는 마파람, 가을엔 하늬바람, 겨울엔 삭풍이 산방 주변을 맴돈다. 음력 2월 초하룻날 찾아와서 보름동안 머물다 떠나는 ‘영등할망’이 오시면 봄꽃들은  기지개를 켠다. 
하늘의 구름은 늘 그 모양이 변하고 없어지기 일쑤지만, 바람은 모양이 없는 대로 있는 듯 없는 듯 이 몸뚱이와 마음에 작용하고 있다. 눕거나 앉거나 서거나 걷는 것은 바람의 힘이고, 콧바람도 이와 같다.
마음속에도 생각과 느낌의 바람이 뭉게구름처럼 일어난다. 먹고 사는 데 늘 바쁜 사람들에겐 출근길이나 퇴근길에도 요리조리 움직이며 부리로 콕, 콕, 콕 바닥을 쪼아대는 참새처럼 마냥 생각이 감돈다.
마음은 대상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의 고유 성질이 이와 같아서 어떤 대상에 집착할 때에는 반드시 동요와 혼란이 생기게 마련이다. 심지어 마음의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얻기 위한 아침의 명상 시에도 지나간 생각과 기억들이 예고 없이 불쑥불쑥 튀어 나온다.
내 마음의 참새 떼를 쫓아내기 위해 들숨날숨에 집중한다. 숨과 숨을 아는 마음만이 현전할 때까지 오로지 호흡만 알아차린다. 처음에 빠르고 거칠었던 숨이 20여 분 지나면 느리고 부드럽고 조용해지면서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아름다운 마음의 빛인 심월心月이 나타난다.
바람의 멈춤을 알아차리며 정중동靜中動의 자세로 바꾼다. 내 몸속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느낌들을 통찰한다. 단단함, 거침, 무거움, 부드러움, 매끄러움, 가벼움, 흐름, 응집, 따뜻함, 차가움, 지탱, 움직임의 실재를 알아차리기 위해 사자가 사냥감의 주위를 맴돌면서 기회를 엿보듯 몸의 32부위를 스캔scan한다. 몸이 가벼운 솜털이 되어 바람 따라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
이쯤해서 다시 호흡으로 돌아온다. 새가 보금자리를 찾아 날개 짓을 접듯 고요함과 평화로움에 머물기 위함이다. 
염력念力의 바람이 세풍世風을 잠재운 것일까. 세풍의 흐름대로 살지 않고, 그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밥 먹듯 명상 수행한다. 이래서 나는 아침형 인간인 것 같다. 
어디서 오는지 모르게 바람처럼 다가와 소중한 인연으로 머물다가 인연 다하면 다시 또 떠나간다. 내게 온 모든 것, 어느 것 하나 인연 아닌 것은 없지만 그 바람을 잡으려 하지 말자. 바람의 성품은 머물지 않음이라.
금강경에서 말한다. “어디에도 머물지 말고 살아라(無住於相).”라고.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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