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주와 불음주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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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와 불음주계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12.11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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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현 _ 재가불자
이도현 재가불자

어찌어찌 하다    보니 어느새 12월, 술 먹는 날이 많아지는 시절이 되었다.
옛부터 우리 조상들의 술에 대한 인식은 품위가 있었다. 존경(尊敬)이라는 단어의 존(尊) 자는 술과 관련된 글로서 술 익을 추(酋)를 손(寸)으로 받드는 형상이며, 공손하게 손으로 잘 익은 술을 바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술을 조상이나 신을 섬기는 일이나 존경의 예를 올리는 행사에 쓰이는 경건하고 소중한 물건으로 여겼다. 
또한 술 주(酒) 자도 파지해 보면 물 수(水) 변에 닭 유(酉)로 되어 있는데, 닭이 물을 마시는 형상을 표현한 것이다.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물 한 모금 마시고 구름 한 번 쳐다보는 모습으로 술은 마실 때 느긋하게 천천히 마셔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에 술에 대한 별칭도 다양하게 부르게 되는데 하늘이 내린 아름다운 녹봉이라 하여 천지미록(天之美祿)으로 높여 부르기도 하고, 근심걱정을 잊게 한다는 뜻의 망우물(忘憂物), 잔 속의 물건이라 하여 배중물(杯中物)이라 하기도 하였다. 특히 백약지장(百藥之長)이요 만독지원(萬毒之原)이라, 많은 좋은 약 중에 으뜸이요 만 가지 병을 일으키는 근본이라 하여 애주가들의 술에 대한 지나친 탐닉을 경계하기도 하였으며, 서양에서도 악마가 너무 바빠 인간을 찾아 갈 수 없을 때 대신 보내는 것이 술이라 하여 술로 인한 피해에 경각심을 주기도 하였다. 우리 불교에서도  술과 관련하여 오계의 다섯 번째에 불음주계를 포함시킨 것을 보면 술에 대한 부처님의 의도를 짐작케 한다. 불음주계의 취지는 한마디로 원리방일처(遠離放逸處)라 할 수 있겠다. 술을 마심으로써 방일하기 쉬운 곳을 멀리한다. 방일은 마음대로 거리낌 없이 함부로 행동하는 것으로 마음을 방종하게 하여 모든 율의를 지킬 수 없게 하기 때문에 음주를 금하는 것이란 뜻이라 하겠다. 
오계 중에서 살생, 투도, 망어, 사음은 성계(性戒)라 하여 그 자체로 악업을 짓는 죄가 되어 금하는 것이고, 음주는 차계(遮戒)라 하여 그 자체로는 죄가 되지 않으나 음주로 인하여 성죄를 저지르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금지한 계목이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문수문경에서 “ 만약 술을 약으로써 상화(相和)하여 쓰게 되면 득(得)이 될 수 있다”하여 대중들의 서로 화합하고 고르게 어울리게 하기 위해서는 융통성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으며, “비구가 병들어 술을 약으로 쓰고자 할 경우에는 술을 마셔도 된다” 고 하여 치료의 목적을 위해서는 음주를 허용하고 있다. 
기독교의 성경에는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말이 없다. 오히려 술을 권장하는 듯한 구절들이 곳곳에서 보이는데 예배나 성찬례 의식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포도주이다. 기독교인들에게 포도주는 곧 예수님의 피를 상징한다. 예수님이 “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있고..”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기독교인들이 포도주를 마시는 행위는 예수의 생명을 이어받아 예수의 삶을 살아가고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도 예수님이 자신을 포도나무에 비유하는 구절이 나온다. “ 나는 포도나무이고 너희는 가지이니..... 너희가 포도주를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라”. 
포도나무는 척박한 토양에서 살아내는 끈질긴 나무이다. 맛있는 포도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기름진 땅이 아니라 돌 많은 자갈밭이나 비탈진 산기슭에 심어야 한다. 또한 좋은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렇게 거둔 포도를 통에 넣고 발로 으깨고 짓밟은 뒤 발효시켜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들은 곧 예수가 겪어야 하는 박해와 고난과 중첩된다. 포도주는 뒷맛의 여운이 오래가고 향기로운 것을 최고로 치는데 바로 예수의 삶과 같은 술이 바로 포도주라 할 수 있다. 
예수의 3년 공생애에서 최초의 기적이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일이었다. 혼인잔치에 초대된 예수는 그 잔치 꼭 필요한 포도주가 떨어지자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한 뒤 항아리 속의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을 보여주어 가난한 신랑신부의 잔치를 복되게 하며 즐거운 잔치 분위기로 바꾼다. 그리고 예수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묶여 처형당하게 될 때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마신 술이 바로 신포도주이다. 신포도주를 입에 대고 마신 후 “다 이루었다”는 말을 남기고 운명하게 된다. 
이외에도 마가복음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그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예수의 출현으로 구약의 율법이 신약의 사랑으로 신앙과 구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바꾸는 근본적인 변혁이 이루어짐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처럼 기독교에서 포도나무는 불교의 연꽃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 상징하는 바를 상당히 중요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2월은 모두가 병들어 가는데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 세상에서 억울함을 참아야 하고 분노와 울분을 삼키며 부당한 처우도 견디면서 애면글면 힘들게 버틴 1년을 스스로 위로하는 시간이다. 서민들은 술이 있어 한 때 괴로움을 잊을 수 있고, 술이 있어 괴로운 삶을 이어갈 수 있었고, 술이 있어 슬픔과 고단함도 덜어낼 수 있었다. 
酒나라 백성으로 사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나 부끄러워 할 일도 아니니 운주행각(雲酒行脚) 하면서 병든 마음을 치유하여 한 해의 시름을 잊고자 하는데 누가 누굴 탓하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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