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명상수행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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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명상수행의 이유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12.1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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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규 화백의 나의 수행록

인생 70년을 치열하게 살다보니 체력적으로 피폐하고 정신적으로도 나약해져서 그냥 생에 지쳐버린 쓸모없는 늙은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일찍 아내를 여의고 가정적으로도 불운하고,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외톨이 노약자가 된 처량한 처지였다. 그러던 나에게 어쩌다 천행으로 본격적인 명상의 인연이 오게 되었고, 명상 수행 3년 후에는 그야말로 환골탈퇴의 일대 변혁을 겪게 되었다. 
예전부터 물론 마라톤 운동을 해온 것이 체력과 정신을 건강하게 해 준것도 사실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그 바탕에 명상수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확신한다. 
예전에 나는 위험 수위에 다다른 저혈압과 높은 혈당수치를 기록하는 당뇨가 있었다. 온 몸의 가려움증을 달고 살았으며, 연중 감기몸살에 시달렸다. 무릎관절염은 두 시간 이상의 산행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불면증으로 인해 하루 종일 피곤하였고, 심리도 불안정하여 세상의 모든 걱정과 근심을 혼자 다 끌어 안고 살아가듯 상습적으로 불편한 마음이 늘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증상들이 불과 3년 정도의 명상수행으로 말끔히 정복하게 되었고, 몸도 불편한 곳이 거의 없으며, 정신적으로도 편안해져서 안정된 일상을 지내고 있다. 이러한 평화와 평안은 거듭 강조하건대 명상수행으로 이루어낸 나만의 성과이다. 
명상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명상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명상은 알고 보면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해야 하는 쉽고도 필수적인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꼭 명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
명상이란 내가 사는 세상이나 나의 환경을 바라보며 그것에 묻혀서 그것을 평가하고 그것을 느끼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 ‘마음’이란 것을 들여다보면, 그 놈이 원하거나 욕심내는 ‘탐심’과 맞지 않아 싫어하는 ‘성냄’이 생기기 마련이다. 여기에 ‘성냄’이나 ‘탐심’이 있는 지도 모르는 ‘무지’라는 어리석음도 있다. 이것이 바로 탐진치(貪瞋痴)인데 이것이 곧 ‘번뇌’라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 번뇌라는 것을 치유하기 위해 그 번뇌를 들여다보고 분석하고 관리하는 것이 바로 명상수행이다. 
느낌, 감정, 마음, 생각 등을 있는 그대로 가만히 들여다 보고 그것을 알아차리게 될 때 번뇌가 사라지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는 지혜를 얻게 되어 갈등과 불만족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 명상수행의 목적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집약하여 정리한다면 명상수행은 세상이나 내가 처한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오류나 부정적인 것을 바르게 인식하여 바르게 변화시키는 방편인 것이다. 
또 다른 말로 강조하자면 실재 ‘진리(리얼리티)’를 깨닫기 위한 공부를 하여 최고의 ‘행복(닙바나)’을 얻자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경험한 명상수행의 결과로 얻게 된 이익을 나열해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명상에 의해 내가 증득한 이익이 신기하고 감사한 것을 알려서 많은 사람들이 이 행복을 갖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내 나이 60세가 넘어갈 무렵 급격히 떨어진 기억력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70세가 되면서는 내 전화번호도 잊어버리거나 강의나 공연 계획을 까먹고 수업을 펑크내거나 공연을 망쳐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만성불면증으로 잠이 부족하여 항상 피곤하며 생활자체가 무기력하고 몸살감기나 피부가려움증은 물론이고 콧구멍이나 입속에는 항상 염증이 상존하고 무릎이나 고관절이 쑤시고 저려서 고통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명상수행생활 3년이 지날 무렵 나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었다. 잊었던 지인의 이름이나 신상, 지역 명칭 등이 새록새록 생각나고 그렇게 떠오르지 않던 노래 가사나 대사들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잊었던 것들이 기억되곤 했다. 잠도 잘 자게 되었고 소화력도 좋아져서 만성적 체증도 없어졌다. 몇 년째 감기몸살도 앓지 않았고 허리나 무릎 통증도 다 없어져서 지금은 마라톤 완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몸이 편안하니 정신적으로도 매우 안정되어서 불안하거나 불만족스러운 관념이 대부분 사라지고 정서적으로 편안해졌음이 확연했다. 이 모든 것이 명상수행에 의해 증득된 나의 이익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외적으로 나타난 이익의 현상일 뿐이며, 내적인 수행 발전 사항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엄청난 사실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의 수행 수준이 표상(리밋따)를 갖게 되었으며 놀라운 사실은 그 표상이 최초엔 몇 초 동안 나타났던 것이 점차 발전하여 지금은 거의 한 시간 반 동안이나 유지 관리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선정에 들었음을 의미하며 장차 수행 노력에 따라 사선정(四禪定)을 넘어 사견을 완전히 뿌리뽑은 수다원(須陀洹)이라는 예류자(預流者)가 될 수 있고 나아가서 질투와 인색, 의심이라는 오염원을 없앴다는 일래자(一來者), 즉 사다함(斯多含)에 오르게 되고, 감각적 탐욕과 성냄, 후회라는 오염원을 제거했다는 불환자(不還者), 즉 아나함(阿那含)에 오르게 되고, 이어서 모든 탐욕과 자만, 해태, 들뜸, 혼침 등의 오염원이 완전히 제거된 경지인, 완성된 성자로서 완전히 깨달은 아라한(阿羅漢)에 오르게 되는 단계들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이고 인간이 해야 하는 일이란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 얼마나 성스럽고 경이로운 일인가 말이다. 내가 인간으로 태어나 이 같은 영예를 갖는 자체가 거룩하고 성스러운 일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분명히 단언컨대 이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할 수 있고 하여야만 할 가능한 일이란 것이 나의 확신이다. 
나는 이제 초겨울의 찬바람을 헤치며 오온(五蘊)이 아닌 나를 만나러 따뜻한 수행의 나라 미얀마를 향해 떠난다. 
내가 몇 년 전 미얀마 쉐우민센터에 갔을 때, 그곳의 사야도이신 떼자니아 스님과의 인터뷰에서 배운 것 중에 “불성(佛性)이 무엇입니까?” 라는 한 요기의 질문에 “불성은 곧 지혜”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한다. 여러분 모두가 명상으로 통찰지혜를 얻어 그 예리한 지혜의 칼로 번뇌의 뿌리를 완전하게 끊어내고 영원한 행복의 길로 가시는데 용기를 갖게 되시길 바란다. 
‘소인(小人)’은 남의 탓을 하고 ‘대인(大人)’은 자신을 탓하고 ‘성인(聖人)’은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리 좋고 쉬운 명상이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나쁘고 어려운 것이 되고 만다. 시간이 없다고, 주변 환경이 안된다고 탓하지 말고 용기를 내시길 기도한다.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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