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와 용서
상태바
참회와 용서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12.26 12: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익수 대기자가‘새로 쓰는 불교통신’〈31〉

며칠을 남기고 있다. 2019년.
묵은 달력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달력 2020년 새해의 첫 장이 열리게 된다.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본다. 
사람들은 또 한 해가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잘 산 한 해였는지, 잘못 산 한 해였는지를 헤아리게 된다.
날이 갈수록 험악한 세상살이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자기쪽으로 유리한 셈법만을 끌어들이며, 상대가 처한 사정은 헤아려보지도 않은 채 묵살해 오지는 않았던가?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혔거나 서운하게 했다면,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용서를 구하고 참회를 하는 것은 어떨까.
세상 살아가는데, 삶이 완벽할 수는 없는 것이다. 끊임없이 실수를 하면서 살아간다. 그게 자의 건, 타의 건, 무의식적이 건, 의식적이 건, 남에게 상처를 주고 피해를 입히고 살아가고 있다.
욕심과 아집에 의해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고,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줄 알면서도 마음을 자제하지 못하고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일을 저질러 놓고도 뉘우치는 참회가 없다면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사람은 나중에 더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부처님은 “죄를 짓더라고 알고 지어야 죄가 적다”고 말씀하셨다. 
잘못됨을 알아야 참회하고 그 행동을 중단할 수 있는 것이다. 참회가 중요한 것은 여기에 있다.
불도를 닦는 사람은 모름지기 죄를 지었으면 참회해야 하고 남의 허물을 용서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보살의 도를 닦는 길이 아닐까.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적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 사회, 먼저 참회하고 용서하기 보다는 상대방이 먼저 고개를 숙이기를 바라고 요구한다. 
아량이 없는 것이다. 이래서는 안된다. 어느쪽이든 먼저 참회하고 용서를 하는 쪽이 승자이고, 엉킬대로 엉킨 매듭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잡아함경>에서 부처님은 ‘성내지 말라, 누가 너에게 성내어도 성냄으로 갚지 말라’ 고 하셨다.
원망과 복수의 관계는 빨리 풀면 풀수록 좋다. 증오는 자신과 남을 망치지만, 참회와 용서는 자신과 남을 살리는 길이다.
참회와 용서는 살아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 것이 아닐까.
참회와 용서로 한 해를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불자가 되기를 기원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