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불교의 최초전래지‘영실 존자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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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불교의 최초전래지‘영실 존자암’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9.12.2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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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승필 거사의 제주사찰사경

존자암 (尊者庵)

존자암은 1,362m 불래오름을 주봉으로 남사면의 평평한 등선 마루에 올라서 있는 사찰이다. 존자암의 창건 시기는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으나, <법주기(法住記)>에서 존자암의 기원을 찾는 이들은 이곳을 한국 불교 초전 법륜지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1498년 유배된 후 8년 여를 제주에 살았던 홍유손이 존자암을 중수하기 위해 지은 <존자암개구유인문(尊者庵改構侑因文)>[1507]에서, “존자암은 비보소(裨補所)이자 세상에 이름이 난지 오래이다. [중략] 뿐 만 아니라 나라에서 이 암자에 논을 하사하여 벼를 심어 재를 지낼 경비로 삼고, 음력 4월 길일을 잡아 세 읍의 수령 중 한 사람을 뽑은 다음 목욕재계하여 이 암자에서 제사 지내게 하고 이를 국성재라 하였는데, 지금은 이 제사가 폐지된 지 6, 7년이 되었다.” 라고 한 것으로 보아 조선의 배불 정책이 강화되면서 서서히 소멸된 것으로 파악된다.
그 외 기록으로는 1519년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제주로 유배되어 왔다가 1521년 사사된 충암 김정이 『충암집(冲庵集)』에서 “존자암은 삼성(三姓)이 처음 일어났을 때 만들어져서 삼읍의 정립 후까지 오래 전해졌다.”라고 한 것 등이 있다.
이원진의 <탐라지(耽羅志)>에는 “옛날엔 한라산 영실에 있었다. 그 동굴에 수행하는 승려의 모습인 돌이 있어 수행동이라 전한다. 지금은 서쪽 기슭에서 밖으로 10리쯤으로 옮겼는데 곧 대정 지경이다.”라고 되어있다. 즉, 1653년 그 어느 시기에 영실에서 대정 지경으로 옮겨진 것이 된다. 이렇듯 위상에 변화가 생긴 존자암은 이곳저곳으로 옮겨지다가 조선 후기의 대대적인 억불 정책에 의해 완전히 폐사된 것으로 파악된다.
제주대학교 박물관이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존자암지를 발굴한 결과 건물지, 사리탑, 적석(積石)시설과 명문(銘文) 기와편, 명문 백자편 및 청자편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됐다. 1998년 여름부터 복원 불사에 들어가, 현재 국성재각·대웅보전·요사채 등을 중창하였다. 대웅보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좌측에는 이곳에 불교를 전했다는 발타라존자를, 우측에는 산신을 봉안했다. 현재 존자암지는 1995년 이래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3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존자암지 세존사리탑은 2000년 11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 유형 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이 사리탑은 고려 말 혹은 조선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도내 유일의 부도이다. 총 높이 181㎞에 팔정도를 상징하는 8각형 기단 위에 둥근 괴임돌을 놓고 탑신을 얹은 후 옥개석과 보주를 올린 모습이다.
그 외 존자암 청동제 지국천왕상은 부조 양식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왼손은 칼을 들고 오른손은 허리춤을 짚고 있는 모습이다. 도포의 가슴선 등이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다리 부분은 결실된 상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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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여 2019-12-26 17:43:33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은 이으나 한기가 너무심해서
수행처로는 안맞을터입니다.
아래 법화사지라면 가능해도 지금 현재의 도량도 부정
하는 수행자 입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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