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문화를 지키는 사람들-<민요패 소리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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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문화를 지키는 사람들-<민요패 소리왓>
  • 강석훈 기자
  • 승인 2004.10.15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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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이 시대의 소리 만들어내는 ‘밭’

지난 92년 민요교실 시작으로 창립

내부역량 강화·소리 보급에 주력

“소리는 대중화 됐을때 생명력 얻어”

제주역사·제주인의 삶 민요로 승화



   
 
   
 
사람이 말을 하듯 가장 자연스런 호흡으로 불려진다는 민요. 특히 제주민요는 우리 조상들의 노동과 놀이, 한(恨), 힘겨운 삶과의 투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민요가 단순히 구비문학의 한 분야로만 인식됐던 시절, 제주에서도 민요의 눈을 뜬 젊은이들이 등장하게 된다. 제주대학교 국문학과 민요분과 ‘섬비나리’ 출신의 안희정, 안민희, 문애선 씨가 그들이다. 이들이 80년대 암울했던 시대상황 속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민요를 접한 것은 어둠 속의 빛 그 자체였다.

이들은 1990년 졸업과 동시에 본격적인 민요운동을 위해 ‘우리노래연구회’ 민요분과에 참여했다. 그러나 당시 이들에게는 의욕 못지 않게 큰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민요를 소리가 아닌 학문으로 연구했던 까닭에, 정작 소리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극복하고 전문적인 활동을 위해 1992년 ‘제1회 민요교실’을 여는 것으로 민요패 ‘소리왓’을 창립하게 된다.

소리왓은 ‘진정한 이 시대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밭’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 소리왓은 명칭에 걸맞게 민요교실을 여는 등 민요의 대중적 확산과 삶의 노래로서의 민요라는 인식 정착, 내부역량 강화 등에 힘썼다.

특히 소리왓으로 거듭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민요패로서 역량을 키우는 일, 즉 소리를 배우는 일이었다. 1993년 이옥희 선생에게서 제주민요를 전수 받는 것을 시작으로, 진도 남도들노래 기능보유자인 조공례 선생, 충남 부여 산유화가 기능보유자 박홍남 선생, 익산들노래 기능보유자 박갑근 선생에게 각각 소리를 전수 받았다. 이후 서귀포시 강승화 선생에게서 예례동 민요를, 정선아리랑 기능보유자인 김남기 선생에게서 정선아라리를, 김석명 선생에게서 고성농요를 전수 받는 등 매년 꾸준히 역량강화에 땀을 흘렸다.

소리왓은 이러한 노력으로 1995년 11월 제1회 정기공연 ‘작은 소리 큰 신명’을 비롯, ‘꼬부랑나무 아래 행기물’ 등의 정기공연을 통해 ‘소리판굿’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선보였다.

   
 
   
 
‘소리판굿’은 말 그대로 소리로 풀어내는 판굿이다. 여기에서 ‘소리’란 민요뿐만 아니라 말 또는 효과음 등 모든 소리를 포괄하며, ‘판’은 장소적 의미에서의 공동성·집단성과 상황적 의미의 현장성·생활성을 함께 갖고 있다. 또한 ‘굿’은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으로서, 굿에 참여한 사람들이 배우들과 굿의 전 과정에 동참하는 동안에 그들에게 닥쳐 있는 공통의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방식을 말한다.

“민요가 가지고 있는 힘은 무궁무진했지만,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야 할 저희들은 너무나 소수였고 빈손이었습니다. 특히 오늘의 악곡개념을 갖고 있는 세대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가장 큰 과제였지요.”

소리왓 창립멤버 안희정 씨는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민요의 대중화가 풀어내야 할 실타래라고 말한다. 또한 전문성을 갖춘 회원 확보와 창작 활성화 역시 중요한 과제로 꼽는다.

현재 제주소리의 지킴이로 발돋움한 민요패 소리왓은 민중의 삶과 정서에 맞는 진정한 이 시대의 소리를 찾고 이를 확산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소리왓은 공연활동, 교육 및 보급활동, 조사 및 연구활동의 사업을 비롯, 여름·겨울 민요교실, 소리판굿 정기공연, 제주민요 현지조사 등의 사업을 활발하게 펴고 있다. 또한 어린이집·학원·초등학교 등의 특기 적성교육, 주부나 대학 문예패·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강습 등을 통해 제주민요 교육의 중추적 역할을 담보해 내고 있다. 특히 어린이 민요단 ‘소리나라’ 운영과 ‘제주창작국악동요제’ 개최는 제주민요의 미래를 담보해내기 위한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소리란 사람들 사이에서 불려질 때 생명력을 갖고 그 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대개의 노동이 기계화되면서 소리는 노동현장에서 멀어져 이제는 거의 테잎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제주민요는 타 지역 민요와는 다른 독특한 맛을 지니고 있는데도, 더 빨리 사라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김형섭 대표는 회원 모두의 치열한 고민이 없었다면 오늘의 소리왓은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러한 고민은 결국 대중과의 만남 속에서 땀흘리는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소리왓의 방향성을 담보한 작품으로 ‘2004 찾아가는 문화활동’의 일환으로 공연된 소리판굿 세경본풀이 ‘용시(農事)풀이’를 꼽는다. 지난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비롯한 대정읍·안덕면·성산읍·구좌읍·표선면 등 도내 전지역을 순회하며 공연된 이 작품은 쌀 전면개방에 따른 제주농민의 반대의지를 표출한 작품이다.

또한 지난 2001년에 정기공연에서 선보인 ‘우리할망넨 영 살았수다’는 100년 전 제주의 어르신들이 살아온 일상을 소리와 극이 결합된 형태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4계절의 변화에 따라 이뤄지는 노동의 과정을 제주민요의 원형을 최대한 살려 담아내고 있다. 무대에서 직접 타작을 하면서 소리를 하고, 방앗돌을 만들어 끌어내리는 등 사실적 표현이 뛰어난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리왓이 정기공연을 통해 발표한 작품들은 저마다 독특한 내용과 형식을 담고 있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제주의 역사와 제주인의 삶을 재발견하는 밑바탕에 민요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민요패 소리왓은 김형섭 대표를 비롯해, 안희정·안민희·현애란·송정희·권은희·김경률·문근식·오영순·조옥형·변향자 씨 등을 중심으로 한 정회원과 준회원, 후원회원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민요는 ‘삶의 그림자’와도 같습니다. 어스름한 저녁 그림자처럼 키가 커지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소망이 담겨 있기도 하고, 한낮의 더운 햇빛에 뛰어 놀면서 발 밑에 조그맣게 자리잡은 그림자처럼 늘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김형섭 대표의 말처럼 소리의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보다 풍요로운 수확을 준비하는 소리왓 사람들. 이들은 있는 그대로의 삶과 사람들의 소망을 담고 있는 민요를 통해 우리네 삶 속에서 그 존재가치를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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