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불교가 만난 사람<서예가 창봉 박동규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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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불교가 만난 사람<서예가 창봉 박동규 선생>
  • 김봉현 편집부장
  • 승인 2004.09.16 1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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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소암선생께서 서예의 길 열어줘”



   
 
  서예가 창봉 박동규 선생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았던 늙은 더위도 자연의 섭리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나 보다. 9월의 첫째 주 토요일. 신선한 가을볕과 바람이 좋은 날 오후, 제주 이문서회 서법전시회가 열리는 제주학생문화원 전시실을 찾았다.

그곳에서 제주출신 서예가 창봉 박동규선생을 만났다. 창립10주년을 맞은 창봉문하의 이문서회가 제주서 첫 전시회를 여는 자리라 그런지 스승과 제자들은 밝은 듯 하면서도 상기된 표정들이었다. 서예를 필생의 전업으로 삼아 수행자처럼 살아가는 선생께 필담을 들어봤다.

김=안녕하십니까. 오늘 전시회는 어떤 자리인지?

박=94년에 창봉서실 제주이문서회가 창립되었으니 올해가 딱 10주년입니다. 약 40여명 회원들이 서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10년 만에 여는 첫 전시회니 만큼 회원들의 부담감은 크겠습니다만, 공부란 것이 검증이 필요하겠기에 보따리를 풀어놓고 자자와 포살하듯 더 나은 모습을 갖추기 위한 자리라 할 수 있습니다.

김=돌아가신 소암 현중화선생님께 글을 배우셨다 들었는데.

박=소암 선생님 내외분은 저에게 친부모와 같은 분들이십니다. 가난하여 어렵게 주경야독하던 고등학교시절, 선생님 댁에 살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할 수 있도록 자애로움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선생님과 제 생일이 같더군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아닙니까. 제가 서울로 공부하러 떠난 1985년 직전까지 16년간 선생님의 세숫물이며 이부자리까지 제손으로 모셨습니다. 제가 좋아서 한일이지요. 누가 시켰으면 못했을 텐데.

김=소암 선생님과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박=셀 수 없이 많지요. 그 중에서 군대 있을 때의 일인데 선생님께서 친히 면회를 오셨어요. 제가 진해 해군 함대사령부에 근무할 때인데. 그리고 나중에는 편지로 글씨공부를 시키셨어요. 제가 틈틈이 글 써온 것을 우편으로 부치도록 하시곤, 당신이 다시 편지로 글씨를 봐주셨어요. 생각하면 분에 넘칠만큼 많은 사랑을 선생님께 받았습니다.

김=여초 김응현 선생께도 수학하셨다는데.

박=제가 서울로 유학길에 오를 때 소암선생님은 서울가면 여초 김응현 선생을 찾아가 공부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래서 여초 선생님의 서실을 찾아가게 됐습니다. 그분은 소암선생님과 또다른 교육방법을 가지셨는데 제자들에게 일일이 육필로 직접 쓰며 가르쳐주시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당대의 최고 어른인 두분 밑에서 서예의 기초를 수습한 것은 큰 행운입니다.

김=사찰의 편액을 많이 쓰셨는데.

박=저는 소암선생님의 영향으로 열반하신 서옹큰스님 등 스님들과 인연맺을 기회가 많았습니다. 불자가 된것도 스승의 영향이구요. 선생님은 생전에 날마다 금강경을 독송하셨어요. 그 때문에 저도 법화경을 사경한 것 같습니다.(웃음)

김=시간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창봉선생을 잘 아는 어느 예인이 이런 글을 썼다. ‘종자도 좋고, 땅을 잘 만나고, 우로지택(雨露之澤)이 고르고, 사람의 적공(積功)이 잘 들어가야 훌륭한 결실을 보게 되는 법이다’

학문에 임함에 있어 티끌만치 게으름도 없는 창봉선생에게 딱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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