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시론 - 공명조와 비익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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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시론 - 공명조와 비익조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1.08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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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호 성전 제주도 행정부지사, 본지 논설위원
김 호 성전 제주도 행정부지사, 본지 논설위원

올 한 해  전국 대학교수가 뽑은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가 선정됐다.
공명지조의 유래는 불경에서 나왔다. 불교에서 극락(極樂)은 아미타 부처가 사는 세계다. 번뇌 망상과 고통 없는 세계를 극락이라 한다. 극락세계에서 공명조는 다른 새들과 함께 법음장엄의 새로 등장한다. 
공명조 말고 우아한 소리를 내는 새들은 많다. 백학, 공작, 앵무, 사리조, 가릉빈가 등이다. (復次舍利弗 彼國 常有種種奇妙雜色之鳥 白鶴孔雀鸚鵡舍利迦陵頻伽共命之鳥 是諸衆鳥 晝夜六時 出和雅音)” 그중에도  공명조는 특별하다. 하나의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다. 한 머리는 낮에  노래하고, 다른 머리는 밤에  노래하는 역할 분담이 잘 되어있는 새다.  
그러나 공명조는 사이가 좋을 때는 극락새인데 혼자 독식을 하면 다른 머리가 화가 난 나머지 어느 날 독이든 열매를 몰래 먹어 결국 두 머리가 모두 죽게 됐다는 너 죽고 나죽는 공멸의  전설의 새다.  
최근에 우리나라 정치권과 너무나 유사하다, 나라가 공명조 처럼 진보의 머리와 보수의 머리로 두 조각났다. 국민들까지 두 편으로 나뉘어졌다. 확증편향이 극심하다.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고 편싸움을 부추기며 여론 정치를 하고 있다. 사분오열되는 사회 현실이  걱정이 되어 전국 교수들이 선정된 사자성어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개인적인 선악에 대한 믿음에 얽매이면 이는 또 다른 대립과 갈등을 파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군주의 권력은 국가 구성원의 요구와 동의에 기초하여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그 정당성과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고 하였다. 정치란 한정된 사회적 자원의 배분과정에서 나타나는 참여자 간의 갈등을 대화와 협치를 통해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했다.
우리들은 정부수립이후 권력형 비리 적패청산을 빌미로 역대 대통령이 교도소에 가는 불운의 역사를 많이 경험 했다. 이를 마감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검찰 개혁을 완수하여야 하는 것은 당위성이 충분하다. 절호의 기회이다. 그러나 권력주변이 조국사태 비호에서 빨리 벗어나야 검찰개혁이 완성될 수 있다.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뇌물 수수 등 11개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저지른 범죄들이라고 한다. 
언론에 나타난 것만 하더라도 울산시장에 당선시키기 위한 선거 공작이라던지 친노 출신인 유재수 전 금융위 국장의 비리를 확인하고도 특감반 감찰 중단 결정을 내렸다한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재판결과에 따라 솔직히 고백할 것은 고백하고 국민에게 이해를 바라면 된다. 그러나 파사현정 헌법가치를 위해 부정과 부패를 그냥 덮고 검찰을 개혁할 수 없다. “정치, 경제 분야를 비롯해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불공정에 단호히 대응하는 것은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를 지켜내는 일”이라며  대통령이 늘 강조한 말이다. 
또한 살아있는 권력에도 눈치 보지 말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어김없이 찰떡같이 잘 이행하는 윤석열 총장이 너무나 죽이 잘 맞는 환상이다. 이것을 거슬러서는 성공할 수 없다. 어리석은 생각일는지 몰라도 청와대와 법무부 장관은 설사 제식구가 관련이 있다하여도 잘못된 것을 들춰낸 검찰을 비난하고 공격하지 말고 정의롭게 검찰 개혁의 역사적 사명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국민 속에 스며든 정신은 영원하다는 역사적 교훈을 바르게  인식해주기 바란다. 
불경에  <자리이타 여조양익>이란 란 말이 있다. 새는 양 날개가 있어야 날아다닐 수 있듯이 정치에서 공명조는 국민이 불행하다.  여기에 비익조(比翼鳥)란 새의 의미를 음미할 만하다. 비익조는 날개와 눈이 하나밖에 없어서 짝을 짓지 않으면 제대로 볼 수도 날수도 없는 상상의 새가 비익조이다  한쪽 날개로 날 수 없고 한쪽 눈으로 불편하다. 짝을 찾아 서로 껴안아야 날수 있는 운명의 새다. 
금년 한해는 너 죽고 나살자식 갈등 즉 칡나무와 등나무의 싸움이 아니다.  또한 너 죽고 나죽는 공명조식 공멸이 되서는  더욱 아니다.  너도  살고 나도 잘사는 자리이타의 정신 비익조처럼 함께 더불어 사는 좋은 나라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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