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사부대중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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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사부대중의 근원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1.15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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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도포교사, 봉림사 신도회장
김성도포교사, 봉림사 신도회장

어느 법석에서 사회자가 ‘사부대중(비구비구니, 우바이우바세)’을 ‘사대부중’으로 잘못 멘트해서 웃음을 자아낸 일이 있었다. 우리 불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사부대중의 근원을 살펴보자.
카필라국의 왕자인 고타마 싯다르타는 사문유관을 통하여 사람은 왜 생로병사의 괴로움에 몸부림치는가? 하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하여 29세에 출가하였다. 부다가야에서 6년 간 치열한 고행 끝에 마침내 우주 만유를 관통하는 연기의 진리를 떠올리고 더할 나위 없는 눈부신 깨달음의 세계의 문이 열렸다. 
불변의 진리인 연기의 법칙은 인과법으로 상호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부처님이 만든 것이 아니라 부처가 세상에 나오든 나오지 않던 간에 진리로서 변함이 없으며, 당신은 이 진리를 깨달았을 뿐이라 하셨다.
연기의 진리 속에는 네가지 진실한 가르침인 사법인이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 변하는 것에는 자아라는 실체가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 그리고 거기에 변하는 모든 것은 괴로움을 낳는다는 ‘일체개고(一體皆苦)’, 이 모든 괴로움을 없애는 진리가 ‘열반적정(涅槃寂靜)’이다.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의 깨달은 이 날을 성도절이라 하여 철야 용맹 정진으로 부처님을 닮아가는 수행을 하고 있다. 이때가 부처님 나이 35세 되던 해 음력 12월 8일이었다. 사실상 불교가 시작된 날이니 매우 뜻 깊은 날임을 알아야 한다.
부처가 된 석가모니는 깨달음의 문을 들어서자 삶과 죽음이 사라진 해탈 열반의 세계가 펼쳐진다. 지금까지 지녀왔던 그릇된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고 밝은 지혜가 충만한 진리의 수레바퀴가 뭇 중생에게 행복과 이익과 안락을 위해 법륜이 굴러 간다. 
초전법륜은 부처님께서는 네란자나 강 언저리에서 고행을 함께 하다 수자타가 공양 올린 우유죽을 받아 마시는 광경을 보고 타락했다며 고타마를 비난하고 녹야원으로 떠났던 교진여 등 다섯 명의 수행자를 찾아가 중도의 가르침을 펼치셨다. 
 다섯 동료들은 거룩한 부처님의 위엄과 자비에 압도되어 정중하게 맞이하였다.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의 사라짐, 괴로움을 사라지게 하는 여덟 가지 바른 길의 성스러운 진리를 전수받은 다섯 명의 수행자는 모두 괴로움과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아라한이되어 최초의 비구가 되었다.
며칠 뒤 야사라는 청년이 친구들과 함께 부처님을 찾아와 법문을 들어 모두 아라한이 되었으며 아들을 찾으러 온 야사의 부모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최초의 재가신자가 되었다.
이리하여 세상에는 법을 설하는 부처님(佛)과 그 가르침인 진리(法)와 수행하는 제자(僧)의 세 가지 보물인 삼보가 갖추어졌으며 남녀 재가신자(우바이우바새)가 함께 구성된 승가를 이뤘으나 사부대중을 완성하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흘러서이다.
당시 고타마 싯다르타 왕자를 길러준 이모 마하프라자파티와 아내인 야소다라를 비롯한 카필라국 여인들도 출가제자가 되기를 원했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출가허락을 받지 못하였다. 
다행히 아난존자의 간곡한 부탁으로 부처님께서는 여성의 여덟 가지 조건을 내세운 뒤에 출가를 허락하셨다. 이렇게 어렵사리 비구니 승가가 만들어 짐으로서 사부대중이 완성되었다. 
그런데 부처님 당시에 평등을 주창하시면서도 인도문화의 특성상 남존여비의 문화는 뿌리 깊었음을 느낄 수 있다. 비구의 구족계는 250계율에 비해 비구니 구족계는 348계율이 따른다. 지금도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폐지된 지 70년 이상 지났지만 계급 출신에 대한 차별이 남아 있다.
또한, 비구니 팔경계 속에는 백세의 비구니라 할지라도 새로 비구계를 받은 비구를 보거든 일어나 맞아 예배하라는 등의 지켜야 할 팔법은 지금의 우리나라 기준의 상식으로 보아 성별 불평등의 극치를 이루고 있어 당시의 시대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사부대중은 불교의 교단인 승가의 완성품이다. 승가란 산스크리트어의 상가의 음역으로서 화합한 대중을 뜻한다. 깨달음을 이루고자 정진하는 공통된 목표 속에는 수행공동체라는 집단을 이루고 있기에 엄격한 계율이 적용되고 승가의 큰 덕목은 역시 화합에 있다. 
 부처님이 사부대중에게 전한 진실한 가르침인 중도는 양극단의 가운데가 아니며, 흑백논리 속에 어중간한 회색논리도 아니다. 중도의 가르침은 잘못된 것을 떠나 옳은 위치에 서는 것이며 중도는 정도이며 그 실천행은 소승의 팔정도이고 대승의 육바라밀행이다.
이 몸뚱이는 무아인데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참나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이것을 아는 지혜의 마음 도리가 열반적정일 것이며 도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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