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도 성지순례길은 뉘우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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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도 성지순례길은 뉘우침이 되었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1.1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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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성지순례기
고윤권  제석사 전 신도회장
고윤권 제석사 전 신도회장

첫째날/ 하늘에서 바라본 인도대륙
새벽에 집을 나선지 8시간여 만에 인도행 비행기에 올랐다. 5시30분 제주공항에 집결하여 기념촬영한 후, 김포공항을 거쳐 인천공항으로 출국했다. 김해 보현사에서 오신 스님, 보살님도 합류한 일정이었다.
날씨가 맑고 무탈하여 비행기에서 인도대륙을 조감하기도 했다. 이륙한지 9시간여 만에 인디라 간디공항에 도착하여, 까다로운 수속과정을 밟고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비행기와 버스로 먼 거리를 장시간 이동한 탓에 온몸에 피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친 몸을 샤워로 피로를 풀고 첫날 일정을 그렇게 마치면서 다짐해 보았다. 고난의 길이지만 수행하는 작은 뜻을 마음에 담아 충실히 일정을 마치겠노라고. 

둘째날/ 불교의 중심 바라나시로
동녘에서 떠오르는 붉은 해가 너무 곱고 아름다운 인도의 아침이다. 도착 첫날 아침부터 지난밤 이야기가 모두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 사연인 즉 새벽 2시에 벌떡 일어나 분주하게 준비하고 깊이 잠든 룸메이트까지 깨워버리는 해프닝이 있었다. 시계가 현지시간으로 자동 로밍되는 줄도 모르고 아침 6시로 착각한 것이다. 나름 다른 도반들에게 조금이라도 모자람을 보이지 않으려고 긴장한 탓이었다.
본격적 일정이 시작되면서 현지가이드 난군과 스님으로부터 일정 설명을 듣고, 국내선 항공을 이용하여 바라나시로 향했다.
바라나시는 힌두교 성지이며 불교의 중심이면서 순례자들이 찾아와 갠지스 강에서 인도의 마음을 길어가는 곳이다. 바라나시에 도착하여 식재료를 운반해 현지 식사담당에게 전하는 일을 도왔다. 순례기간 동안 일행들이 공양할 식재료인 것이다. 사소한 일임에도 매우 기쁘고, 다소나마 뜻이 있는 역할이었다. 공항주변에서 어린이, 어른들이 구걸을 하는 모습은 흡사 60년대 한국의 모습과 닮았다. 너무 가슴이 아파 작은 정성으로 보시하면서, 그들에게 꿈이 있는 내일이 있기를 기원했다.

인도성지순례길에 기념사진을 찍었다.
인도성지순례길에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후 일정으로 부처님 초전법륜지 녹야원 탑 앞에서 천수경 법문을 마치고 탑돌이를 하였다. 이어서 스리랑카 사찰 법회를 마친 후 호텔로 이동하여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다시 툭툭이 차량(개조한 소형차량)을 이용 갠지스 강으로 이동했다. 그 곳에서 수만 명이 참석하는 어머니를 위한 아르뜨 뿌자(힌두교 의식)를 참배하였다. 이 행사는 갠지스 강의 어머님께 편안히 주무시라는 뜻으로 치르는 종교의식이다. 
참배를 마치고 숙소로 되돌아오는 길은 실제보다 더 지루하고 멀게 느껴졌다. 차량, 오토바이, 자전거, 소떼 등 이동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숙소에 도착하고 일찍 취침했다. 새벽 4시30분 갠지스 강 일출행사 준비를 위해서다.

힌두교 의식
힌두교 의식

 

셋째날/ 갠지스 강의 일출행사 
새벽 3시에 기상하여 짐을 꾸리고 나서 버스를 탔다. 갠지스 강에 도착하니 동녘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는 너무 붉고 아름다웠다.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작은 소망을 기원해 보았다. 우리는 작은 보트를 이용하여 방생, 꽃, 촛불을 강물에 띄우고 법회를 했다.

바라나시 갠지스강에 해가 떠오르고 있다.
바라나시 갠지스강에 해가 떠오르고 있다.

강 건너편 모래섬으로 이동하여 광명진언을 스물 한차례 봉송하고 나서 모래를 채취했다. 윤달 해를 맞는 2020년에 그 모래를 이묘하는 조상님과 부모님, 준호 엄마 산소에 뿌려 드리기 위한 것이다. 
새벽시간인데도 이미 그곳에는 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일출을 향해 기도하며 정성을 드리는 모습,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모습, 그리고 애도 속에 화장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스스로 마음을 차분하게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숙소에서 아침 공양을 하고 사르나트박물관으로 이동하여 관람했다. 어느 곳이나 구걸하는 이가 많아 가슴 아팠다.

사르나트 박물관
사르나트 박물관

 

 

넷째날/ 6년 수행한 전정각산
새벽 4시 기상하고 아침공양을 했다. 툭툭이(개조한 소형차)를 이용해 마하보디사원에 도착했다. 마하보디사원은 부처님께서 수행하였던 곳이다. 그곳에서 천수경,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법회를 했다. 베트남, 대만, 일본, 중국에서 오신 순례단도 볼 수 있었다.
이어 부처님께서 6년 수행한 전정각산으로 이동했다. 굴속으로 신발 벗고 맨발로 들어가니 부처님이 모셔져 있었다. 부처님의 모습을 통해 자비하신 그 참뜻을 느낄 수 있었다.

마하보디 사원
마하보디 사원

 

다시 죽림정사 참배 후 꽃마차를 타고 산세가 좋은 라즈기르 마을 영취산으로 이동했다. 영취산은 부처님께서 라즈기르에 머물 때마다 즐겨 주석했던 곳으로 법화경, 보적경, 허공장경 등 대승경전에 속하는 많은 경을 설했던 곳이다. 
영취산 정상부에서 반야심경, 석가모니불, 금강경 독송으로 그날 법문을 마무리했다. 영취산 상단부가 복원이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두고 내려왔다.

진정각산
진정각산

 

 

다섯째날/ 최초의 불교대학 날란다
새벽 5시에 기상하고 잠시 틈을 내어 인도인들의 아침 일상을 볼 수 있었다. 스쿨버스나 오토바이를 이용해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신문보급소에서 배송하는 과정도 지켜볼 수 있었다. 지난밤 축제 자리를 둘러본 후 버스에 승차했다. 그 버스 속에서 스님의 법문이 있었고, 일행 중 어느 보살님의 생일 축원도 해주셨다.

나란다 대학터
나란다 대학터


날란다 대학을 찾았다. 인도의 최초대학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날람(연꽃)이다. 기원 5세기에 개교하여 1만여 명 스님이 학생으로 수업을 받았던 곳이다. 무슬림들이 파괴하고 모래로 덮여 있었는데 영국인들에 의해 발굴되었다. 전체 학교규모가 10㎞×5㎞가 되나 그 중 1㎞만 발굴되어 있었다.

부처님의 마지막 수행처인 대림정사. 아소카 석주가 우뚝 서있다.
부처님의 마지막 수행처인 대림정사. 아소카 석주가 우뚝 서있다.

 

스님인 중국 학생 힌창이 여기서 6년간 배우고, 6년간 강의하면서 기록한 12년간의 수첩을 남겨, 그 기록이 기초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혜초스님이 방문했던 자료도 있었다. 학교 내에는 아소카 나무가 많았으며 우리나라 도토리나무와 비슷했다. 또한 야자수는 기둥이 거의 하나인데 세 개 기둥을 가진 기이한 야자나무를 볼 수 있었다.
이어서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수행하였던 대림정사를 찾았다. 아소카 석주 윗부분 사자상이 쿠시나가르를 바라보게 했다. 부처님 사리탑은 훼손된 후 박물관으로 이전하여 모셔져 있다고 했다. 대림정사에서 금강경 법문을 마치고 숙소로 이동하였다. 
‘신비로운 나라요, 알아서 행동하는 나라’라는 인도정신을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 

쿠시나가르 열반당 다비터에서 천도재를 올리고 있다.
쿠시나가르 열반당 다비터에서 천도재를 올리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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