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천 김대규 화백의 불교미술살롱⑧ 봉황비상등천도(鳳凰飛上登天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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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천 김대규 화백의 불교미술살롱⑧ 봉황비상등천도(鳳凰飛上登天圖)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2.0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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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은 불전 수호 상징하는 극락조

봉정암 봉황설화
전래 설화에 따르면, 신라 선덕여왕 13년(644)에 자장율사가 당나라 청량산에서 3.7일(21일)기도를 마치고 문수보살로부터 부처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받아 금강산에 당도하여 봉안할 길지를 찾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오색찬란한 봉황이 나타나 자장율사를 인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봉황을 따라 마침내 부처님을 닮은 바위까지 오게 되었다. 
봉황은 그 바위의 이마부분에서 사라졌고, 율사는 그 주변이 산세가 수려한 길지임을 곧 알게 되었다. 그 이마부분에 오층탑을 세우고 부처님의 뇌사리를 봉안하고 암자를 세우니 이것이 봉정암의 유래다. 달리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봉정암이 신라 애장왕 시기 봉정 조사가 수도를 한 곳이라고 해서 붙었다는 설도 있다. 
봉정암은 신라 문무왕때 원효대사가 677년에 중건하고 1188년 보조국사 지눌이 재건했다. 조선시대 환적 스님과 설정 스님이 쓰러진 암자를 다시 중창하고 6.25이전까지 총 7차례에 걸쳐 다시 세웠다고 한다.  

 

봉황전설이 깃든 봉정암 오층석탑
봉황전설이 깃든 봉정암 오층석탑

백흥암 극락전 수미단 봉황 투각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의 주존 아미타삼존불을 안치한 조선시대의 목조불단(보물 제486호)에는 수려한 문양의 봉황이 투각되어 있다.
일명 수미단으로 불리는 이 불단은 높이 125㎝, 너비 413㎝. 전면은 옆으로 긴 방형의 판으로 이루어졌는데 상하 5단으로 나누고, 각 단을 다시 5칸으로 구획하여 여러 가지 상서로운 동물과 꽃무늬 등을 조각했다. 옆면은 2칸 정도의 넓이로 불상을 받쳐주고 있으며 화려하고 장엄한 부처의 세계를 꾸미고 있다. 특히 네번째 단에는 꿩·봉황·학·공작 등 날짐승들을 꽃과 함께 조각해 놓았는데, 이중 날아가는 봉황 조각은 모란과 함께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새 중의 왕인 봉황이 꽃 중의 왕이라 불리는 모란과 함께 새겨져 있어서 백흥암 불단의 격을 한층 높여준다.

 

백흥암 극락전 수미단 봉황투각 (조선시대, 보물제486호)
백흥암 극락전 수미단 봉황투각 (조선시대, 보물제486호)

봉황과 불교
봉황은 용, 기린, 거북과 함께 사령(四靈)에 속한다. 전국시대 말부터 한대(漢代)에 이르는 동안에 상서(祥瑞)의 사상이 점차 형성되어 한나라의 기록에 의하면 인군(仁君)의 성정(聖政)이라는 정치적 성격과 결합하여 인조(仁鳥)로서의 봉황의 이미지가 이루어졌으며 상서로운 신수(神獸)로 정착되었다. 일찍이 봉황이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안정된다 하여 길조로 여겨졌고 모란이 ‘꽃 중의 왕’이듯이 봉황은 ‘새 중의 왕’으로 여겨졌다. 봉황이란 수컷인 봉(鳳)과 암컷인 황(凰)을 함께 이르는 말인데 전설에 의하면 용이 땅에 내려와 학과 연애하여 낳았다는 상상의 새이다. 그리고 금과 옥이 많이 나는 단혈산(丹穴山)에 산다고 한다. 봉황은 실재하는 새가 아닌 상상의 새이다. 그런 만큼 상징하는 것도 다양하고, 표현하고 있는 외형도 화려하다.
봉황에 대해 <산해경>에서는 “이 새의 머리의 무늬는 덕(德)을, 날개의 무늬는 의(義)를, 등의 무늬는 예(禮)를, 가슴의 무늬는 인(仁)을, 배의 무늬는 신(信)을 나타낸다.”고 했다. 불교에서 봉황은 극락조라 부르며 용과 더불어 불전 수호를 상징한다. 
봉황이 새겨진 유물로는 백제공예미술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금동용봉대향로, 경주 서봉총 출토의 신라 금관, 그리고 기와 등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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