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에세이 - 법우와 도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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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세이 - 법우와 도반 사이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2.0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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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
유현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은 친구. …”
유안진 교수의 수필 <지란지교를 꿈꾸며>에서 나온 말이다. 글쓴이의 모든 허물을 무난하게 받아 줄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나타낸 글이다. 
나에게도 매월 첫 수요일에 모임을 갖는 간친회懇親會가 있다. 직업이 다르고 또 나이 차가 있지만 삼십 년째 매월 한 번 정기 모임을 갖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막역지우莫逆之友가 됐다.  
세속의 삶에서 마음 속 털어 놓고 지낼만한 지음知音의 벗이 없다면 사막에 사는 것과 같이 삭막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세태는 좀 다른 것 같다. 30∼40대 직장인들은 소셜미디어 친구들과 대화를 자주한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게시물을 보고 쪽지나 메신저도 주고받고 종종 댓글을 단다. 오프라인에서 서로가 본 적이 없단다. 실제로 만나서 얼굴 맞대고 정을 주고받는 일이 질척거린다는 게 그 이유다.
나이 듦과 함께 지혜가 자라고 연륜과 함께 깨달음(bodhi)도 깊어지는 것일까. 출리에 뜻을 두고 법우法友들과 친교를 맺는 시간이 많아지자 옛 벗들과의 만남은 드문드문하다.  
법우와 혼용되는 도반道伴이라는 말이 있다. 스님들끼리 호칭할 때는 도반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스님들은 법랍이라는 것이 있어서 서로 존중을 해줘야하며 그런 이유로 재가불자들끼리 널리 사용되는 법우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 성싶다.
내가 읽은 초기경전(S45:2)에는 좋은 벗, 좋은 동료, 도반이라는 말은 있지만 법우라는 말은 없다. 내가 아는 바로는 도반이라 함은 여덟 가지의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를 닦는 자, 즉 팔정도의 마차에 탄 수행자를 뜻한다. 
출가사문으로서 37가지 보리분법을 닦아서 성자가 된 거룩한 분들을 선우善友라 부른다. 부처님이나 사리뿟따 존자와 같은 성자만이 아직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하였으며, 불법을 수행해서 깨달음을 실현하려는 범부 중생들에게 자애(mettā)와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maranasati)의 유익한 명상주제를 주고 가르칠 수 있다고 한다. 선禪불교에서는 선지식善知識이라 호칭한다.
경전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 선지식과 수행하기 적절한 장소, 좋은 도반의 세 가지 요소를 중요시한다. 거룩한 스승의 수승한 가르침을 받는다고 해도 함께 하는 도반이 없다면 깨달음에 이르기가 그만큼 어렵다.
내 곁에도 비승비속非僧非俗의 수행자로서 미얀마에서 단기출가를 경험하였거나 예류도 이상의 과위를 증득한 분들이 있다. 청정범행의 길을 가는 이런 분들과 자주 법담을 나눌 때 법열이 샘솟음을 느낀다. 
아내는 내 버팀목이기도 하지만 성내는 내 기질을 족집게처럼 잡아내고 일침을 가하는 소방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도반이기도 하다. 
“삶의 길에서 자기보다 낫거나 동등한 사람을 찾지 못하면 단호히 홀로 가라. 어리석은 자와의 우정은 없다.”라는 법구경의 금언金言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경자년 새해에는 좋은 도반들과 함께 눈 밝은 스승을 자주 찾아뵙고 끊임없이 닦아야 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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