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잔 차’스님의 숲 속의 사원 - 왓 바퐁 사원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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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 차’스님의 숲 속의 사원 - 왓 바퐁 사원 방문기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2.1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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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김형근 _ 미주현대불교 편집인
아잔찬 스님이 거주했던 건물
아잔찬 스님이 거주했던 건물

 

태국에서 가장 유명한 지역은 방콕과 치앙마이이다.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는 방콕, 파타야와 푸켓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2017년부터 태국 방콕을 비롯하여 아유타야, 수코타이 등 불교유적지와 치앙칸이라는 조그만 도시, 그리고 꽈이강의 다리로 유명한 콰이 지역을 가보았다. 치앙마이는 아직 방문하지 못했다. 이런 지역들 외에도 불교인들에게는 꼭 방문해야 할 지역으로는 아잔 차 스님이 활동하던 ‘우본랏차타니 주’이다. 이곳은 ‘이산’이라는 지역의 한 곳이다.
나는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여 태국 방콕에 도착하여 하루 밤을 지낸 다음 수완나품 공항에소 아잔 차 스님의 활동무대였던 ‘우본랏차타니’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갔다. 비행 시간은 1시간 남짓했다. 
 ‘우본’지역은 개발이 덜 된 지역이어서 경제적으로는 태국에서 낙후된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지역은 과거 라오스 영토여서 이 지역에서 라오스 말을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이 지역이 고향인 아잔 차 스님의 설법은 태국어로도 라오 언어로도 한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위빠사나 수행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스님은 미얀마의 마하시 사야도와 태국의 아잔 차 스님을 위시하여 여러 스님이 있다.
태국에서는 아잔 차와 아잔 붓다다사(Ajan Buddhadasa)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붓다다사는 공동체인 ‘수안 모크(Suan Mokkh)’운동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틱낫한 스님(1926~)보다 먼저 참여불교를 주장하고 실천한 스님이다. 아잔 문(Phra Ajahn Mun)스님은 아잔 차와 아잔 마하부와 스승이지만 서양인들과 접촉이 별로 없어서 서양에는 아잔 차 보다 덜 알려졌다.
아잔 차 스님은 잭 콘필드 등의 소개로 일찍부터 미국에 알려졌고, 한국에도 1990년대 이후에 많이 알려졌다. 아잔 차 스님과 아잔 붓다다사 스님의 저서는 영어로 많이 알려졌는데 이 영어 책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책들이 여러 권이 있다.
‘아잔 차 스님의 오두막’, ‘반조 마음을 비추다’ 등이 아잔 차 스님 제자들이 영어로 낸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이다.
잭 콘필드가 쓴 ‘Living Buddhist Master’를 김열권 거사가 번역한 ‘위빠사나 열두 선사’ 라는 책에도 아잔 차 스님의 소개가 나온다. (이 책은 다시 붓다의 후예, 위빠사나 선사들, 1권 미얀마, 2권 태국 이란 제목으로 나왔다) 또 그의 영국인 제자 아잔 브라흐만이 쓴 책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등을 통해 아잔 차 스님에 대해, 그의 수행에 대해 많이 소개하고 있다. 현재 아잔 브라흐마는 서양인들에게 중요한 영적 스승이다.
아잔 차는 당대 최고의 영적 스승으로 존경받았고 불교 명상과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관한 가르침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고무시키고 인도했다. 그는 단순함과 버림의 생활을 실천하며 지혜와 유머, 큰 자비심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펼쳤고 서양의 저명한 불교도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1918년 태국 북동부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아잔 차 스님은 아홉 살 때 절로 출가했고, 스무 살 되던 해에 비구계를 받았다.
몇 년 후, 아버지의 죽음에 자극받아 고향의 안정된 사찰 생활을 버리고 방랑하는 수행승이 되어 명상에 매진했다. 그는 숲, 동굴, 공동묘지 등에 머무르며 (지난 세기의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태국의 명상 스승이었던) 아잔 문 스님을 비롯한 몇몇 명상 스승들에게 지도받으며 자신을 단련시켰다.
왓 바퐁(Wat Nong Pah Pong (Short: Wat Pah Pong)은 아잔 차 스님이 오랫동안 떠돌며 수행한 뒤에 고향에 돌아와 인근 울창한 숲에 머물면서 1954년에 시작되었다. 사람이 살지 않은 그 숲은 코브라와 호랑이, 유령들이 출몰하는 곳으로 알려진 곳이 있는데, 아잔 차 스님에 따르면, 그래서 오히려 숲 속에서 수행하는 승려가 머물기에 딱 알맞은 장소였다. 이곳에 스님을 중심으로 큰 수도원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의 단순하지만 심오한 가르침의 방식은 특히 서양인들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서양인이 그에게 명상을 지도받기 위해 찾아왔다. 출가자로 수행하려는 서양인들이 늘어나면서, 1975년 그는 그들의 지도를 위한 특별한 사원을 설립했다. 아잔 차 스님은 1992년에 입적했지만 그 후로 그의 많은 제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있다. 태국 밖에 설립된 분원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아잔 차 상수 제자인 아잔 수메도 스님이 영국 치트허스트에 설립한 수도원이 유명하고, 또 호주에는 옥스퍼드 대학교 출신인 영국인 아잔 브람이 설립한 수도원이 있다.
미국에서 아잔 차 스님의 제자들이 운영하는 곳은 북가주 레드우드시에 있는 ‘아바야기리 수도원’이 있고, 메사추세에츠 바레의 Insight Meditation society는 그에게서 지도를 받았던 미국인 잭 콘필드가 미얀마 마야시 사야도에게서 지도를 받은 샤론 살츠버그, 문이드라-지와 고엔카 수련원에서 수련을 한 조셉 골드스타인 등이 공동으로 만든 곳이다. 그는 1979년 늦은 봄 이곳을 방문하여 열흘간 머물면서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하였다.
왓 바풍 안으로 들어가자 대나무를 비롯하여 이름을 알 수 없는 많은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서있었다. 대부분 잎이 큰 활엽수 나무들이었는데 그 나무들 사이에서 한 스님이 낙엽을 쓸고 있었다. 닭우는 소리가 정적을 깰 뿐 스님이나 방문자들도 별로 볼 수 없었다. 스님들은 각자 수행처인 오두막(꾸티)에서 수행하는 것 같았다.
이 스님에게 물어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한 곳에 있는 곳으로 가서 법명이 쟌타파류라는 비구 스님을 만났다. 직책이 Acting Abbet인 이 스님은 여기 ‘우본라차타니’에서 태어났다. 1973년 행자 생활을 시작하여 1년 후 스님이 되었다. 올해로 43년째 스님으로 수행하고 있다. 요즈음 보기 힘든 나비도 보이고, 아주 평화로운 사찰이었다. 이 사찰의 하루의 일과는 새벽 2:45에 일어나 3:15에 독경으로 시작한다고 한다. 5:00시 부터는 명상을 한다. 6시부터 탁발을 하여 8시에 식사를 한다. 이 수도원에는 비구 스님이 45명, 여성수행자인 매치(Mae chi)가 20명, 사미승 5명이 있다고 한다. 이 수도원에서는 1년에 한번 큰 행사를 하는데 그 시기는 매년 6월 11일부터 17일까지 1주일 간 계속한다.

아잔 차 스님의 수행 사진
아잔 차 스님의 수행 사진

 

아잔 차 수도원에서 명상의 핵심은 특별한 수행법을 연마하는 것이 아니고 생활하는 가운데 있는 것이다.
아잔 차 스님 관련 자료들을 보면 그의 수행방법은 ‘마음관찰’ 수행을 강조한다.  스님들은 가사를 바느질하고 숲길을 쓸고 지극히 단순하게 생활한다. 하루에 한 끼 식사를 한다. 그의 가르침은 “깊은 지혜나 깨달음의 경험에도 집착하지 말고, 단지 순간순간 집착을 여의는 이 수행을 계속하라고 말한다. 사찰에서의 일상생활도 정규적인 좌선이나 경행 못지않은 수행의 중심이 된다.
아잔 차는 어떤 특별한 명상 테크닉을 강조하지 않는다. 깨달음과 지혜를 빨리 달성하도록 하는 충격적인 방법도 장려하지 않는다. 정규적인 좌선에서 마음이 고요해질 때까지 호흡을 주시하고, 그런 다음에 몸과 마음의 현상을 관찰함으로써 수행을 계속하도록 한다. 소박하고 자연스럽게 살라. 그리고 마음을 관찰하라. 이것이 그의 수행의 열쇠이다. 인내가 강조된다.
쟌타파류 스님의 부탁으로 왓 바퐁 사찰의 신도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의 안내로 사찰 경내를 살펴보았다. 사찰 경내의 수많은 나무 사이로 길이 있었다. 군데군데 표말과 태국어 안내문이 있는데 대부분 아잔 차 스님이 설법했던 곳, 좌선했던 곳, 걷기 명상했던 곳들이었다. 그곳에 안내 설명서를 설치한 것이다. 걷기명상을 한 장소에는 콘크리트로 발자국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아잔 차 스님이 평소에 거주했던 태국 전통식 집도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이 수도원을 방문하는 사람들 모두가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다. 
스님은 말년에 몸이 아파서 치료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치료 설비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현대식 건물로 지어서 그곳에서 말년을 보냈다.
이 왓 바퐁에는 현대식 설법전과 예술적으로 지어진 우보솟(스님 출가하는 곳), 식당은 상당한 규모였다. 수행을 중요시하는 숲속의 사원이라서인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찰이지만 방문자는 거의 없었다. 사원 담장 밖으로 나가 스님의 사리탑에 가서야 단체로 방문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많지 않은 숫자였다.
왓 바퐁 사원 입구에 있는 박물관은 3층으로 된 건물이다. 이곳에는 아잔 차 스님의 행적을 엿볼 수 있는 사진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안내인도 없었고, 기념품을 팔지도 않았다. 대부분 태국 사찰들은 태국 국왕을 비롯하여 왕족들이 방문한 큰 사진을 사찰의 이곳저곳에 많이 걸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수도원 어느 곳에도 없었고, 박물관에 있는 많은 사진들에도 그런 사진은 없었다.
저녁에는 6시가 되자 컴컴해지기 시작했다. 닭들이 우렁차게 큰 소리로 울어댔다. 간간히 새 우는 소리도 들렸다. 시간이 흘러 어둠이 완전히 깔리자 닭 우는 소리가 멈췄다. 법당에서 예불이 시작되었는데 참가하는 스님들은 10명 미만이었는데 대부분 젊은 스님들이었다. 법당의 높은 단에는 승복을 입은 스님들이 앉았고, 그 밑에는 행자인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앉아서 6시 15분부터 독경을 하였고, 재가 신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스님들 중 한 스님이 마이크를 이용하여 독경을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따라서 했다. 필자는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예불을 참가한 후에 컴컴한 수도원을 나왔다.

태국 헌법에는 제한이 없으나 승가법에선 여성의 비구니 수계금지
태국에서는 여성의 출가가 인정되지 않고 있다. 태국 불교계 대표 기구인 태국불교협회는 지금까지 여성에게 구족계(具足戒: 출가자가 정식 승려가 될 때 받는 계율로서 비구와 비구니가 지켜야 할 계율) 수지를 하지 않고 있다. 태국에는 비구니가 존재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20만여 명에 이르는 태국의 스님들은 모두 남성인 비구이지만 최근에는 스리랑카 등 다른 나라에서 계를 받은 비구니들이 조금 있다고 한다.
여성은 오직 가톨릭 수녀처럼 흰색 옷을 입은 채 사원에서 수행자가 아닌 불자로서만 생활할 따름이다. 그것도 여성은 ‘치(chi)’ 또는 ’매치(mae chi)’라고 불리는 불자로서만 사찰에서 생활할 수 있다. 금욕 외에도 8계를 지켜야 하는 매치는 대부분 밥 짓고 빨래하며 바느질을 하는 등 비구들의 식모 내지 하녀처럼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절 살림을 열심히하지 않으면 게으르다는 핀잔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종종 밥도 얻어먹지 못할 뿐 아니라 몇 푼 되지 않는 용돈마저 끊긴다. 필자가 2018년 1월에 소개한 ‘담마카야-Wat Phra Dhammakaya’에는 매치처럼 사는 여성들이 800명 정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이고, 이중 언어 구사자도 많다. 이들은 8계를 지키며 공동생활을 하면서 사찰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 돈은 아주 조금 받는다고 한다.
또한, 매치는 행정적으로 애매모호한 위치에 있다. 예컨대 태국 교통통신부는 매치들을 일반 속인으로 간주해 그들에게는 비구에게 부여하는 대중교통 무임승차권을 주지 않는다.
그에 비해 내무부는 그들을 종교인으로 간주해 투표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밖에 불교 신도들이 공덕 축적의 목적으로 현금, 옷, 비누, 횃불, 양산 등 승려들에게 행하는 보시도 비구에게만 주어지고 매치들에게 보시를 하는 경우는 없다. 현재 태국에는 약 20만명의 비구에다 약 1만 명의 매치가 있다. 태국 사람들은 ‘매치’를 비구 스님과 같은 복전(福田)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즉 이들에게 보시를 하더라도 보시자가 복을 쌓은 것으로 생각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보시를 거의 하지 않는다. 태국의 여성 출가자 문제는 종종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태국의 유명한 재가 불교운동가인 ‘술락시바라삭의 저서 ’평화의 씨앗‘이라는 책에서 ‘여성과 불교’라는 항목에서 불교의 여성 문제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태국에는 약 250,000 명의 승려가 있고, 유감스럽게도 그 두 배의 매춘부가 있다. 이것은 국가제도가 기능장애를 일으키고 있음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런 여러 문제를 해소하려면 반드시 아시아 불교 전통을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직은 태국에는 동진 출가가 있다. 또 사찰에는 고아들을 키우고 있고, 이들이 출가를 많이 한다. 태국에서 여성 출가 제도가 보장된다면 여성문제 해소에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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