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전전긍긍(戰戰兢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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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전전긍긍(戰戰兢兢)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2.1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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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고영철 _ 전 함덕초등학교장

不敢暴虎    감히 맨손으로 범을 잡지 못하고
不敢憑河    감히 걸어서 황하도 못 건너네
人知其一    사람들은 그중 하나는 알지만
莫知其他    그 밖의 것들은 알지 못한다네
戰戰兢兢    두려워서 벌벌 떨며 조심하기를
如臨深淵    깊은 연못에 임한 것같이 하고
如履薄氷    살얼음 밟듯이 해야 하네

‘시경(詩經)’ · 소아(小雅) <소민(小旻)>에 등장하는 고사이다. 이는 주(周)나라 말기의 악정을 개탄한 시로 서주(西周)의 폭군 유왕(幽王)을 풍자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 뚜렷한 근거는 없다. ‘전전(戰戰)’은 몹시 두려워서 벌벌 떠는 모양이고, ‘긍긍(兢兢)’은 몸을 움츠리고 조심하는 모양을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 매우 두려워 벌벌 떨며 조심한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전전긍긍’은 본디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온 심혈을 기울여 신중하게 임한다는 뜻을 지녔다. 이익(李瀷)선생은 <성성자(惺惺子)>라는 악부에서 남명 조식(南冥 曺植)의 ‘남달리 높고 혁혁한 기절[嵬赫之氣節]’이 잠시도 마음을 놓지 않고 ‘전전긍긍’하는 수양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혼돈의 시대일수록 자신의 소견을 세울 때나 남의 말을 받아들일 때 사심을 거두고 공적인 이치에 맞는지 다각도로 심사숙고한 다음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 이것이 ‘서경(書經)’ <여오(旅獒)> 편의 “뜻을 도에 따라 안정시키고 말을 도에 따라 응대하소서.[志以道寧, 言以道接.]”라는 진언의 의미이다. 이어지는 구절인 “아주 작은 행동이라도 신중히 하지 않으면 결국 큰 덕에 누를 끼칠 것입니다. 9인 높이의 산을 만들 때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이 부족해서 모든 공이 허물어지는 것과 같습니다.”라는 고사가 등장한다. 이 말 역시, 전전긍긍의 태도를 강조한 것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ronavirus disease 2019)앞에서 말 그대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지금 우리 앞에 엄혹하게 닥친 현실의 공포다. 이 공포는 우리가 아직 이 병원균의 정체를 모른다는 데서 두려움이 기인한다. 신종이라서 아직 치료제나 백신이 제대로 개발되지 못했다는 점, 보균 가능성 있는 이들이 확진 이전에 어디를 다니며 누구와 접촉했는지 완벽하게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내 옆의 누군가가 보균자일지도 모른다는 점이 우리를 공포스럽게 한다. 어쩌면 바이러스 자체의 전염력보다 이 공포심의 전염력이 더 강할 지도 모른다.
실제 조선시대에 역병으로 목숨을 잃은 수만 명의 백성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금의 우리는 예방 및 대처에 유용한 의료 지식과 기술의 발전을 이루었고 상황과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는 매체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무지의 영역이 작지 않게 존재하고 있어서 그로 인한 공포는 없을 수 없다. 문제는 다른 의도를 가지고 공포심의 전염을 조장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급박하게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국가나 기관이든 개인이든 대처의 내용과 시기에 아쉬운 부분들이 발생할 수 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사후에 엄정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다만 지금은 전문가의 견해를 존중하면서 말은 아끼고 힘을 모을 때이다. 감당하지 못할 섣부른 인도주의도 문제지만 근시안적인 실리를 앞세운 혐오와 차별도 경계해야 한다. 막연한 공포심과는 다른 ‘전전긍긍’의 신중함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암울한 상황이라도 최악에 이르면 바닥을 치고 반전한다는 것이 사물과 모든 일의 이치이다. 성하면 기울고 바닥에 도달하면 다시 치고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순리이다. 그 반전의 시기를 앞당기고 피해자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국가든 개인이든 전전긍긍 신중하게 대처하되 절대 막연한 공포에 끌려 다닐 필요는 없다. 
도무지 끝이 없을 것 같은 혹독한 겨울도 결국은 온화한 봄 햇살에 서서히 밀려나고야 마는 법. 작고 여린 새싹이 꽁꽁 얼어붙었던 땅을 밀어내고 고개를 내밀 듯이, 생명력 넘치는 새봄의 기적처럼, 코로나 사망자의 숫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이 땅에 암울한 병원균의 공습이 끝났음을 알리는 새 소식이 전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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