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에세이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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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세이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2.19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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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현
유 현

입춘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봄을 깨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목裸木은 겨우내 비워두었던 줄기마다 물을 끌어올리며 기지개를 켠다.
봄맞이 민속축제인 ‘입춘 굿 놀이’가 취소됐다. 중국 발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 때문이라 한다. 입춘 굿의 프롤로그는 ‘낭쉐코사’이다. 입춘 전날 심방(무당)들이 ‘낭쉐’(나무로 만든 소)를 만들고 금줄을 친 후 고사를 지내는 것으로 탐라국 시대부터 전승된 농경의례 행사의 하나다. 
불교에서는 소를 마음에 비유하여 마음 닦는 공부를 목우牧牛라 한다. 검은 소를 흰 소로 길들여야 하는데, 요즘 세태는 거꾸로 가는 것 같다. 착잡한 생각에 빠졌다가 어수선한 마음을 달랠 겸 선승의 법문 집集을 뒤적거리다 1981년 1월 19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성철 큰 스님의 법어에 시선이 꽂혔다.  
“보이는 만물은 관음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이라. 보고 듣는 것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느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 뭐꼬? 그 시절 청맹과니와 다를 바 없는 나로서는 선승의 깨달음의 소리를 알 수가 없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山是山水是水).’라는 화두는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 당나라 때 청원유신靑原惟信 선사의 법어에 나온다. 
“내가 30년 전 참선하기 전에는 산을 보면 산이었고 물을 보면 물이었다. 그런데 후에 훌륭한 스승을 만나 깨침에 들고 보니 산을 보아도 산이 아니었고 물을 보아도 물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이제 정말 깨침을 이루고 보니 전과 같이 산은 그대로 산이었고 물은 그대로 물이었다. 대중들이여! 이 세 가지의 견해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공안의 하나로 손꼽히는 이 화두는 받아들이기에 어렵지 않고 쉬운 것 같으면서도 심오하여 후학들의 해석이 정말 분분했다. 이 화두가 어렴풋이 풀리기 시작한 것은 약 10년 전쯤「아비담마」공부를 하면서부터다. 
세월이 흘러도 빛이 바래지 않고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부처님의 원음이다. 석존께서 성도 후 칠년 째 되는 해에 삼십삼천(제석천)의 주도수 나무 아래 황모석에 정좌하시어 범천들에 둘러싸여 천상의 어머니를 비롯한 일만 우주의 천인들을 대상으로 삼 개월 동안「아비담마」를 쉼 없이 설하셨다. 이 법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전승되었고, 초기불전연구원(대표 대림 스님)의 역경사업 덕분에 우리말로 번역된 이 책이 내 앞에 있게 된 것이다. 
산이나 물은 사물을 구별하기 위해 세상의 합의에 의해 정해진 인습적인 암시나 개념적 명칭에 불과하다. 이를 불교에서는 속제(俗諦, sammutisacca)라 한다. 다른 한편, 진제(眞諦, paramatthasacca)의 시각에서는 참깨에서 기름을 짜내는 것처럼 궁극적 실재(빠라맛타)에서 지혜를 통해 개념을 뽑아낸다. 흙 그릇을 예로 들면 흙만 있을 뿐, 흙 그릇은 실재가 아니라고 본다.
보통사람들은 겉모양인 형상이라는 개념으로 사물을 인식하여 빠라맛타(최상의 진리)를 알기 어렵다. 아라한과 같은 성자(아리야)는 ‘사람이 간다.’가 아니라 사람이 가는 것도 아니고 가게끔 하는 사람도 없고, 오로지 단지 가려는 의도(마음)와 더불어 바람의 성질[風]로 인해 물질들이 일어남을 알고 볼 뿐이다. 
빤낫띠(개념)는 변하나, 빠라맛타는 불변의 진리이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이 두 가지의 틀을 빌어 법을 펴셨다. 이를 대기설법이라고 부른다.
반야심경의 주인공인 관자재보살도 궁극적 지혜의 완성을 수행하면서 이 몸뚱이를 중생(개념)으로 보지 않고, 오온五蘊으로 해체하여 그 본성의 공空함을 통찰함으로써 생사윤회의 고통을 끊으셨다. 
마치 짙은 화장에 가려 있던 늙은 퇴기退妓의 맨 얼굴을 술이 깬 뒤에 여실히 보는 것과 같이 이 몸뚱이를 해체해서 오온의 공성을 통찰, 수행을 하는 것이야말로 ‘이 뭐꼬?’에 대한 진정한 의심에 불을 지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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