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불교계 원로 정암당 향운대종사 원적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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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불교계 원로 정암당 향운대종사 원적에 들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2.19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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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총무원 사회 교무부장, 관음사 주지, 제주불교신문 사장 역임
천룡사 장으로 장례 치르고 유골은 1년뒤 사리탑에 봉안키로

향운 대종사 임종게(臨終偈)

不求名利不求榮  只麽隨緣度此生
三寸氣消誰是主  百年身後謾虛名
衣裳破處重重補  粮食無時施施營
一箇幻軀能幾日  爲他閒事長無明

명리를 구하지 않고 영화도 구하지 않으며
다만 연을 따라 이 목숨을 제도하리라
三寸의 기가 녹아지면 누가 주인이겠는가
백년지난 사후엔 부질없는 헛된 이름뿐이다
옷이 헤진 곳엔 자주 꿰매고
양식이 없을 때엔 돌아다니며 구하도다
한낱 더없는 몸이 얼마이겠는가
저 쓸데없는 일을 위하여 무명만 길렀구나

정암당 향운대종사
정암당 향운대종사

지난 14일 오후 4시 12분 대한불교 조계종 천룡사 회주이신 정암당 향운 대종사께서 원적(圓寂)에 들었다. 법랍은 67세, 세수 86세를 일기로 입적한 향운 대종사는 1935년 제주도 애월읍 애월리에서 태어나 19세에 출가해 1955년 1월 15일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보살계를 수지하고 향운 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그후 군입대 전까지 은사이신 동산 스님의 시봉을 3년간 하고, 1958년 3월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하고 범어사 강원에서 강백 고봉 스님 문하에서 대교과를 수료했다. 그후 범어사 교무국장과 총무국장, 그리고 범어사 부주지를 역임하였고 제주 제23교구 본사 관음사 주지, 중앙종회 의원, 제주불교신문 사장을 역임하였고, 도남동 천룡사 창건 회주로서 제주불교 발전에 크게 공헌을 하였다. 특히 관음사 주지를 역임할 때 불타버린 관음사를 중건하여 오늘의 대가람 기틀을 다졌다. 
장례위원장은 흥교 큰스님이고, 맏상좌로는 일석 스님, 은법상좌로는 효성 스님, 동욱 스님, 동제 스님, 동수 스님, 동철 스님, 성암 스님, 성민 스님, 성담 스님이고, 손상좌는 진성 스님이다. 
영결식은 2월 18일 오전7시 30분 부민장례식장에서 엄수되었다. 이 날 영결식에서는 상운 스님의 사회로 원공 스님이 집전을 맡았다. 행장 소개는 백련사 봉률 스님이 낭독했고, 이어진 선래 스님은 영결사에서, “향운 큰스님이시여. 스님이 남기신 적멸이 심히 깊고 고요하여 진용(眞容)을 뵈올 수가 없고, 마음으로도 그 경지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보고 듣고 말하던 견문각지(見聞覺知)를 모두 다 거두시고 환귀본처(還歸本處)하셨으니 스님께서 이루신 적멸의 분상에 어찌 오고 감이 있고 시종(始終)이 있을 수 있으며 생사의 출몰이 있겠습니까? 다만 무성법계에 태어나 우리와 같이 사바에 머무신 것은 생사자재(生死自在)한 법신의 묘용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제 큰 스님의 자애스런 진용과 법음을 어디서 뵙고 들어야 합니까? 속히 저희들 곁에 돌아오시어 환도중생하소서”라고 애도했다.  

 

이어서 관음사 조실 만백 종호 스님은 추도사에서, “오늘 큰스님께서 66년간 고요히 본래면목을 관조하시다 이제 안거를 마치고 적멸을 보이신 것은 역대조사들처럼 열반적정의 참모습을 시현하신 것입니다. 스님의 지혜가 그윽하고 맑고 부드러운 법향이 인천(人川)에 가득합니다. 오늘 영결식에 모인 사부대중은 스님을 애도하며 그 크신 공덕을 사모하오니 구품연대(九品蓮臺)의 무상법락(無上法樂)을 누리소서”라고 추모의 깊은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서 국향사 회주 혜운 스님이 조사를 하였고, 문도를 대표해 일석 스님과 동제 스님의 헌화와 분향이 있었고, 신도들과 내빈들도 분향을 하며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이어서 양지공원 화장장으로 법구를 운구하였고, 스님의 유골은 화장 후 천룡사 도량에 봉안했다가 1년 후 부도를 세워 안장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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