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생담과 현생담이 섬세하게 조각된 불교미술의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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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생담과 현생담이 섬세하게 조각된 불교미술의 걸작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3.0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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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과 인도 전통의 조화를 이룩한 최고의 불탑성지 - 바르후트
이정하(여행작가)
바르후투 스투파가 서 있던 자리
바르후투 스투파가 서 있던 자리

슝가왕조와 불교
바르후트는 북인도의 바켈칸드에 위치하고 있다. 알라하바드 남서쪽 약 100km지점이다. 바르후트 유적을 우리가 의미깊게 바라보는 이유는 이곳의 탑이 가장 이른 시기의 불교미술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바르후트 유적은 1873년에 커닝햄(A. Cunningham)이 발견하였다. 커닝햄이 발굴 후 1879년에 간행한 발굴보고서에 의하면 원형의 탑 주변은 조각이 된 난순이 둘러싸고 있으며, 산치 대탑에서 보듯이 동서남북 네 면에 탑문이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바르후트 탑의 난순과 동쪽 탑문은 현재 꼴까타의 인도박물관 바르후트 실에 고스란히 이건(移建)되어 있다.

바르후투 스투파 개념도
바르후투 스투파 개념도

 

불교를 정책적으로 비호했던 마우리아왕조는 인도 전역을 통일했던 아소카왕이 죽자 급격한 쇠락의 길로 들어선다. 기원전 184년경 제10대왕이었던 브리하드라타(Brihadratha)는 자신의 부하이자 총사령관인 푸시아미트라 슝가(Pushyamitra shunga)로부터 군 열병식 도중에 살해되었다. 이로인해 마우리아시대는 끝나고 슝가제국이 기원전 185년부터 시작하게 된다. 이로 인해 인도북부지역은 슝가로, 데칸고원지역은 안드라왕조라고 부르는 사타바하나로, 칼랑가지역은 체디왕국, 북서부 지역은 그리스 침략자들의 지배권으로 분할되었다. 푸시아미트라는 브라만교도여서 그의 통치기에 불교가 박해를 받았다는 설도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불교가 여러지역에서 번성하였다. 동시에 아소카왕 시대 이전에 금지되었던 힌두교의 전통과 사상은 다시 부활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미술이 상당히 발전하게 되고, 슝가왕조의 지원으로 불교가 번성하기도 하였다. 

전생담과 현생담 등 평민들이 좋아하는 설화를 새긴 부조들
전생담과 현생담 등 평민들이 좋아하는 설화를 새긴 부조들

 

그러나 비디샤지방을 중심으로 왕국을 건립했던 슝가왕조는 주변국들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했고, 한때 아요디아, 비디샤, 잘란다라, 샤킬라에 이르던 영토가 강력한 적들이 지속적으로 침공하여 세력이 약화되어갔다. 푸시아미트라가 죽은 후에 어렵게 왕조를 이어가던 슝가왕조는 약 1세기 후에 데바부티(Devabhuti)가 그의 신하인 바수데바(Vasudeva)에게 시해되어 종말을 맞게 되었다. 그 이후 기원전 75년부터 칸바왕조가 열렸으나 불안정한 권력으로 북인도의 중심만 지키는 소국으로 축소되었고, 그 외 지역은 슝가왕조의 잔존세력이 군웅할거하다가 기원전 28년에 데칸지역의 사타바하나왕국에 의해 멸망당했다. 

바르후투 스투파
커닝햄이 발견 당시 바르후투 스투파는 윗부분인 복발은 물론이고 불탑 자체는 이미 거의 망실된 상태로 돌담으로 된 난간과 동쪽문, 그리고 기둥의 일부만이 잔존한 상태였다. 거의 훼손된 상태였지만, 커닝햄은 면밀히 조사를 하여 전반적인 규모를 파악하였다. 이 스투파는 높이가 약 22m이고 둘러싼 난간 높이는 2.7m, 그리고 동서남북에 탐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기단의 직경은 21m이고 전장은 85m로 추정되었다. 

꼴까타 인도박물관으로 이건되어 보존된 바르후투 수투파의 기둥과 동문
꼴까타 인도박물관으로 이건되어 보존된 바르후투 수투파의 기둥과 동문

 

문기둥에 인접한 우주(隅柱)는 민중들에게 사랑받았던 약샤(야차)와 야샤녀 그리고 용이 조각되어 스투파 입구를 지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각의 그림으로는 수소와 연꽃문, 주두를 잇는 팔각기둥에 정판이 있으며, 사자형상이 여기에 새겨져 있다. 목조형식의 사암에 새겨진 이 조각들은 코끼리와 원숭이 등등 아소카시대부터 흔히 제작되던 것들이다. 
스투파는 ‘가장 높은 자가 돌아가신 곳’이라는 의미다. 당시 서민들은 석가모니의 열반을 기리며 그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는 중심지로 탑신앙이 발달하였다. 바르후투 스투파는 궁정문화가 인도 토착민의 문화와 조화를 이루며 반영된 귀중한 불교미술유산이다. 
마우리아왕조의 미술양식인 주두기둥 팔각기둥에는 연꽃문양과 두 마리의 사자가 웅크리고 있는 모양은 서방에서 유입된 것이다. 그러나 약샤(야차)와 약샤녀를 새긴 것이나 나무신(보리수숭배) 등의 부조는 초기불교의 신앙형태로서 토속적인 미술양식으로 자생적이라고 볼 수 있다. 바르후투의 스투파는 사암을 재료로 하여 만든 울타리에 연꽃과 약샤의 모습들이 부조 형태로 묘사되어 있고, 울타리를 마감하는 위쪽 테두리에는 코끼리, 말 등이 새겨져 장식미와 안정감을 더해준다. 또 그 연결고리로는 목조에 장부를 끼워 넣는 형식으로 마감하여 고급스러움을 돋보이게 하였다. 그리고 울타리나 기둥에 새겨진 조각들은 지극히 인도적이면서 인도 외의 지역에서도 영향을 받은 조형들이 다양하게 조성된 것으로 보아 서역풍의 선진적이고 사실적인 수법이 인도인들의 일반층에서 이어져 오던 전통적인 양식과 결합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인도의 약샤(야차)와 약샤녀 부조들(발굴조사 당시의 사진)
전통적인 인도의 약샤(야차)와 약샤녀 부조들(발굴조사 당시의 사진)

 

특히 바르후트 탑 난순과 탑문의 조각은 둥근 원형 안에 대략 16개 정도의 불전(佛傳)과 32개 정도의 본생담(本生譚)을 표현한 점이 눈에 띈다. 산치 대탑의 탑문과 간다라 지방에서는 주로 사각형 틀을 이용하여 불전과 본생담을 나타낸 점과는 구별되는, 인도 고대의 불교미술 표현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각 장면이 어떤 내용을 표현하였는지를 기록한 명문을 남겨 고대 인도의 불교 조각을 이해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더불어 기원전 2세기에 조성된 바르후트 탑의 난순과 탑문에는 상징으로 부처님을 대신 표현한 무불상시대(無佛像時代)의 특징이 고스란히 계승되고 있다.
바르후투 스투파의 기둥이나 울타리에는 인도 재래문자인 브라미(Brahmi)문자로 기록된 다수의 명문들이 조각되어 있다. 동문에는 페르시아 계통의 카로시티 문자도 새겨져 있다. 이는 스투파의 대공사에 서북인도 출신의 건축가와 조각가 들 이외에 페르시아 출신의 조각가도 함께 작업을 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동문 좌주 내측에는 보시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슝가왕조시대 지방왕족인 다나부티라는 사람이 봉헌했다는 기록이 있다. 

바르후투 스투파 건립의 최대 후원자인 다나부티왕. 기원전 150-75년경 통치자로 추정된다.
바르후투 스투파 건립의 최대 후원자인 다나부티왕. 기원전 150-75년경 통치자로 추정된다.

 

무불상(無佛像)의 전형
바르후투의 조형중에 중요한 점은 부조로 만들어진 본생도와 불전도이다. 본생도는 석가모니가 전생에서 왕, 대신, 장사꾼, 훈장, 장자, 평민, 귀족, 화공, 도둑, 코끼리, 사슴, 말, 원숭이, 사자, 공작, 물고기 등의 생을 누리며 갖가지 선행공덕한 이야기 547종을 모았고, 기원전 3세기경부터는 당시의 민간설화를 모아 여기에 불교적 교훈을 더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 본생도이다. 
당시 부조는 봉헌자들이나 조각가들은 인도의 고전이나 우화 등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하는 것을 선호하였다. 여기에 등장하는 코끼리나 사슴, 말, 원숭이, 사자, 공작 등은 인도인들처럼 순수하거나 온순하다고 여겼다. 이런 배경을 가진 것이 인도의 전통예술의 종교적 전형인 것이다. 이러한 본생도들은 민간전통예술의 성향을 띠고 있으며, 하나의 화면 안에 연결적으로 묘사하여 다소 복잡한 밀도로 표현되기도 한다. 본생담 중에는 마야부인의 태몽꿈, 세존의 강하, 루루사슴왕이야기 등이 눈에 띤다. 
그리고 이시기에는 부처를 직접 그리기보다는 보리수, 발자국, 일산, 불단, 연꽃, 불탑 등 상징적으로 묘사했는데, 이는 고대 불교가 부처님이 열반하여 윤회를 벗어났으므로 상징적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바르후투의 스투파는 그 규모도 대단하지만, 미술적 가치도 대단히 높다. 이 스투파를 통해 인도 전통문화의 조형미가 불교를 만나 섬세하게 꽃피운 아름다운 불교미술의 완성을 이루고 있다.

무불상시대인 초기불교의 신앙으로서 상징(불단, 보리수, 사다리)을 새긴 것이 눈에 띤다.
무불상시대인 초기불교의 신앙으로서 상징(불단, 보리수, 사다리)을 새긴 것이 눈에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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