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의 신행 - 두려움과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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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나의 신행 - 두려움과 명상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3.0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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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행(재가불자)
부처님의 말씀 _ 그림 : 김대규 화백.  우리 민족은 국난극복에 처했을때 팔만대장경을 간행하여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한데 모았다. 조각 하나하나의 정성에 간절함이 더해져 한반도 금수강산은 여전히 아름다운 세계의 문화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코로나-19의 전파력이 강하다지만, 부처님의 깊고 아름다운 법의 이치를 공부하고 염송하면서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를 기원해 본다.
부처님의 말씀 _ 그림 : 김대규 화백. 우리 민족은 국난극복에 처했을때 팔만대장경을 간행하여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한데 모았다. 조각 하나하나의 정성에 간절함이 더해져 한반도 금수강산은 여전히 아름다운 세계의 문화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코로나-19의 전파력이 강하다지만, 부처님의 깊고 아름다운 법의 이치를 공부하고 염송하면서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를 기원해 본다.

 

괴롭다. 아니 괴롭다는 의식이 있다. 괴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괴로움이 어디서 왔다고 생각할까? 어떤이는 ‘내탓’이라 하기도 하고, 또 어떤이는 ‘네탓’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내탓고 네탓도 아니다. 그렇다면 괴로움은 어디서 왔을까? 세존께서는 괴로움이 접촉을 연유로 해서 생겨난다고 가르쳤다. 
괴로움은 접촉을 연유로 해서 발생한다. 내탓도 아니고 네탓도 아니다. 당연히 신의 탓도 아니다. 모든 괴로움은 여섯 감역에서 발생된다. 눈으로 대상을 보았을 때 시각의식이 생겨난다. 이를 삼사화합촉이라고 한다. 이렇게 접촉이 발생될 때 세상이 발생한다고 했다. 그런데 세상의 발생은 다름아닌 괴로움의 발생이라고 했다.
코로나로부터 안전하려면 사람들과 접촉하지 말라고 한다. 어쩔 수없이 접촉했다면 손을 씻어야 한다. 손씻기 하나만 잘 해도 두려울 것이 없다.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눈과 귀 등 감각기관을 잘 단속해야 한다. 두려움과 공포가 일어났을 때 접촉을 끊어 버리면 된다. 접촉하지 않으면 더이상 두려움이나 공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접촉을 끊는 좋은 길은 명상을 하는 것이다. 죽음의 순간에 명상을 하면 어떻게 될까? 죽음의 공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죽는다고 해도 문제가 없다. 
마지막 죽음의 의식이 다음 생을 결정한다고 했다. 죽을 때 두려움과 공포의 마음이 마지막 죽음의 마음이라면, 그 마음을 대상으로 결생식이 일어날 것이다. 두려움과 공포의 마음으로 인해 그런 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의 순간에 지극히 평온한 마음을 가지면 어떻게 될까? 그 평온한 마음을 대상으로 재생연결의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에 선처에 나게 될 것이다. 
죽음의 순간에 명상을 하면 두 가지를 성취할 수 있다고 한다. 아라한이 됨과 동시에 완전한 열반에 드는 것이다. 이렇게 한번에 두 가지를 성취하는 것은 ‘사마시시(samasisi: 首等)’라고 한다. 
호랑이한테 먹히는 순간에도 집중하면 아라한과 완전한 열반이라는 두 가지를 성취할 수 있다. 경전에서는 “그는 앞도 뒤도 아니고 동시에 번뇌의 종식과 목숨의 종식이 이루어진다.”(A7.16)라고 했다. 질병에 걸린 자가 동시에 두 가지를 성취하는 것에 대해서는 로가사마시신(rogasamasīsīn)이라고 하는데, ‘질병의 수등자’라고 번역한다.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결코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을 무서워하는 것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한번도 죽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이 생에서 한번 죽어 본 사람은 결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을 것이다. 크게 죽어 본 자만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명상을 하면 큰 죽음을 경험할 수 있다. 두렵고 어려울 때일수록 코로나를 명상으로 극복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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