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의병운동의 정기가 서려있는‘표선면 영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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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의병운동의 정기가 서려있는‘표선면 영천사’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3.1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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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승필 거사의 제주사찰사경

영천사

한국불교태고종 제주교구 영천사는 1934년 2월 23일에 창건한 사찰로 표선면 서북부 중산간 마을인 토산리의 가세오름과 토산오름이 우뚝 솟은 곳에 위치해 있다. 토산오름 남쪽에는 고려시대 사찰 터인 속칭 ‘절래왓 가름’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노단샘이 흐르고 있다. 이 샘의 수량은 매우 풍부하여 토산리뿐만 아니라 인근마을인 세화·가시·고수·여은네 등의 마을에도 식수를 제공할 정도였다고 한다.
영천사의 시초는 봉주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봉주사는 김석윤 승려가 월정사를 창건한 후 뒤이어 세운 사찰로써 1934년 2월 23일에 4칸 규모의 초가 대웅전과 3칸의 초가 객실을 건립하여 창건했다. 1936년 10월 5일에 위봉사 표선포교소로 등록했으며, 1943년 6월 8일에는 포교규칙 제 9조에 의하여 백양사포교소로 변경되었다. 1942년 6월 9일부터 강을심씨가 봉주사를 인수받아 운영해오다가, 1948년 제주4·3사건 당시 봉주사도 12월 12일에 마을 주민과 함께 토산 2리로 소개되면서 사찰이 철거되었다. 소개 당시 봉주사는 토벌대에 의해 법당과 객실 등 건물 일체가 철거되었다. 그리고 불상과 탱화는 소개 전 인근 대나무 밭에 움막을 만들어 그곳에 숨겨두었으나 대부분 심하게 훼손되어 현재 전해져 오는 것은 없다.
봉주사가 재건되기 시작한 것은 다음 해인 1949년 5월 18일, 4간의 법당과 초가 객실이 새로 건축되었으며 그후 1966년에 재건추진위원회가 발족되면서 사명을 봉림사로 개명하였다. 현재의 영천사로 사명이 다시 개명된 것은 1967년이며, 1969년에 이어 두 차례의 대웅전 중축불사를 진행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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