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10주기 - 다시 읽는 맑은 글“적은 것으로 만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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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10주기 - 다시 읽는 맑은 글“적은 것으로 만족하라”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3.11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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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10주기를 맞아 스님의 향기를 담은 글을 소개한다. 법정스님은 2010년 3월11일 입적하셨다. 그후 10년동안 우리 사회는 여전히 법정스님의 글과 말을 잊지 못한다. 이는 그만큼 우리가 여전히 오염된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법정스님의 10주기를 맞아 스님의 향기를 담은 글을 소개한다. 법정스님은 2010년 3월11일 입적하셨다. 그후 10년동안 우리 사회는 여전히 법정스님의 글과 말을 잊지 못한다. 이는 그만큼 우리가 여전히 오염된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이익을 구함이 많기 때문에 고뇌도 많다. 그러나 욕심이 적은 사람은 구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근심 걱정도 적다. 또 욕심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마음이 편안해서 아무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고, 하는 일에 여유가 있어 각박하지 않다. 그래서 마침내는 고뇌가 말끔히 사라진 해탈의 경지에 들게 되니 이것을 가리켜 소욕(少慾)이라 한다.
모든 고뇌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먼저 만족할 줄을 알아야 한다. 넉넉함을 아는 것은 부유하고 즐거우며 안온하다. 그런 사람은 비록 맨땅 위에 누워 있을지라도 편안하고 즐겁다.
그러나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설사 천상에 있을지라도 그 뜻에 흡족하지 않을 것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한 것 같지만 사실은 가난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한 것 같지만 사실은 부유하다. 이것을 가리켜 지족(知足)이라 한다. <유교경(遺敎經)> 
우리에게 구족계(비구계)를 설해주신 계사 자운 스님으로부터 언젠가 편지의 화답을 받았는데, 그 내용은 단 여덟 자로 되어 있었다. 
‘少病少惱 少欲知足’ 慈雲
이것이 편지의 전부였다. 풀이하면 조금만 앓고 조금만 괴로워하며 적은 것으로 넉넉할 줄 알라는 뜻.
원래 수행자들의 편지는 간단명료하다. 할 말만을 할뿐 공연한 인사치레는 도리어 군더더기요 결례가 되기 쉽다. 
수행자의 생활 자체가 단순하고 담박하기 때문에 주고받는 사연 또한 담박할 수밖에 없다.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적지 않은 편지를 주고받아 보았지만, 그토록 당신의 성품처럼 듬직하고 진실하게 또박또박 박아 쓴 만년필 글씨와 함께 그때 받은 그 편지의 인상이 하도 진했기 때문에 20년도 더 지난 오늘까지 내 기억에 생생하게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디를 가나 물질의 홍수에 떠밀리고 있다. 일반 가정이나 절간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 물건이 너무 흔하기 때문에 아낄 줄을 모르고 고마워할 줄도 모른다. 옛날 같으면 좀 깁거나 때우거나 고치면 말짱할 물건도 아낌없이 내다 버린다. 물건만 버리는 게 아니라 아끼고 소중하게 아는 그 정신까지도 함께 버리고 있는 것이다. 

옛 선사들의 어록을 보면, 가사만 한 벌 얻어 걸치고도 고마워 어쩔줄 몰라 하며 법상에 올라가 그 공덕을 찬탄하면서 법문까지 하였는데, 오늘에는 그런 고마움을 모르고 있는 것같다. 
또 예전에는 시주의 물건에 대해서 어떤 절에서나 주의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그런 말을 그 어디서도 듣기가 어렵다. 그만큼 오늘 우리들의 의식이 무디어지고 잠들어 있는 것이다.
너무 흔하니까 귀한 줄 모르지만, 아무리 물건이 흔한 세상일지라도 거기에 대응하는 마음가짐이 보다 소중하게 여겨져야 할 것이다. 
가령 화장지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는 그 사람의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이 내 것이 됐건 남의 것이 됐건 필요한 만큼만 써야 할 텐데, 어떤 사람들은 코를 좀 풀면서 뭉텅이로 뜯어내 쓰고, 뒤 좀 닦으려면서 둘둘 말아 가지고 필요 이상으로 낭비를 한다.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복 감할 짓을 하는구나 하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토록 헤프고 사치스러워졌는지 한번 반성해볼 일이 아닌가 싶다.

오늘 우리들은 또 남보다 많이 가지고 차지하려고만 하지 그런 과욕의 마음을 스스로 억제하거나 다스리려고 하지 않는다. 예전 사람들은, 즉 과거의 우리들은 조그만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귀하게 여기면서 넉넉한 줄을 알았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들은 많은 것을 차지하고서도 고마워할 줄도 귀하게 여길 줄도, 또한 넉넉한 줄도 모른다. 그저 늘 모자라 목이 마를 뿐이다.

 

과거의 우리들은 적게 가지고도 지혜롭고 덕스러웠는데, 현재의 우리들은 많이 가지고도 지혜롭지도 덕스럽지도 못하다. 지혜와 덕이란 우연히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닦고 쌓아야 하는 것인데, 그럴 줄 모르기 때문에 인간의 영역이 날이 갈수록 시들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구산 방장 스님께서는 법문 중에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이란 말씀을 자주 쓰셨다. 배고프고 추운 데서도 닦을 마음이 우러난다는 뜻. 옳은 말씀이다. 아쉬운 것 없이 너무 풍족하면 거기에 휩싸여 배부른 돼지처럼 무디어지게 마련이다. 마음을 닦는 일은 간절한 정신으로 깨어 있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좀 모자라고 아쉬운 것도 있어야 그것을 갖고자 하는 기대와 소망도 품게 되는 것이지, 그런 여백이 없으면 기대와 소망도 지닐 수 없다. 가령 어떤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이 다음에 형편이 풀리면 저걸 우리 집에 들여놓으리라, 이런 생각만으로도 표정 없이 굳어지기 쉬운 일상에 어떤 탄력을 가져올 수 있다. 할 수 있는 한 그 기간을 뒤로뒤로 미루는 것이 기대에 부풀어 보다 오래 행복해질 것이다. 그러나 소용되는 것을 단박 구해오면 그런 기대와 소망과 소중한 생각 또한 지닐 수 없다. 막상 구해다 가가이 두게 되면 며칠은 좋고 편리하고 흐믓하지만 이내 시들해져서 ‘관리인’ 노릇을 해줘야 한다.

길상사 경내에 있는 관세음보살상. 성모마리아를 닮았다. 종교화합 차원에서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 선생이 2000년 4월 조성했다.
길상사 경내에 있는 관세음보살상. 성모마리아를 닮았다. 종교화합 차원에서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 선생이 2000년 4월 조성했다.

그러니 좀 아쉽더라도 덜 가지고 사는 사람이 보다 살 줄 아는 사람이다. 요즘처럼 날마다 새로운 상품이 쏟아져 나와 우리들의 눈을 어지럽히고 있는 세상에서 제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월부의 노예가 되어야 하고, 본의 아니게 물건의 ‘관리인’노릇을 해야 한다. 아무개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처지와 분수가 다른 나조차 그런 것을 가지려는 것은 허영이요 사치다.

적게 가질수록 마음이 덜 흩어진다. 그리고 적게 가질수록 귀하고 소중한 줄을 알게 된다. 귀하고 소중한 줄 모르는 사람은 알맹이 없는 빈 꺼플만의 인생을 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사람의 욕망이란 한이 없다. 분수 밖의 욕망이 우리를 병들게 한다. 물질만이 아니고 어떤 명예나 지위도 분수를 지나치면 자기 스스로가 불편하고 세상의 비웃음을 사게 마련이다.
경전의 말씀처럼, 자기 분수에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부유한 것처럼 보이지만 안으로는 가난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남 보기에 가난한 듯하지만 실상은 어디에도 걸릴 게 없는 부유한 사람인 것이다. 
그러니 적은 것으로 넉넉할 줄 할고 뭣보다도 살 줄을 알아야 한다. 어디에도 거리낌 없이 자신의 천진스런 모습대로 마음 편히 홀가분하게 살 줄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답게 살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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