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 텅빈 도시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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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 텅빈 도시거리에서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3.18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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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고정우(교사)

평소에 무심코 사람들과 만나고 함께 어울리는 일이 자발적(?)으로 금지되었다. 함께 어울린다는 것, 사람들 간에 정을 나누는 것, 그것이 단지 ‘접촉’이라는 용어로 평가절하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전염자로서의 그저 한 개체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참으로 재난영화에서나 보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길거리에 자동차가 다니지 않고, 백화점과 가게 그리고 식당 등에 빼곡하게 모여 있던 사람들은 SF영화처럼 외계인이 모두 비행접시로 태워 우주 어딘론가 납치해간듯하다. 서점에서는 알베르카뮈의 <페스트>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카뮈는 <페스트>에서 프랑스 오랑 지방에 대해 질병을 사용하여 묘사한다. 도시는 ‘아주 흥미진진하지는 못한 곳’으로, 활기차고 분주해 보이는 일상도 습관이 되면 만사가 순조롭다. 대도시에 사는 개인들은 급속도로 바뀌는 외적·내적 자극들에 의한 심리적 영향으로 신경과민을 겪는다. 도시의 삶은 급속도로 변화하는 외부 환경의 흐름과 모순이 삶을 위협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이러한 외부 상황에 대해 제대로 반응할 능력이 없어지면서 무감각해지고, 이 무감각은 도리어 개인들을 방어하는 수단이 된다. 그래서 이제 삶에 적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은 바로 무감각하게 사는 것이다.
시민들은 권태에 절어 있었지만 또 많은 돈을 벌고 싶었다. 도시는 거센 기후와 전쟁터같은 사업 거래, 그리고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황혼과 쾌락 때문에 그들은 건강해야 했다. 이와 꼭 같은 정서가 오늘날의 도시를 지배한다. 빠르고 분주하게 돌아가는 현대 도시는 조금만 뒤쳐지면 그 속도로부터 밀리면서 외톨이가 된다. 병을 앓는다는 것은 삶의 속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도시는 건강한 몸만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쥐 때문에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이 죽어 가는 것은 ‘말이 안 나게 조용히’ 처리해야 할 문제다. 그것은 병 자체보다 사람들에게 불안과 동요를 유발해서 도시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카뮈의 <페스트>에서 의사 ‘리유’는 진찰실을 나서다가 죽어 있는 쥐를 발견한다. 재미있는 것은 건물 수위의 반응이다. 이 건물에는 절대 쥐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떠한 의심이나 의문도 배제되는 ‘단호함’이다. 다음날 피투성이가 된 쥐 세 마리를 본 수위는 누군가 쥐덫으로 쥐를 잡은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아예 쥐덫을 놓은 ‘범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쥐의 출현은 다른 누군가의 탓, 즉 책임질 누군가를 먼저 지명해야 할 일이다. 따라서 소홀함을 이유로 자신이 지명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수위에게는 쥐가 나타나거나 죽어 뒹굴고 있을 가능성이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러나 리유는 왕진을 돌면서 죽은 쥐들을 목격한다. 병원으로 돌아온 리유가 수위에게 또 쥐를 보았느냐고 묻자 수위는 “제가 지키고 있단 말씀예요. 그래서 그 나쁜 놈들이 감히 가져오질 못하는 겁니다”라고 강하게 부정한다.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를 어딘가 외부의 책임으로 확정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인류라는 도시의 한가족이 되어버렸다. 이번 사태가 언제 종식될지 알 수 없다. 바이러스는 전염성 질병일 뿐이다. 도시의 공포로 텅 빈 거리를 보면서 연기론의 이치를 망각한채 다른 이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이기심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것이 이번 바이러스로부터 배우는 교훈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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