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개 현무암 굴에 새겨진 거대한 조각화랑-칸헤리(Kanheri) 석굴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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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개 현무암 굴에 새겨진 거대한 조각화랑-칸헤리(Kanheri) 석굴사원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3.18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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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하(여행작가)
▲차이탸(제3굴, 예배당)석굴 입구
▲차이탸(제3굴, 예배당)석굴 입구

 

동굴은 본래 은자(隱者)나 핍박을 피해 도피한 수행자들이 은거하는 공간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되었지만, 점차 인근 해상도시의 부를 배경으로 성장한 곳이 칸헤리석굴사원이다. 뭄바이 마하리쉬트라 센제이간디국립공원에 위치한 칸헤리(Kanheri)석굴사원군(群)은 바로 인근 해상도시를 배경으로 부를 축적한 상인들의 후원을 얻을 수 있는 이상적인 사원이 되었을 것이다. 한때 번성했던 사원의 주인공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들의 구도와 안녕을 기원했던 열망은 아련하게 현무암 언덕에 거대한 염원으로 남아있는데, 지금은 힌두교의 강력한 민중적 흡입력에 불교는 인도 땅에서 빛을 잃은지 오래되었다. 

▲칸헤리석굴의 릴리프
▲칸헤리석굴의 릴리프

 

동아시아의 끝에서 구도의 길을 따라 방랑자의 모습으로 찾아나선 칸헤라는 마음 한켠의 쓸쓸함과 빛바랜 불상조각들을 보면서 무상함의 근저에 선 아릿함이 저민다. 그래, 모든 것은 무상함이니, 그들의 번성도 항상(恒常)할 수는 없는 법, 빛바랜 유적의 쓸쓸함도 붓다의 또다른 증거요 가르침일터.     
칸헤리 석굴은 서인도 최대의 석굴 불교사원으로 뭄바이 중심에서 북동쪽으로 40km 거리에 현무암 용암의 측면 약 150m~450m의 높이에 분포되어 있다. 2∼8세기에 조성된 109개의 석굴에는 불상을 비롯한 조각들이 많이 있으며, 특히 석가모니 입상과 불탑 등이 뛰어나다.
칸헤리(Kanheri)는 산스크리트어인 ‘Krishna-giri’ 에서 유래한 것으로 ‘검은색 언덕’이라는 뜻이다. 즉 오랜 시기 전에 화산활동으로 돌출된 거대한 현무암 지대에 조성된 것이다. 석굴사원은 센제이간디국립공원 정문에서는 6km, 보리발리(Borivali)역에서는 7km 떨어져 있다. 이곳을 보려면 자동차로 석굴입구까지 가거나 사파리에 참가할 수도 있다. 

▲동굴11; 울타리 모양의 중간 난간, 우산 부착물 및 부처님 부조가 새겨진 스투파
▲동굴11; 울타리 모양의 중간 난간, 우산 부착물 및 부처님 부조가 새겨진 스투파

 

인도에서는 기원전 1500년부터 은자들이나 수행자들이 동굴을 파서 기거하며 수도를 하는 전통이 있었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 데칸고원 방향으로 퍼진 초기의 불교도들도 자연스럽게 석굴에 그들의 거처와 수도처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혼자서 굴을 팠겠지만, 점차 두세명이 모이고, 점차 수십명에서 수백명의 수행집단으로 승가를 이루면서 거대한 석굴사원들이 조직적으로 조성하게 된다. 그러나 전문적이고 숙련된 돌을 파는 기술이 보급되기 이전에 초기의 불교 석굴사원들은 대개 뭄바이에서 300km 반경 내에 위치하는데, 이 동굴사원들은 기원전 1세기부터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도시의 지상건물을 본따서 만들었지만 차츰 독자적 양식이 개발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창조적이고 장엄한 불교의 석굴사원 시대가 열리게 된다.

동굴90에는 5m 너비의 릴리프와 만다라가 남아 있다. 아마도 가장 오래된 만다라 중 하나일 것이다. 여기에 11세기 페르시아 팔라비(Persian Pahlavi) 대본의 두 가지 비문이 있다.
동굴90에는 5m 너비의 릴리프와 만다라가 남아 있다. 아마도 가장 오래된 만다라 중 하나일 것이다. 여기에 11세기 페르시아 팔라비(Persian Pahlavi) 대본의 두 가지 비문이 있다.

 

칸헤리를 대표하는 석굴은 차이탸(예배당)굴로 인도 불교석굴 차이탸굴 중에서 4번째로 큰 것이다. 면적은 317㎥이며, 서기 180년 경에 조성된, 상좌부 불교와 대승불교가 함께 사용한 석굴이다. 굴 안에 있는 몇몇 조상(彫像)들은 5세기경 조성된 것이며, 높이 7m나 되는 부처님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이 거대한 부처님상은 건장하고 힘이 있으며, 시원하게 두 다리가 뻗어 있다. 감은 듯 열린 눈매는 이를 조각한 사람의 혜안(慧眼)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차이탸굴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산 위로 올라가면 옛날 항만도시 소팔라가 보인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이곳 계곡 구석구석에 산재한 109개의 석굴은 저마다 수많은 수행자가 거쳐 간 이야기들이 느껴진다. 3면에 승방(僧房)이 조성된 곳, 가운데 회장에 우물이 있거나 음식저장소가 있는 곳도 있다. 

동굴2 현관의 불상과 천신 릴리프. 불상 주변 좌불상들은 다양한 무드라를 하고 있다.
동굴2 현관의 불상과 천신 릴리프. 불상 주변 좌불상들은 다양한 무드라를 하고 있다.

 

이 석굴들은 건축적인 방법이 아니라 조각적인 기법으로 파서 만들어졌다. 석공들은 석굴이 들어설 절벽의 표면을 먼저 다듬은 후에 표면에 석굴의 정면과 입구 윤곽을 그리고, 석굴 천장이 될 부분에서부터 돌을 파낸다. 실내에 비계를 세울 필요도 없고, 이렇게 천장과 지붕이 완성되면 다른 부분으로 작업이 이어진다. 깨어진 돌은 입구를 통해 반출되며, 기둥과 스투파 부위는 남겨진다. 이렇게 마지막으로 기둥과 스투파가 완성되면 하나의 석굴이 마무리된다. 
이 석굴사원에는 각각의 승방마다 침대처럼 돌난간이 있고, 거대한 석조 기둥이 있는 넓은 방에는 스투파가 자리한다. 언덕 위에는 거대한 저수지에서 물을 모으는 운하와 물통을 포함한 고대 급수 유적도 남아 있다. 

동굴2 내부. 석굴에는 불필요한 목조건물에나 필요한  천정 서까래 흔적이 남아있다.
동굴2 내부. 석굴에는 불필요한 목조건물에나 필요한 천정 서까래 흔적이 남아있다.

 

초기에는 부파불교도들이 담박한 명상수행을 하거나 탑같은 조형물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이곳이 영구적인 수도원으로 조성되면서 점차 대승불교의 불상이 출현하고 벽에는 보살상과 다양한 문양들로 장식되었다. 
대부분의 동굴은 승방으로 사용되었고, 수행자들이 기거하면서 공부와 명상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가장 큰 동굴인 차이탸(chaitya)는 공동의 법회를 위한 넓은 방으로, 복잡한 불교 조각품과 옅은 색의 기둥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부처님을 예배하기 위헌 스투파가 조성되어 있다. 후에 만들어진 보살상은 관세음보살이다. 

수행자들의 소박한 돌난간 침대
수행자들의 소박한 돌난간 침대

 

이곳 석굴사원에는 100여개의 비문이 존재하는데, 소팔라(Sopara), 칼리안(Kalyan), 나식(Nasik), 파이탄(Paithan), 우자인(Ujjain) 같은 항구도시의 이름과 여러 무역집단의 이름들도 나타나고 있어 무역업자들이 이곳에서 안녕을 기원하고 승원을 후원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상단과 잘 결합된 이러한 불교 수도원 공동체는 이 석굴사원이 마우리아(Maurya)와 쿠샨(Kushan)왕조시기에 발달한 불교대학으로서의 역할이 컸음을 증명한다. 또 라쉬트라쿠타(Rashtrakuta)지역 통치자 아모가바르샤(Amoghavarsha)의 이름을 비롯해 서기 2~3세기 통치자들의 이름도 기록되어 있고, 여기서는 11세기 페르시아 팔라비(Persian Pahlavi) 대본의 두 가지 비문도 발견되어, 이곳을 페르시아인들이 기도처로 사용했는지, 혹은 상인이나 여행자들을 수용할 목적으로만 사용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동굴 4- 탑 상부 우산이 사라진 스투파
동굴 4- 탑 상부 우산이 사라진 스투파

 

주요 동굴에 대하여 
동굴1은 승방(Vihara)으로 입구는 바위에서 새겨진 두 개의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고, 미완성상태이다. 동굴2는 차이탸(예배장소)로 약 13.6㎥, 깊이 26,3m, 높이 12.9m이다. 중심부에 약 4.8m 높이의 스투파가 있고, 원래 나무 울타리와 우산도 조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 본당의 아치형 천장에는 나무로 뻗어있는 돌 서까래가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예배당 동굴 앞에는 깊이 약 2.2m, 폭 8.5m의 현관이 있으며, 불상은 손바닥이 위쪽에 있고 손가락이 아래쪽을 향하는 바라다무드라(varada-mudra)를 하고 있다. 또한 무드라가 다양한 작은 좌불상들도 조성되어 있다. 동굴3은 기도하는 곳으로 입구에 부처님상이 조성되어 있다. 원주 기둥과 돌로 된 5m높이의 스투파가 있다. 이 동굴은 칸헤리 석굴중 가장 크며 너비 13m, 깊이는 28m이다. 6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차이탸돔
차이탸돔

 

입구 현관은 7m높이의 불상 2기가 있다. 동굴11에는 울타리 모양의 중간 난간(vedika)과 우산이 부착되고 부처님 그림(dharmachakramudra)이 있는 스투파가 있다. 동굴34는 미완성으로 심하게 퇴색된 벽화의 스케치가 남아 있고, 동굴41은 11면관음보살(Avalokiteshvara)이 남아 있다. 동굴90에는 5m 너비의 릴리프와 만다라가 남아 있다. 아마도 가장 오래된 만다라 중 하나일 것이다. 여기에 11세기 페르시아 팔라비(Persian Pahlavi) 대본의 두 가지 비문이 있다. 
동굴군 인근 외딴 바위에는 석조와 벽돌로 만든 스투파들이 남아 있는데, 이는 입적한 승려나 당시 귀족들의 묘지로 여겨진다.

식당으로 사용한 공간
식당으로 사용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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