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워요? 괜찮아요, 그냥 떠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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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워요? 괜찮아요, 그냥 떠나 보내세요!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3.18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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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 박’의 명상 기행 - 인도로 요가 유학을 떠나다④

자유기고가인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지난 20년간 한인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 / 편집자 주

 

두 달 간의 요가 지도자 과정에서는 요가와 함께 명상을 수련한다
두 달 간의 요가 지도자 과정에서는 요가와 함께 명상을 수련한다

 

아름다운 스승들
학생들뿐 아니라 선생님들도 지금 떠올려보니 모두 참 아름다운 사람들이었고 그리워진다. 힌두교 사제이자 우리들에게 만트라를 가르쳤던 ‘만딥’은 아름답고 맑은 목소리로 산스크리트어 만트라를 가르쳐주었다. 내게 만트라 수업 시간은 그나마 좀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수업이 시작되면 눈을 감고 ‘만딥’이 하는 챈팅을 듣는데, 가만히 듣고 있으면 눈물이나곤 했다. 만트라를 배울 때엔 ‘만딥’이 한 줄을 챈팅하고 우리가 한 줄씩 따라하는 식이다. 다른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들의 인도식 영어를 이해하느라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이 시간만큼은 어차피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산스크리트어여서 마음을 내려놓고 영혼이 노래하도록 허락한 시간이었다.
‘만딥’은 베다 점성술에도 능통했다. 그는 원하는 학생들에게는 따로 점을 봐주기도 했는데 그를 만나고 온 학생들은 하나같이 “너무 잘 맞는다.”며 감탄했다. 나는 이미 나의 운명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베다 점성술에서는 과연 어떤 말을 하나 궁금해 그를 찾아갔다. 그는 이제껏 나의 삶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이제 힘든 시간이 모두 지나갔음을, 나는 영적 수행을 해야 하는 존재임을, 이제 많은 이들에게 깨달음과 가르침을 펼치게 될 것임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는 점성술에 따라 각자에게 부족한 에너지를 보충하는 보석을 추천해주기도 했는데 나의 경우는 화성으로부터의 에너지가 불균형이라면서 붉은 색 산호를 권했다. 워낙 보석에는 별 관심이 없는 나였지만 특히 산호는, 누가 돈을 주면서 가지라고 해도 거절할 만큼 싫어했던 보석이다. 달의 움직임이 파도의 변화를 가져오고 “옴” 챈팅 하나가 에너지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던 나는 이런 말을 들은 이상, 그냥 나 몰라라, 할 수가 없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콩알만한 크기의 산호 반지를 구입해 오른손 넷째 손가락에 끼웠다. 앞으로 내 삶이 산호 반지로 인해 어떻게 더 달라질지, 지켜볼 예정이다.
요가 철학 시간에는 요가의 경전이라 불리는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를 배웠다.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진 이 책은 요가 수행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마디를 얻는지에 대해 정제된 언어로 서술하고 있다. 처음에 우리를 가르치던 철학 선생님은 자그마한 체구에 얼굴이 유난히 검고 행색이 남루한 노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배운 방식으로, 마치 서당에서 “하늘천, 따 지”를 소리내어 읽으며 천자문을 떼는 방식으로 <요가 수트라>를 가르쳤다. 산스크리트어 수트라를 읽은 후 5번씩 따라하라고 하니, 미국과 유럽 교육에 익숙한 학생들이 제대로 말을 들을 리 만무하다. 수업이 시작된지 둘째 주가 됐을 때엔 학생들이 하나 둘씩 수업에 빠지기 시작했다. “철학수업 안 들어왔더라?”라고 묻는 말에 몇몇 친구는 “차라리 혼자 방에서 수트라 책을 읽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라고 응답했다.
나는 아이들이 철학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에 마음이 아파왔다. 그가 유창한 영어로 현란한 철학을 논하지는 못하지만 뚝뚝 끊어지는 영어로, 말보다 침묵하는 순간이 더 많았던 그의 강의는 곱씹어보면 우러나오는 지혜가 많은, 차 맛 같은 강의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의 거북이 속도의 강의를 들어줄 만큼 한가하지도, 인내심이 깊지도 못했다. 강의 시작 3주째 들어섰을 때엔 18명 학생 중 10명 정도는 수업에 들어오질 않았고 나머지 학생들도 자리만 채우고 있다 뿐이지, 모바일 전화기를 만지작 거리며 딴짓을 하고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을 애정으로 바라보다 보면 그것도 병이 된다. 나는 그 남루한 행색의 선생님을 보며 가장 낮게 임하는 신성을 봤다. 그에게 하는 것이 예수에게 하는 것이요, 붓다에게 하는 것이라 생각됐다. 샴발라 카페에서 클래스메이트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날 밤, 나는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에게 그의 지혜를 풀어낼 만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미국 뉴포트비치에서 온 ‘제임스’라는 20대 청년은 내 어깨를 도닥이며 말했다.
“스텔라. 나도 같은 생각이야. 클래스메이트들 앞에서 너의 생각을 제안하는 게 어때?”
나는 이제껏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좋은게 좋은 것이라며 그냥 넘어가고, 나대면 눈에 날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가고, 나만 생각 있는 것 아니다란 생각에 그냥 넘어가고, 다 그렇게 사는 거라는 생각에 그냥 넘어가고… 하지만 다음 날 나는 용기를 냈다. 수업 시간 전, 나는 클래스메이트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며 이렇게 말했다.
“잠깐만 주의를 집중해주길. 우리 철학 선생님에게 그가 당연히 받아야 할 존중과 관심을 주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의 강의를 듣는다는 게 그리 쉽지는 않지만, 그에게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는 깊은 맛이 우러나는 지혜를 우리들에게 쏟아줄 거라고 생각해요. 그 역시 우리들과 똑같은 재질로 지어진 인간임을 기억했으면 해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우리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을 모든 조건을 갖춘 것, 아닐까요.”

 

나의 의견에 몇몇 학생들은 동조했다. 하지만 결국 그에 대한 불평은 디렉터인 마헤시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그는 철학 선생님을 새로 교체했다.
새롭게 철학을 가르치게 된 선생님은 ‘바누’라는 이름의 27세된 젊은이였다. 나이에서 오는 차별을 막기 위함인지 그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수염을 깎아보지 않은 사람처럼 긴 수염을 휘날리는 모습이었다. 그는 보라색 천을 휘휘 두른, 남성용 치마도 몇 차례 입고 왔다. 예전 선생님이 침묵하는 시간이 많아 한 시간 강의 중 30분도 채 말하지 않았던 것에 반해 ‘바누’는 쉬지 않고 강의를 했다. 직접 수행을 해봐도 이해하기 힘든 <요가 수트라>를 그는 여러 차례 반복하고 강조하며 가르쳤다. 그렇게 하면 돌 같은 단단한 머리에라도 수트라가 새겨지기라도 할 것처럼.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선생님은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난 인도인 선생님, ‘자야’였다. 그가 가르친 과목은 하타 요가 아사나. 아이들이 조용해질 때까지 침묵을 지킨 후에는 낮은 목소리로 “깊게 숨을 들이쉬고, 옴…”이라 말하고 “요게나 치타씨야 빠데나바참…”으로 이어지는 요가 시작 만트라를 챈팅했다. 만트라의 마지막 구절인 “하리 옴….”을 하고 나면 요가 스튜디오 공간은 알 수 없는 성스런 기운으로 가득차는 것 같았다. 그는 한 가지 동작을 5분이고 지속하게 했다. 그의 수업 시간의 요가는 움직이는 명상 수행이었다. “고통스러워요?”…… 이렇게 물은 후 그는 한참을 침묵한 후 한 마디를 더한다. “견디세요.(Bear it.)”

가슴을 열면 마음이 열린다
그는 서 있는 자세(타다사나), 얼굴을 아래로 한 개 자세(아도르 묵하 스와나싸나) 등, 이제껏 아무 생각 없이 했던 자세들이 얼마나 많은 곳에 주의 집중을 요하는가를 알려주었다. 의식이 완전히 몸에 머무는 체험,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체험이 거기에 있었다. 한 동작을 오래 하고 나면 고통 뒤에 찾아오는 즐거움도 있었다. 토요일이면 커다란 쿠션(Bolster)을 이용해 완전히 휴식하는 요가를 하곤 했는데, 나는 내 몸과 진정으로 연결되는 기쁨에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수업 시간에 그는 “가슴을 여세요.”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가슴을 열면 심장에 산소가 잘 공급되고 피가 잘 돌게 된다. 그리고 사람은 결국 몸에 따라 결정되는 존재인지라 가슴이 열리면 마음이 열리게 된다. 자세 하나만 바꾸어도 웬만한 질병은 다스려지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엉덩이를 여는 자세도 여럿 했다. 엉덩이를 여는 자세를 할때 많은 여성들이 꺼이꺼이 통곡을 한다. 우리들의 억압된 감정이 아랫배와 엉덩이 부위에 모여있다는 것이다. 나는 평소에 워낙 감정을 다 오픈하고 다녀서인지 엉덩이가 열리는 것으로 인해 감정이 폭발하는 체험은 하지 못했다. ‘멜로디’와 ‘노라’ 등 몇몇 여학생들이 힙 오프닝(Hip opening) 동작을 하며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하자 ‘자야’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괜찮아요. 그냥 떠나보내세요.(It’s ok to cry out. Just let it go.)”
요가는 삶이다. 명상으로 시작된 나의 구도는 요가를 만나 더욱 풍부해졌다. 붓다의 수행 방법에 더해 고대인들의 지혜의 꽃인 요가 수행을 겸한다면 마음도 몸도 더욱 편해지지 않을까. 현재에 머물기 위해 늘 하는 연습 가운데 하나가 몸의 감각, 몸의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다. 몸은 마음으로 향하는 출입구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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