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불교-만물의 근원‘만병(滿甁)’으로‘생명의 화생(化生)’을 명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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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불교-만물의 근원‘만병(滿甁)’으로‘생명의 화생(化生)’을 명상하자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3.2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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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하(인문학당 후마니타스빌리지 대표. 신화작가)
수정사 지장시왕도(1821) 신겸, 선준, 지장의 만병화생. 만물생성의 근원인 영기의 싹들이 솟아나오고, 동시에 연잎과 연꽃문양의 영기문이 보주를 발산하며 솟구치듯 표현됐다.

꽃과 씨앗과 보주(寶珠)의 관련성 
과거엔 환자를 방문할때면 보통 꽃다발을 사들고 갔다. 지금처럼 그릇이나 화병이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꽃병도 별도로 사가지고 가기도 했다. 환자에게 꽃이 좋지만은 않다는 이유로 한때 꽃을 들고 병문안 가는 것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꽃을 보며 생명의 환희와 꽃향기로 인해 기분전환을 기원하는 마음은 줄지 않았다. 

요즘 코로나19로 각종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화훼농가와 꽃집들이 곤경에 처해 있다. 좋은 일이나 슬픈 일에는 꽃이 우리와 함께 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일들이 중지된 상태다. 코로나19확진자에게 병문안을 할수도 없고, 더더구나 코로나19 사망자는 가족과의 마지막 순간도 함께 하지 못하고 곧바로 화장장으로 향한다. 꽃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은 세상은 죽은 사회이다. 일반 시민들도 집안에 갇혀서 사회적 거리두기로 정상생활이 어려워 답답해하고 있다.  

아테네의 한 무덤에서 발굴된 기원전 8세기경 만병부조(좌)와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 만병(우)
아테네의 한 무덤에서 발굴된 기원전 8세기경 만병부조(좌)와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 만병(우)

 

조선시대 입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양반가 여성들은 어떻게 그러한 상황을 견뎌냈을까? 자수나 서예, 독서와 그림으로 달랬을 성싶다. 특히 민가의 아녀자들은 민화를 많이 그려 그 답답함을 달랬다. 그 민화의 소재는 다양했지만, 특히 꽃을 많이 그렸다. 신사임당도 꽃과 곤충을 즐겨 그린 것을 보면 특히 꽃은 마음을 달래고 생명의 생동감을 통해 원기를 활성화시키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민화에는 수많은 꽃병이 등장하는데, 우리는 이를 만병(滿甁)이라고 부른다. 만병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만물을 생성시키는 우주의 대생명력이 가득 차 있는 병’이라는 뜻이다. 인류의 역사속에서도 지금 우리가 화병으로 알고 있는 조형물은 사실 대자연의 생명력을 담은 만병으로 인식했다. 단지 실내를 장식하는 인테리어가 아니라 철학적, 종교적 의미가 강했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근대화 과정에서 과거의 조형 정신을 상실하면서 만병의 상징적 의미를 잊은 채 단순한 꽃병으로 보았던 것이다. 

▲바르후트 불교사원의 락슈미화생만병
▲바르후트 불교사원의 락슈미화생만병

만병(滿甁)이란 몸체에 좁은 입구가 있는 병목이 달린 일종의 그릇이다. 병 모양뿐만 아니라 항아리나 접시, 사발이나 도자기도 만병으로 볼 수 있다. 고대 중국이나 그리스, 중아아시아의 대부분의 ‘화병(花甁)’이 바로 ‘만병’이다. 
그런데 이러한 만병의 의미가 어떻게 사라지고 단순한 꽃병으로 인지되고 있는 것일까? 이는 이른바 19세기이후 사실주의가 등장하면서 그릇이 지닌 영기화생적(靈氣化生的) 존재론을 망각한데 기인한다. 전통의 단절로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시각은 불교적 깨달음의 상징에 대하여 많은 부분이 단절되고 불교 조형예술의 구성원리와 상징구조를 상실했다. 

여의보주를 들고 있는 지장보살도. 14세기 고려시대탱화다. 발밑의 연꽃은 연화화생을 상징한다.
여의보주를 들고 있는 지장보살도. 14세기 고려시대탱화다. 발밑의 연꽃은 연화화생을 상징한다.

 

이렇듯 만병은 만물을 생성시키는 우주의 대생명력이 가득 차 있는 병으로 만물 생성의 근원인 물이 가득 차 있는 병을 뜻한다. 그런데 만병에 꽂힌 ‘꽃’은 아름다운 꽃과 잎, 꽃향기보다도 열매와 씨앗이 사실상의 주인공이다. 씨앗은 생명을 이어가는 생명의 근원으로 대개 원형의 모습을 띠고 있다. 그리고 그 씨앗들이 형이상학적인 존재로 승화한 것이 ‘보주(寶珠)’이다. 
인도 고대미술에서는 이러한 고차원의 보주 개념이 있어서 조형예술에 수없이 표현되었고, 후에는 이를 보석으로 가공해 표현했다. 장신구의 역사는 사실 우주적 생명의 근원을 착용한다는 의미다. 인도의 요가에서는 각자에게 맞는 보석을 몸에 지니게 해서 우주의 생명력을 공급받게 하기도 한다. 보주라는 용어는 인도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친타마니(Cintamani)’라는 산스크리트어를 한자로 번역할 때 ‘여의보주(如意寶珠)’라고 하여 일종의 부적처럼 신기한 보석으로 잘못 알려졌고, 이 보주라는 말 때문에 사람들은 보주의 본질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꽃의 씨방에서 시작되어 고차원으로 승화된 보주의 인식 속에는 우주에 가득 찬 대생명력이나 우주에 가득 찬 물이 압축되어 존재한다. 그런 형이상학적인 꽃을 담는 형이상학적인 그릇이 바로 만병이다. 그러므로 그릇에 담은 꽃은 현실에서 보는 꽃이 아니며, 결론적으로 영기꽃의 씨앗인 보주가 만병에서 무량하게 생긴다는 뜻이다. 만병에 꽂아놓은 꽃이나 나무들도 현실에서 볼 수 없는 무량한 보주가 생기는 형이상학적인 영화(靈花)나 영목(靈木)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만병이라면 병과 꽃과 나무를 함께 아우르는 개념이다. 만병에서 기둥이 나오거나 여래가 화생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고려수월관음도는 대표적인 연화화생(蓮花化生)의 의미를 담고 있다. 화생이란 어떤 과정을 거치지 않고 홀연히 생기는 것을 말한다. 흔히 여래나 보살이 연꽃 위에 앉아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연꽃에서 홀연히 탄생하여 우리 앞에 현신하는 극적이 장면이므로 여래가 연꽃에서 화생하는 것이다.

고려수월관음도. 14세기. 연꽃에서 화생한 모습과 옷의 보주문양이 무량함을 상징한다.
고려수월관음도. 14세기. 연꽃에서 화생한 모습과 옷의 보주문양이 무량함을 상징한다.

 

연꽃은 물을 상징하고 물은 만물의 근원이므로 불상이 연꽃에서 탄생한다는 것은 물에서 탄생하는 것을 뜻한다. 관음수월도에서 연꽃은 단순한 연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영기문을 부여하여 영기화(靈氣化)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영기화된 연꽃 밑에는 반드시 추상적 영기문이 있다. 그러므로 우주에 충만한 대생명력이 구상화하여 만물이 생겨난다고 하는 불교적 우주생성론을 파악하지 않으면 불화의 상징은 이해하기 어렵다.
인도에서는 고대시대부터 이 만병이 많이 등장하는데, 화병에는 띠 매듭이 등장한다. 기원전 2~1세기의 바르후트 스투파의 난순(欄楯)에 조각된 만병에도 항아리 중간 부분에 띠를 두르고 위아래 부분에 연꽃 모양 영기문을 표현했다. 
인도 쿠샨시대의 그림이나 조각에서도 연꽃에서 우주가 탄생하고 우주에 충만한 대생명력이 물이 가득한 만병에서 시작한다. 인도 산치대탑에도 만병부조가 등장하고, 바르후트 유적에도 만병에서 연꽃 문양과 영기문이 뻗혀 있는 부조가 발견된다. 바르후트의 락슈미화생만병은 뻗어가는 연꽃과 연잎, 활짝 핀 영기꽃에 큰 씨방과 씨방 안의 씨앗들이 보주가 되므로 보주가 씨방에서 무량하게 나오는 모습이다. 이 부조는 현실에서 보는 연꽃을 형상화했지만, 사실은 고차원으로 승화된 영기꽃이다. 그래서 이 씨방에서 무량한 보주가 생겨남을 의미한다.
이로 볼때 불교의 연잎 모양은 만물생성의 근원으로 해석이 될 수 있다. 연꽃잎 문양은 보주가 되어 불상조각에서 여래의 이마에 넣기도 하지만, 광배나 가사 문양으로도 삽입하여 영기를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연꽃잎이 연꽃의 씨방과 마찬가지로 만물생성의 근원을 상징하므로 연잎에서 무량한 보주가 화생하는 것이다.

수덕사 벽화에 그려진 만병
수덕사 벽화에 그려진 만병

 

불교에서의 상징세계는 이렇듯 깊은 뜻을 품고 있다. 코로나19로 갇힌 생활이 답답하다면 화병을 구해서 물을 채우고 꽃을 조형해보자. 뜻을 생각하면서 제주의 지천에 피는 야생들꽃을 한줌 꺾어오거나 화훼산업에 도움을 위해서 꽃 한다발을 사들고와 가득 채운 물에 넣어두고 우주의 근원을 생각하면서 보주에 대하여 묵상하다 보면 저절로 듀센미소와 함께 생명의 환희가 저절로 화생하게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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