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윌러(Kate Wheeler) “비굴하게 굽실거리지 않고 절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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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윌러(Kate Wheeler) “비굴하게 굽실거리지 않고 절하기”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3.2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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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여성불자 ⑥
주 현 _ 스토니부룩대학 불교학 교수

케이트 윌러는 트라이사이클(Tricycle) 잡지의 편집인이고 여성 불자이다. 윌러는 자신의 저서들과 더불어 많은 상을 받았고, 최근에는 미국에서 그란타(Granta) 잡지가 추천하는 최우수 소설가 스무 명 중 한 사람으로 지명받기도 하였다.
지난 18년 이상 불교 수행을 해 온 여성 불자 케이트는 여러 가지 회의(懷疑) 섞인 의문들을 던지며 이 글을 시작한다;
“왜 불자인가?,”“상당히 방어적이고, 남성 중심의 위계질서로 되어있는, 이런 고루한 종교 안에서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그녀는 불교의 논리가 이미 주어진 여성의 존재와 불균형의 상황을 업과 윤회의 개념들로 합리화한다고 지적한다.
케이트는 역사적 붓다가 부인과 아들을 버리고 떠난 사실부터 시작하여, 특히 티베트, 한국, 일본 등의 승가에서 비구니들을 포함한 여성에 대한 성적 비하와 또는, 극락정토에는 여성이 제외되어 있다는 불경의 내용, 등을 거론하며 불교 전반에 흐르는 여성 불평등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부처님 당시, 초기 승가 안에서 여성들은 승려가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을 비롯한, 비구니들의 위치를 비구승 밑으로 예속시켜 비구승 중심으로 만들어진 승가 계율들의 불공평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케이트는 이와 같이 불교 안에서 남성들의 편견이 모든 의미 있는 것들을 지배하고 있다면, 그들의 억압과 부패는 당연한 결과라고 외친다.
1977년 대학 졸업 후, 케이트는 캘리포니아에서 처음으로 위파사나 선 수련을 시도해보았고, 그 후 타일랜드와 미얀마에서 지내면서 선 수행을 계속하다가, 1988년도에는 마침내 미얀마, 랑군에 있는 한 사찰에서 비구니가 되었다. 버마에서 비구니로서, 동시에 여성으로서, 케이트가 경험한 것은 권위 의식으로 싸인 비구승들의 여성에 대한 “불평등” 그 자체였다. 그곳에서는 비구니도 오로지 여성일 뿐이었다. 그 후, 케이트는 티베트 금강승(Vajrayana) 전통을 만나게 되었고, 그 전통 안에서 수행을 시작하며 불법을 익혔다. 처음으로 들었던 마음의 본성에 대한 금강승의 가르침은 케이트를 매료시켰고, 미얀마에서의 남방불교(Theravada) 전통과는 여러 면에서 사뭇 다른 티베트 전통은 그녀를 기쁘게 수행으로 이끌었다. 케이트가 시도했던 십만 배의 오체투지(prostration) 절수행은 금강승 수행의 준비 작업으로서,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깨친 마음의 본질을 알게 하였고, 모든 장애를 순화시키는 수행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수행은 그녀가 불자이기를 원하는 충분한 이유였다, 지금까지도... 티베트 라마승들은 남방불교 스님들보다는 훨씬 호탕하고, 자유롭게 생활하였고, 티베트 전통에는 타라(Tara), 관인(Kuan Yin), 또는 예세 쏘걀(Yeshe Tsogyal) 등의 많은 여성 붓다들이 있어 그들에게도 동등하게 절하는 수행도 하였다. 비록 그 자신의 영향력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상황일지라도,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역시 남녀 승려들 간의 불공평한 성적 차별에 깊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티베트의 몇몇 훌륭한 라마승 지도자들도 그들의 전통 안의 불평등한 제도에 조금씩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그러나 케이트는 자신이 끊임없이 절을 하는 라마승들이나 여성 붓다 형상들을 관조하면서, 그들의 모든 노력과 변화가 성적 차별 속에서 일어나는 노력이고 변화이지,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넘어서, 인간 본래의 성품 자체를 깨달은 바탕에서 행해지는 근본적인 변화는 아니었고, 또한 그러한 변화는 쉽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케이트는 여성 평등성과 관련하여 2,500년 전 붓다가 언급한 내용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맺는다.
붓다를 키운 양모(養母)이고, 비구니 승단의 최고 자리에 있는 마하파자파티 고타미(Mahapajapati Gotami)가 “만일 부처님 승가 안에서 남성들과 여성들이 평등한 바탕에서 서로 서로의 위치를 뒤바꿀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라고 말한 것에 대하여, 경에 기록된 붓다의 답변은 “만일 옳지 못한 많은 스승이 여성들에게 평등한 위치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참 스승인 부처가 얼마만큼이나 이 여성들에게 평등한 위치를 허락할 수 있겠는가?” 라는 내용이었다. 케이트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붓다의 생각이 틀렸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우리 여성들은 붓다의 말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각주: 여성의 평등성에 대하여 케이트가 강조하고 있는 이 부분은, 여성의 존재에 대한 부처님의 생각은 어떻게 기록되어 있고, 불교 교단 안에서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에 이르는 사이 여성관에 대한 어떠한 변천이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상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이 부분에서 케이트가 인용한 고타미의 청원에 대한 붓다의 답변에 대해서만 부연 설명한다면, 우선, 부처님 당시의 인도 사회는 극도의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사회였기 때문에, 여성의 평등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고려한 붓다의 실용적인 답변이었다. 이 답변은 마치 붓다가 옳지 못한 많은 비구 수행승들의 압력으로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당시, 인도 사회의 고질적 카스트 계급 관행을 부정하고, 45년 펼친 붓다의 평소 언행이나 가르침의 내용으로 보아 여기 인용된 “붓다의 답변”은 붓다의 직설로 보기 어렵고, 불평등한 승가 계율의 형성과정은 붓다 이후 비구승 중심으로 오랜 세월 동안 가미되어 만들어진 사실을 상기하면서, 초기 경전 니카야에 나타난 여성에 대한 붓다의 부정적인 내용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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