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세기 조성된 성채도시- 크고 작은 불교승원 천년간 번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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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세기 조성된 성채도시- 크고 작은 불교승원 천년간 번성해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4.0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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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의 고대 불교도시유적- 마하스탄가르(mahasthangarh)를 찾아서①

이정하(여행작가)
▲마하스탄가르의 만리장성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성벽. 길이가 6km에 달한다.
▲마하스탄가르의 만리장성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성벽. 길이가 6km에 달한다.

부처님 오신날이 다가왔다. 우리나라는 음력 4월8일을 지키지만, 남방 불교권은 대개 음력 4월 15일에 웨삭(Veska)이라고 해서 부처님 탄생 성도 열반을 동시에 기리는 봉축행사를 갖는다. 
방글라데시는 그 옛날 매우 번성한 불교국가였지만, 지금은 이슬람을 국교로 삼고 있다. 전체 인구의 약 1%인 200만 명이 불교도인 방글라데시는 남방불교권과 같이 음력 4월 15일을 기준으로 웨삭(탄생 성도 열반) 봉축행사를 갖는다. 이를 ‘부도 푸니마’라고 하는데, ‘불교(부처님)보름’ 이라는 뜻이다. ‘푸니마(보름 날)’라고도 하지만 ‘자얀티’라고도 하는데 불교와 힌두교 전통에서 함께 쓰는 용어이다. 
방글라데시에 전해지는 불교 전승으로는 사실관계는 정확치 않지만 부처님이 재세시에 방글라데시를 방문했다고 한다. 그만큼 불교가 왕성했다는 의미로 생각하면 될듯하다. 고대시대에는 지금의 방글라데시 지역에 11개의 큰 불교승원 대학이 있었다. 그중 팔라왕조(Pala dynasty, 750~1174)때는 강성한 불교왕조였다. 당시 수도는 파탈리푸트라(현재 인도 비하르 주의 수도 파트나)였다. 
팔라 왕조의 역대 왕은 불교를 보호하였고, 당시의 북부 벵골에는 비하라(승원)가 많았기 때문에, 이후 비하르의 어원이 되기도 하였다. 현재 보드가야, 라자그리하(왕사성), 날란다대학 등이 모두 비하르 주에 속한다. 팔라왕조는 8세기 후반에 인도 철학의 거장 샨타락시타와 대밀교 수도승 파드마삼바바 등을 불교 사절로 티베트에 파견했다. 팔라 시대의 불교는 탄트라 불교로, 티베트 불교는 그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또한 예술을 보호하였기 때문에, 회화, 조각, 청동 주물 기술이 크게 발전하여 불교 미술에서는 ‘팔라식 불상’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그 예술은 ‘팔라파’와 ‘동방파’라고 하며 뛰어난 기교와 단아한 디자인으로 알려져 있다. 

▲거대한 성채라는 뜻의 마하스탄가르. 언제 어떻게 도시 건축물들이 사라졌는지 미궁이다.
▲거대한 성채라는 뜻의 마하스탄가르. 언제 어떻게 도시 건축물들이 사라졌는지 미궁이다.

 

방글라데시의 불교유적은 한국에서의 폐사지를 찾아가는 기분과 유사하다. 수행의 염원이 가득했던 영화의 빛이 조락하고, 역사의 뒤안길에 뭍혀 버린 불교문화의 흔적을 찾아 그 구도의 도정을 담아보려는 안타까움이다. 
바게르하트에서 북쪽으로 가면 방글라데시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고대 도시들을 만난다. 그중에 마하스탄가르가 있다. 버스를 타고 이 도시에 들어서면 차창 밖으로 길고 긴 붉은 벽돌 성벽이 만리장성처럼 줄지어 나타났다 사라진다. 수도 다카에서 서북쪽으로 230㎞  거리이며, 카라토야강 서쪽으로 길게 뻗은 지역에 세워진 이 도시는 BC 320년경 찬드라굽타가 세운 마우리아왕조의 인도 북동부지역 거점 도시였다.

 

붉은 벽돌로 된 성벽은 남북으로 1천525m, 동서로 1천370m의 규모다. 성벽 위에 올라서서 바라보면 성 내부는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어있다. 화려했던 도시의 건물들은 정확히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 수 없고, 오로지  성벽만 남아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을 증언할 뿐이다.  
마하스탄가르(Mahasthangarh)는 기원전 3세기에 설립되어 서기 8세기까지 번성했다.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고고학 유적지로 고대 푼드라(Pundra) 왕국의 수도였다.
이곳에서 1931년에 발견된 토지대장을 기록한 브라흐미(Brahmi) 석회암 석판에 의하면 이 유적의 역사가 기원전 3세기 이전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이곳의 원래 이름인 ‘푼드라나가라’는 ‘성채의 성벽’이라는 뜻이 있는 만큼 전략적 요충으로서 이 지역은 서기 8세기까지도 사용되었다. 
마하스탄(Mahasthan)은 ‘큰 성’을 뜻하며, 신성(神性)이 뛰어난 요새를 의미한다. 마하스탄이라는 지명은 발락챠리타(Vallalcharita)라는 13세기 산스크리트어 자료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또 다른 13세기의 텍스트인 카라토야마하트마(Karatoya mahatmya)에도 언급되어 있다. 이러한 마하스탄이라는 이름은 오래전에는 ‘푼드라셰트라’ 또는 ‘푼드라나가라(Pundranagara)’라고도 불렸는데, 1685년의 행정구역명칭에서 산스크리트어와 페르시아어가 혼합된 마스탄가르(Mastangarh)로 불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곳의 지명은 원래 푼드라나가라(Pundranagara), 또는 파운드라바다나푸라(Paundravardhanapura)였다가 이슬람이 형성된 이후 마스탄가르(Mastangarh)가 되었다가 언젠가부터 현재와 같이 마하스탄가르로 불리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마하스탄가르 유적은 1808년 영국의 고고학자 해밀턴(Francis Buchanan Hamilton)이 처음으로 방문했고, 1879년 알렉산더 커닝햄(Alexander Cunningham)은 이 장소를 옛 푼드라 왕국의 수도라고 최초로 확인했다. 

▲7-8세기에 설립된 마하스탄가르의 거대한 불교사원 고쿨매트(Gokul Madh)와 공중에서 바라본 고쿨매트 전경
▲7-8세기에 설립된 마하스탄가르의 거대한 불교사원 고쿨매트(Gokul Madh)와 공중에서 바라본 고쿨매트 전경

 

성벽의 높이는 원래 11~13m정도였으나 지금은 대략 5m정도로 돌출되어 있다. 남동쪽 코너에는 마자르(신성한 무덤)가 있다. 나중에 1818~19년에 건축된 이슬람 모스크도 그곳에 있었다. 
지금의 성채 내부에는 여러 개의 토루(土樓) 흔적이 남아 있다. 성채 내부의 각 시설들중 현재 발굴된 곳은 8군데이고, 31군데는 미발굴상태이다. 
이중 바수비하르(Vasu Vihar)는 마하스탄가르에서 서쪽으로 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고대 불교 유산이다. 바수비하르 뒤에는 비하르(Bihar) 마을이 있다. 당나라의 현장법사(7세기 중반)는 여행기에서 마하스탄가르에서 인근에서 “포시포 승원”을 보았다고 설명했다. 커닝햄도 확실히 바수비하라(Vasu Vihar)를 포시포승원(Po-shi-po Vihar)의 유적이라고 표시했다. 현장법사는 이 사원이 웅장하고 거대했다고 표현했고, 약 7백 명의 대승불교 승려들과 학자, 지식인들이 이 수도원에 머물고 있었다고 기록했다.

▲현장이 방문해 700여명의 승려가 공부하고 있다고 표현한 바수비하라 불교사원
▲현장이 방문해 700여명의 승려가 공부하고 있다고 표현한 바수비하라 불교사원

 

현장은 또 이 수도원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곳에 아소카대왕의 탑이 있다고 하였고, 부처님이 이곳에서 여러 신들과 여신들에게 설법을 하였다고 적었다. 그리고 이 근처에 당시 부처님이 안거를 하던 곳이 있었다고 하였다. 부처님의 발자국이 새겨진 부조가 현재도 남아 있다. 현장은 또 관세음보살상이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아소카스투파의 위치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커닝햄에 따르면 나라파티르답(Narapatir Dhap)에 아소카대왕의 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하스탄가르 지역에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주요 토루도 30여 군데가 땅 밑에 숨어 있다. 그리고 중앙 성채를 중심으로 반경 9km이내에 크고 작은 고대 유적과 불교사원 100여개가 주변에 널려 있다. 이 중에서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장소는 다음 호에 소개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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