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나는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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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나는 충분합니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4.0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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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 박’의 명상 기행 - 결핍에 대한 소고(小攷) (下)

자유기고가인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지난 20년간 한인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 / 편집자 주

행복지수 높은 나라들
2019년의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보자면 그 어느 때보다 호시절을 누리고 있다. 2018년 기준, 대한민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2위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 순위는 세계 30위권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못 살겠다고들 난리다.
그 이유가 부유층과 자신을 비교했을 때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것을 최근 굵직한 정치적 이슈들을 지나가면서 알게 됐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2019년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 사람들은 전 세계 156개국 가운데 행복순위 57위를 기록했다.
작년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 1위는 핀란드였다. 요즘 우리와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일본은 52위(우리보다 5순위 앞이다)였고 미국은 18위였다.
UN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에서 발표한 이 보고서에서 따르면 대체로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행복도 1위를 차지한 핀란드의 1인당 국내총생산이 이웃 북유럽 국가들보다 낮다는 것이다. 이는 행복이 돈과 정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 예이다.
세계 행복지수 1위 국가에서 그동안 가장 자주 1위에 올랐던 나라는 부탄이었다. 히말라야 동쪽, 해발 3천이 넘는 고산 지대에 위치한 인구 75만의 나라 부탄은 GNP 수준은 낮지만, 국민총행복지수(GNH·Gross National Happiness)만은 세계 1위이다.
많이 싸돌아 다녔지만 아직 부탄은 여행해보지 않아 직접 확인한 바는 아니다. 하지만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부탄은 금연 국가이며, 공장과 고속도로 그리고 신호등이 없는 나라이자, 대승불교를 국교로 삼는 나라라고 한다.
그들은 왜 행복한 걸까. 모두 다 가난하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대승불교를 국교로 삼고 국민 모두가 수행자인지라 ‘남’이 아닌 ‘진정한 나 자신’을 탐구하는 것에 관심을 갖기 때문일까. 아니면 대승불교국가답게 국민 모두가 보살행을 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모두가 이유일까.

결핍을 직시하라
앞에 썼듯이 결핍감 역시 수행자가 탐색의 대상으로 삼는 현재의 경험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니 애써 ‘그런 것 없어.’라며 외면할 게 아니라 직시하는 게 해법이다. 이 목마름, 배고픔, 허기짐, 상실감, 그리고 온 국민의 심리상태를 대면하는 ‘상대적 박탈감’을 직시해보자.
‘상대적 박탈감’이란 단어가 말해주듯 상대적인 것이요, 늘 변하는 것이다. 오늘 박탈감을 느끼던 내가 내일이면 상대적 충만함을 느낄 수도 있다. 어제 친구가 페이스북에 올린 카리브해 리조트 여행 사진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을지라도 내일 프랑스 니스 해변의 다이아몬드 다섯 개짜리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 상대적 행복감과 충만함을 느낀다.
그러니 이는 무상한 것이다. 무상한 것은 자성이 없고 고통이다. 무상한 것을 무상한 것으로 알아차리고 내려놓는다.
상대적 박탈감이란 나의 현재 상태와 남을 비교하는데서 비롯된다. 수행자의 관심은 나의 경험이다. 그러니 일단 남과 나의 현재를 비교하는 것은 내려놓는다.
지난 2019년 8월, 조국사태로 상대적 박탈감에 촛불을 들었던 대학생들과 국민 여러분께 묻고 싶다. 그것이 과연 당신의 주의력을 기울일 만한 일들이었는가를.
온 국민들이 나를 들여다보기보다는 옆 사람이 무얼 하는가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옆사람이 가진 것보다 조금 더 가져야 행복한 것이 과연 행복일까. 과연 얼마나 가져야 행복할까. 당신 눈이 밖을 향하고 있는 한, 당신은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은 내 안을 들여다볼 때 찾을 수 있다. 행복이란 게 따로 내 안에 또아리를 틀고 있으니 그것을 발견하라는 것이 아니다. 고통의 실체를 철견할 때, 즉 고통이란 것이 무상함을 깨달을 때, 고통이 고통이라 할 만 한 것이 없음을 알게 된다. 즉 고통을 직시하면 고통의 무상함을 알게 되고 고통은 사라진다.

나는 충분합니다 (I am enough.)
‘나는 부족하다.(I am not enough.)’는 뿌리 깊이 박힌 무의식을 서서히 알아차리고 내려놓다보면 어느 순간, ‘나는 충분하다.(I am enough.)’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이를 위해 당신이 특별히 멘탈 무장할 필요는 없다. 결핍의식으로부터 도망치지 말고, 그렇다고 색칠하며 꾸미지 말고, 직면하다 보면 자연스레 찾아온다.
당신은 충분하다. 지금 그 모습 그대로. 지금 그 상태 그대로. 지금 그대로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당신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진정한 수용이 무엇인지를 가슴으로 깨닫고 심장이 전율해옴을 느낄 것이다.
당신이 ‘상대적 박탈감’, 결핍감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충만하기를… 충분하기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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