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와 단정 사이, 行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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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와 단정 사이, 行書
  • 해설 : 이진영 기자
  • 승인 2020.04.1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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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昌林 作家의 水墨香 ②

행서는 한(漢)대에 시작되어 진(晉)대에 널리 유행하다가, 서성(書聖) 왕희지·왕헌지 부자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알려지는 글꼴 중 하나이다. 사실, 행서란 경쾌함으로는 초서에 못 미치고 단정함으로는 해서에 못 미친다. 그러나 바로 그런 어정쩡한 행서의 위상이야말로 역설적이게도 행서의 존재가치를 여실히 증명한다. 경쾌함과 단정함의 사이, 대취(大醉)와 미취(未醉) 사이, 그곳이야말로 바로 행서가 어울리는 자리로 보인다. 
영화(永和) 9년, 회계내사(會稽內史)로 발령받은 명문가의 후예 왕희지는 당대의 명사들과 이름난 문인 40여 명과 함께 산음(山陰)에 있는 난정(蘭亭)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며 시를 즐기는 놀이를 즐겼던 모양, 그러니 풍류가 도도했겠다. 왕희지를 포함한 26명은 시간 안에 시를 지어내 벌주를 면했던 모양이고, 나머지 15명은 끝내 시를 지어내지 못해 벌주를 마셔야만 했다. 당시 만약 왕희지 역시 끝내 시간 안에 시를 지어내지 못해 3말이라는 엄청난 양의 벌주를 마셔야 했다면, 그래서 대취했다면, 과연 신품(神品)이라 칭해지는 〈난정서〉는 태어날 수 있었을까? 
자칭 게으른 노인[懶翁]이라니, 나옹선사(懶翁禪師)의 정신세계는 틀림없이 치열 그 자체였으리. 약관의 나이에 출가해 원(元)으로 가고 거기에서 인도의 고승 지공을 만나 배워, 드디어 푸른 산 푸른 물과 말을 나누고 푸른 물처럼 흘렀다. 그는 태조 이성계의 왕사였던 무학대사를 키워낸 스승이었으며, 삼은(三隱) 중 하나였던 목은(牧隱) 이색의 평생의 벗이었다. 천하를 두루 밟으며 평생 깨달음의 정신을 붙잡고 일관하며 자득했던 그

오창림, 2009년 作. 나옹선사 가송(歌頌)중 여섯 번째 시.
오창림, 2009년 作. 나옹선사 가송(歌頌)중 여섯 번째 시.

의 정신은 다음의 칠언절구에 잘 드러난다.

아미타불은 어디에든 계시니
마음속에 붙들어 매고 
간절히 잊지 마시게.
생각이 생각을 다해 생각이 
없는 곳까지 이를 수 있다면
육문(六門)에서는 언제나 
자마(紫磨) 금빛 발하리니.
 
阿彌陀佛在何方
着得心頭切莫忘
念到念窮無念處
六門常放紫金光

‘생각이 생각을 다해 생각이 없는 곳까지 이를 수 있다면’이라는 세 번째 구는 그야말로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여 본 선지식만이 가능한 발언이리라. 소전 오창림은 나옹선사의 자득의 경지를 경쾌와 단정 사이의 행서로 풀어냈다. 작가 역시 세 번째 구가 인상적이었는지, 到의 마지막 세로획을 강하게 비틀 듯 비껴 내림으로써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이던 기세를 드러냈고, 밋밋하게 이어지던 글씨에 약간의 파격으로 새로운 리듬감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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