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날 특집 - 인류는 종말을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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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날 특집 - 인류는 종말을 막을 수 있을까?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4.1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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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학재 _ 세종컨설팅연구소 교수
소피 레큐어(Sophie Lecuyer). 달빛의 유희. 2013.
소피 레큐어(Sophie Lecuyer). 달빛의 유희. 2013.

 

유엔의 환경보고서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백만 종이 멸종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지구상에서 인류의 멸종우려를 포함하여 상상할 수 없는 생태적 재앙에 직면하고 있다. 되돌릴 수 없는 생태시계의 운명적 종말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위기를 되돌리고 싶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미 너무 많이 늦었고, 지구의 생태회복 기능이 작동하기 어렵다고 우울한 전망을 내놓는다. 
미국과 이탈리아, 프랑스와 스페인, 영국과 독일 등 경제적으로 부유한 선진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공격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다. 남미와 인도, 아프리카는 아예 진단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 통계도 불명확하고 얼마나 희생을 당했는지 파악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한민국이 그나마 발빠른 대처로 큰 피해를 줄였다고 하지만, 지금 전 세계적인 상황을 보면 안심하거나 자화자찬할 시기가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지구의 재앙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코로나19가 가져온 인류의 비극은 이제 시작일지 모른다. 상실과 슬픔이 일상화되고, 도시를 통제하고 사회 기능이 중지되면서, 경제적 생존방식도 무력화된 작금의 사태를 보면, 과연 어떠한 삶이 지속가능한 휴머니즘의 기반을 담보해 줄 것인지 의문이 든다. 
지구의 종말이 올 것 같은 두려움 속에서 우리는 어떤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슬픔은 분노와는 다른 감정이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라는 적에게 분노를 표출할 수 없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깨달음이 등장한다. 그리고 대신 연민과 슬픔의 감정이 이 사태에 대한 관조로 자리잡는다. 전쟁과 기아, 테러와 경제적 불평등과는 전혀 다른 이 위기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인류는 너무나 많은 희생을 치루고 있다. 이러한 비극적 사태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돌리기에는 그 원인이 명료하지가 않다. 최초의 코로나19 발생국가로 알려진 중국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고, 미국과 서구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변종바이러스는 기후환경재앙이 그 원인일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인류가 지구적 차원에서 왜곡시킨 환경재앙에 의해 야생동물을 통한 바이러스는 변종을 양산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앞으로도 또 다른 바이러스의 변종들이 공격해 올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데 별로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원인과 결과의 법칙성에 비추어 우리는 아마도 세상의 끝에서 슬픔으로 점철된 인류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처님은 고통에서 진리와 행복을 배우라고 말했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비극적인 슬픔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다. 
우리는 상처 입은 지구,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려는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인명의 희생을 보고 있다. 특히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저개발국의 희생을 목도하면서, 깊은 슬픔의 골짜기를 경험한다. 대단하다고 믿었던 과학기술문명은 변종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를 방어해주지 못한다는 허무한 결론을 얻었다. 
기후변화와 환경적 재앙은 코로나19라는 변칙적 전사를 양산했다. 오늘은 폐렴 질환자와 노인들이 희생되었지만, 내일은 누가 희생될지 모른다. 내가 이 지구에서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다. 
학자들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가 전혀 다른 사회가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회학적으로 삶의 형식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대도시의 기능, 국가권력의 사회적 통제에 대한 변화 등등 새로운 사회구조적 변화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일은 이제 기후 변화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자각이다. 우리가 겪은 이 슬픔과 울음은 지구가 고통과 상처를 입었다는 것의 결과라는 점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슬픔과 상실을 통해 우리는 자비와 연민을 품게 된다. 그리고 그 연민은 정화의 기반이 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상실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자비와 연민이 사라져서는 안된다.  충격, 기억, 슬픔, 분노, 후회, 우울증, 두려움, 마비, 실망, 배신 등등 격랑속에서도 우리는 자비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하늘과 나무와 숲과 바다, 그리고 무리지어 살아가는 생명들에 대한 자비심이 가득할 때, 이 지구의 미래는 지속될 것이다. 
수십억년 후 언젠가는 지구도 사라지고, 태양도 사라지고, 우주의 많은 부분이 변화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무책임한 전 지구적 남용이 문제라면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 지구는 멸망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계의 자급 자족적 순환에 우리는 더 이상 지구를 인간 중심으로 대해서는 안된다. 과거 우리가 저지른 원인이 오늘의 슬픔을 만들었다면, 미래는 또한 우리들의 노력으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제50회 지구의 날 주제는 기후행동이다. 행동은 사랑이고 연민이며, 자비의 실천이다. 지구에게 자비를 베풀 때, 우리는 그 지구의 자비를 받을 수 있다는 공존의 깨달음을 이번 코로나19에서 분명하게 배워야 할 것이다. 
보살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나타낸다. 고통 받고 취약한 사람들과 보살은 함께 한다.
오히려 이러한 어려움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다시 상상하고, 공통의 인류를 공유하고, 우리가 가능한 가장 깊고 아름다운 방법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상상할 때이다.
아기가 태어날 때 첫 반응은 사랑의 인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때, 우리가 잡고 있는 손은 사랑의 몸짓이다. 코로나19가 휩쓸고 있는 세상이 당신의 자비로운 마음을 기다리고 있음을 명심하기를... 이 위대한 보살의 길에 동참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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