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신선[詩仙], 이백(李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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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신선[詩仙], 이백(李白)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4.2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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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기자의 교양으로 읽는 漢詩③

한시는 몰라도 이백 혹은 이태백이라면 누구나 압니다. 시 혹은 시인의 별칭으로 쓰일 정도입니다. 아마 중국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 하나일 겁니다.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그의 시 한두 구절 정도는 기억합니다. 그만큼 그의 시는 대중적이며 직관적입니다. 쓰이기도 직관적으로 쓰였고, 읽히기도 직관적으로 읽혀줍니다. 뱉는 대로 말이 되고 시가 되고 문장이 되었던 그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시인이었습니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 하죠, 그의 시에는 꿰매고 기운 흔적이 전연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에야 시인이란 문학의 하위개념일 뿐이지만, 과거 중국이나 우리나라 전통에서 시인이란 문학 그 이상의 개념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건안(建安) 문단의 선봉이었던 조조의 큰아들 조비(曹丕)가 ‘문장이야말로 국가 일대의 큰 사업’이라 했겠습니까. 그러니 과거 시인이란 기본적으로 세상을 경륜할 만한 재능을 가진 인재라는 말과 같았고, 자신의 능력과 이상을 시로 드러낼 수 있어야만 어디 가서 명함이라도 내보일 수 있었습니다. 이백 역시 시를 가지고 당시 세력가들에게 유세해야만 했었는데, 이때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벼슬자리라도 하나 구해볼 양이었던지, 당시 세력가이던 재상(宰相)을 찾아가 유세했습니다. 요즘 식으로 자신의 명함에다 “(나는) 바다에서 자라 낚는 나그네.[海上釣鼇客]”라고 써서 재상댁 집사에게 접수했겠죠. 범상치 않은 글귀에 호기심이 일었던지 재상이 그를 따로 부릅니다. 재상이 농담조로 묻습니다. “(그렇다면) 선생은 자라를 낚을 때 낚싯줄을 무엇으로 합니까?”라고요. 그는 이 실없는 농담을 천연덕스럽게 “무지개로 낚싯줄을 삼죠.”라고 받아칩니다. 무지개를 낚싯줄로 삼겠다니, 당시 그의 도도했던 자신감을 짐작하고도 남겠습니다. 
입적하신 법정스님은 생전에 자신은 세상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누어 이해한다 했습니다. 한 부류는 〈어린왕자〉야 말로 최고의 작품이라고 꼽는 이들이고, 한 부류는 〈어린왕자〉의 높은 평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부류라고요. 마찬가지로 저의 경우, 한시를 두보(杜甫)로 입문했던 탓인지, 이백의 시를 최고로 치는 이들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음의 시를 보고서야 과연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부인에게 장난삼아 준 시로 보입니다. 그래서 제목이〈부인께 드림[贈內]〉입니다.

일 년 삼백육십일, 
날마다 떡처럼 취해 있다오.  
이백의 아내 되면 뭐 하나,  
태상의 처와 매일반인 것을.
  
三百六十日  日日醉如泥 
雖爲李白婦   何異太常妻 

술에 취하면 몸을 가누지 못하던 이가 하지장(賀知章)입니다. 얼마나 유명했던지, 그가 취해 말을 타면 사람들이 마치 배를 탄 사람이 흔들리는 것 같다고 비웃곤 했답니다. 말 타고 흔들흔들 가다가 우물에 처박혀도 그대로 잠들곤 하였다니, 과연 이백의 짝이 될 만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백을 꼬드깁니다. 당신이야말로 하늘에서 귀양 온 신선[謫仙]이라고. 
요즘은 크게 취하면 떡이 됐다고 하던데, 진흙처럼 취했다[醉如泥]는 말은 아마 그런 느낌일 것입니다. 취한 사람은 일으켜 세워봐야 진흙이나 떡처럼 흐물흐물 다시 무너져 내립니다. 표현이 절묘합니다. 형편없이 취해본 사람만이 아는 경지이니, ‘시안(詩眼)’이라고 우겨도 될 듯싶군요. 
태상(太常)이란 황실의 종묘를 관리하던 관청이었습니다. 당시 태상시의 장관은 주택이라는 이였습니다. 그는 1년 360일 거의 매일 재계(齋戒)를 하고 종묘에 나가 정무를 봐야만 했습니다. 그는 이런 이유로 집에 들어가서 쉴 수 있는 날이 매우 드물었습니다. 가족들에게 소홀한 주택에게 화가 났던 아내가 바가지를 좀 긁었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남편 주택은 어이없게도 재계를 방해했다는 죄목으로 덜컥 자신의 아내를 관청에 고발해버리고, 그녀는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후 ‘태상의 처’라는 말은 버림받은 혹은 불행한 여자라는 뜻으로 쓰이게 됩니다.
황실에서 벼슬을 한다는 남편이지만 얼굴 볼 날이 드무니, 천하제일의 시인 이백을 남편으로 두었다 해도 맨 정신으로 서로 얼굴 한번 맞대기 어려우니, 두 여인은 과부나 매한가지라는 자조(自嘲)입니다. 이 시는 매우 짧고 평이하게 쓰였지만, 모든 상황을 다 짐작하게 해줍니다. 신선처럼 마냥 취해 살던 이백의 평소 삶이 드러나고, 부인을 향한 이백의 미안한 마음이 드러납니다. 덧붙여 제법 고관의 벼슬아치조차 자신의 발밑으로 하찮게 여기던 오만함까지,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뱉는 대로 말이 되고 시가 되고 문장이 됩니다. 꿰매고 기운 흔적이 전연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천의무봉(天衣無縫) 그 자체입니다, 타고난 재능에다 매력적인 인간미, 그러니 이런 인간을 누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44살의 시의 신선 이백과 33살의 시의 성인 두보, 두 사람은 744년 장안에서 처음 만나 다음 해까지 겨우 두어 번 만나 놀았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두보 역시 그의 인간적인 매력에 평생 그를 잊지 못해 추억하고 노래했다니, 과연 이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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