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 곡신불사(谷神不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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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 곡신불사(谷神不死)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5.07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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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정(재가불자)

말이 사납고 거친 시대다. 정치인만 아니라 우리 지역사회에서도 편가르기와 상처주기식 말의 홍수다. 말이 지나치면 업으로 쌓인다. 침묵이야말로 공덕이다. 사람이 태어나면 말을 배우는 데 2년 정도 걸린다. 그런데 침묵을 배우려면 6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서산대사는 ‘정수유심(靜水流深) 심수무성(深水無聲)’이라고 했다. 고요한 물은 깊이 흐르고, 깊은 물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고요함 속에 참 진리가 깃든다. 침묵은 밭을 갈고 씨앗을 심은 뒤에 새싹을 기다리는 것처럼 인내와 희망을 요구한다.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말이 적고, 말 많은 사람은 아는 게 거의 없다고도 한다. 
침묵에 대해서 중국 위(魏)나라 문후(文侯)와 명의로 소문난 편작(扁鵲)과의 일화가 전해온다. 문후가 묻는다. 
“그대 삼형제들은 모두 의술에 정통하다 들었다. 누가 가장 뛰어난가?” 
편작이 답한다. 
“큰형이 으뜸이고, 둘째 형이 다음이며, 제가 가장 모자랍니다.” 
“그런데 왜 그대의 이름만이 세상에 높이 알려졌는가?” 
“큰형은 병을 미리 알아 병의 뿌리를 제거합니다. 그래서 환자들은 자신의 병을 치료해 주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기 때문에 세상이 알지 못합니다. 둘째 형은 병이 든 초기에 치료하니 환자들은 대수롭지 않은 병을 고쳤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세상이 알아주지 않습니다. 저는 병이 깊어진 뒤에 고쳐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병이 치료되는 것을 직접 보기에 제 의술이 뛰어난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앎이 꽉 찬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려고 안달하지 않으며, 침묵 속에 오히려 참된 가치의 위대함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도덕경 6장에는 곡신불사(谷神不死)라는 말이 나온다.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는다.
이를 현묘한 골짜기라 한다.
이 골짜기의 문이 천지의 뿌리이며,
끊임없이 이어지니
써도 써도 다함이 없다.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낮춤의 오묘한 진리를 갈파한 명구다. 골짜기(계곡)는 스스로를 겸허히 낮은 곳에 두고 모든 것을 받아들여 포용하여 품고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고 길러내는 곳이다. 우주의 모성(母性)과도 같은 이러한 겸손, 포용 및 창조의 본원이 바로 곡신이다. 마르지 않는 강인한 정신을 지니고 있는 계곡은 가장 낮은 자리에 머문다. 낮은 곳을 찾는 겸손이 가장 오래 살아남는다. 곡신(谷神)의 의미는 견고하고 딱딱한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연약한 것이 말 뿌리이다. <도덕경>에서 부드럽고 겸손한 것이 굳센 것보다 낫다고 하는데, 이는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긴다’라는 공자의 말씀과 통한다. 노자가 만들려는 세상은 위압적이고 군림하는 게 아니라 부드러움과 겸손이 존재하는 계곡 같은 세계다. 
강한 것이 으뜸이라는 오만의 확신이 가득한 세상에서 부드러움과 낮춤의 정신이 그 폐해를 치유할 참다운 지혜라고 생각한다. 말이 없는 자, 그러나 그의 진가는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빛이 드러날 것이다. 세류에 안달하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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